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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스데반의 설교 ④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행 7:37-43, 사도행전 시리즈 설교(32)

by tat tvam asi 2025.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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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행 7:37-43

 

스데반 집사의 설교 목적은 모세를 소개한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집사는 모세를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먼저 스데반 집사는 옛날 모세가 광야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신 18:15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기서 모세는 중요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장차 나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을 세우신다.

 

신명기에서 말하고 있는 "나와 같은 선지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두 말 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이 세우시는 메시아,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데반은 모세에 대하여,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행 7:37-38 /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는 어떻게 해서 살아 있는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을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얼굴이 빛이 납니다. 그래서 모세도 얼굴에 광채가 났고, 스데반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다. 

둘째, 기쁨이 있습니다. 뭐가 없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염려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주변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뭐 대단한 말씀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신비한 말씀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녀들이 어려운 문제를 갖고 와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한 마디 하십니다. "얘야, 하나님께 기도하자. 내가 60년을 살았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다" 자녀들은 그 소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모세처럼 두 돌판을 가져와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모세의 이야기를 거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데반은 모세의 출생이나 역할이, 예수와 흡사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모세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과 닮은꼴이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낮아졌고, 그들을 구원한 구원자였습니다. 또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이적을 행했습니다. 모세는 율법으로, 예수님은 복음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중보자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닮았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요, 예표였습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공회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스토리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모세를 거론하는 것은 진정한 구원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은 행 7:38을 통해, 광야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해 말씀하여 주십니다.

 

고전 10:1-2 /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홍해를 건넌다 것을, 세례를 받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세례이기 때문입니다.

 

요단강 하늘나라로 가는 또 하나의 과정입니다. 요단강은 광야 생활과 영원한 가나안 땅의 중간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스데반은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행위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행 7:39 /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여러분!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구원해 준 모세에게 어떻게 대했습니까? 감사하고 순종하기는 커녕, 오히려 출애굽 직후부터 걸핏하면 모세와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물이 조금 부족해도 원망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을 때도 애굽의 음식보다 맛이 없다고 투덜거렸습니다.

 

민 11:5 /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스데반집사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투덜거린 이유를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좀 더 쉽게 말하면, 400년 간 몸에 밴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몸은 애굽에서 벗어났지만마음은 여전히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걸핏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소리쳤습니다.

14:3-4 /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여러분, 이 말이 얼마나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소리입니까?

 

애굽의 압제에서 노예 상태로 살면서, 탄식하며 부르짖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구원해 주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핍박하고 노예 삼은 애굽을 그리워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을 일삼았으니,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였겠습니까?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그런데 정작 출애굽하여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이스라엘은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노예생활이었지만 배는 곯지 않고 살았는데'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성도의 삶이란,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옛사람의 본성을 끊고, 하나님의 영에 집중하며 그 음성에 귀기울이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보여 주신 하늘의 성품으로, 옛사람의 본성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성도가 해야 할 가장 큰 사명입니다. 이 옛사람의 본성을 경계하지 않고 그 본성대로 행하면 신앙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2. 이어서 스데반은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를 지적합니다.

 

행 7:40-41 /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저들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자' 하는 차원에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고 모세를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지 40일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자, 저들은 불안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모세가 죽었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부득이 무엇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하나님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시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 바로 황금 우상이었습니다.

과거 애굽의 습성을 다 씻어내기 위하여 이 광야가 필요했습니다. 이 광야교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 광야에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공회원들과 유대인들은 거절합니다. 출애굽한 광야에서도 모세를 거역하였습니다.

 

출 6:9 /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스데반집사는 그 조상들의 거역함을 상세히 들춰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결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행 7:42-43 /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오래 참으시지만, 그러나 영원히 참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세 단계로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단계(42절 상반절)

"하나님이 외면하사"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신다는 것입니다. 불러도 대답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버려 두시는 단계(42절 중반절)

"버려두셨으니" 돌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방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징계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단계(43절 하반절)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심판입니다.

 

여러분, 스데반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매일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와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예물을 드릴 뿐이었습니다. 성전이라는 우상, 인간이 만든 종교 규례라는 우상에 깊이 사로잡혀 있던 그들은, 입술로는 자비, 양선, 사랑을 외치면서도 오신 메시아를 죽였고, 이제는 그의 제자들까지 죽이려고 하는 악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예물은 열납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증하게 여기심을, 성경을 인용하여 깨우치고자 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운 길좋은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먼 길광야 40년의 길로 인도하셨을까요광야에서광야교회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농사 지을 수도 없습니다양을 칠 수도 없습니다물도 없는 곳입니다왜 그런 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만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 배우라고 광야를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광야교회를 지나게 하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였던 것은, 늘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주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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