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굳세게 하라
학 2:1-9
요즘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지 않지만 예전에는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많았습니다.
옛날 얘기입니다. ^^
어떤 분이 지하철 1호선 인천행을 타고 가는데 신도림역에 물건을 파는 아저씨가 큰 가방을 들고 탔답니다. 아저씨는 가방 속에서 칫솔을 꺼내 들고 칫솔 선전을 하였습니다. 한 개에 200원씩 다섯 개 묶어 천 원에 팔았대요. 아저씨는 칫솔을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더니 승객들에게 물었대요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몇 개를 파는가 구경했답니다. 잠시 후, 돌린 칫솔과 돈을 다 거둬들인 아저씨가 말을 이어갔답니다. "자 여러분, 칫솔 4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네, 4천원 벌었쉽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예. 쉴~망했쉽니다." "그렇다구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쉽니까?" "저는 다음 칸 가서 다시 시작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상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예화를 들어 보았습니다.
살다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쉽게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이유는,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 부족, 자신감 결여, 나약한 의지력,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자신의 문제로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지요.
둘째는, 극복하지 못하는 장애물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 뜻하지 않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포기해 버립니다.
셋째는, 목표에 대한 기대치가 상실될 때 포기합니다.
목표한 것이 이룰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이 되어지면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포기를 할 경우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유다 사람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B.C. 536년 성전을 짓다 포기했습니다.
포기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시기가 아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이유는, 자신들의 집 짓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이유는 외적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의 소위를 알라고 권면하며 잘못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격려하며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힘을 다 빼어 버리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1. 원로들이 자기들이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이 초라하다고 폄하하는 것입니다.
학 2:1-3 /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오히려 중진들이 사람들을 낙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성전 재건 방해를 위한 사단의 고도의 전략입니다. 성전 재건에 동원된 사람 중에는 지난 날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B.C.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귀환한 유다 백성들 가운데 노인들 중 몇 명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원로들입니다. 그런데 학개의 독려로 한 달 동안 성전 공사를 했는데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 보니 너무 형편이 없는 것입니다.
원로들이 사람들이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빼버리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성전을 짓자고 젊은 세대를 격려하고 자신들이 헌신하면 될 것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원로들은 전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며, 사람들의 힘을 빼는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원로들은 성전을 짓게 하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미를 몰랐던 것입니다. 성전은 외형과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2. 이 때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학 2:4 /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원로들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무려 세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전통과 형식과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스스로 마음을 견고히 하고 성전 짓는 것을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굳세게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 힘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적 허무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사단의 방해가 있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책에서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 즉 열정, 재능, 그리고 자신감이 비즈니스에서 성공 핵심 요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보십시오.
학 2:5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약속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죽음의 순간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떠나지만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낙심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머물러 계셔서, 우리에게 능력주시고, 감동주시고, 지혜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마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3. 새 성전에 임할 하나님의 영광
원로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짓는 성전은 결코 초라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헌신을 보시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금은 보화를 가지고 건축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건하는 성전에 대하여 보잘 것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성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스룹바벨 성전을 지으라고 하시는 지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보다 초라하다고 낙심하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학 2:6-8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이 전에 충만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결국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학 2:9 /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전은 그 화려함과 초라함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라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겉모양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건물에 불과하며 아무리 초라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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