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소망하는 자
시편 37편 3-9절 (요셉 형들 이야기)
3 /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할렐루야!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이 따사로운 봄날, 성도님들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로 말하자면 5월 1일 그 어느 때보다 가슴 졸이는 하루를 보냈습니다.😂그동안 최대한으로 미뤄두었던 숙제를 치루느라 그랬는데요, 바로 운전면허입니다. 스무살 때부터 면허를 따겠노라 말만 하다가 드디어 학원에 등록했는데, 운전을 배운다는 것이 생각보다 떨렸습니다. 저는 사고나 위험에 대해 긴장감이 유독 큰 편이라 조금이라도 제 시야에 걸리거나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몸이 일시정지 됩니다. 그런데 운전은 제 몸뚱아리를 넘어 큰 차체를 간수해야 하는 것이니, 그 긴장감이 배가 되더라구요. 몸으로 하는 것이 자신이 없으니 괜히 문제집만 달달 외워서 필기 시험은 무려 91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오히려 필기를 너무 잘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60점 이상은 다 통과이기 때문에 굳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저는 하룻밤을 새워서 공부하며 결국 91점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필기시험 이후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밤을 새워 공부한다 한들 직접 차량을 운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학원에서 강사 선생님이 말하길 대한민국의 5천 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운전면허가 있다고 합니다. 길 가다 만나는 성인 10명중 적어도 6-7명은 운전을 할 줄 안다고 합니다. 참 재밌게도 이전에 길거리를 걸을 때 한번도 차도를 신경써본 적이 없는데, 면허를 준비하는 지금은 눈에 차만 보이더라구요. 괜히 차 표지판이나 신호등을 살피면서 나는 언제 저렇게 운전하나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도 운전을 아주 부드럽게 잘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다들 언제 면허를 취득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 혹시 운전 면허를 딸 때 필기 시험을 치루고 어떤 시험을 봐야하는지 기억나시나요? 맞습니다. 장내기능 시험을 봐야 합니다. 제가 5월 1일 떨면서 보았던 시험이 장내기능이었어요. 운전을 배우면서 몰랐던 제 성질머리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성격이 어찌나 급한지 교육을 받으면서 혼자 핸들을 이리 꺽었다 저리 꺽었다 난리 부르스를 치니까 옆에 계신 선생님이 한 말씀하시더군요. 정신사납다고ㅋㅋㅋ 운전을 배울 때 저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게 핸들 컨트롤이었습니다. (시야가 좁아져서 멀리 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코앞만 바라보고 있었걱든요.
그렇다면 제가 왜 핸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흔들었을까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옆에 베터랑 선생님이 타고 있어도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고, 또 언제 어디서 얼만큼 핸들을 꺽어야 된다는 확신이 없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던 운전 강습 선생님이 저에게 팁을 주셨습니다. 장내기능 코스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입으로 말을 하래요. 내가 기억하고 수행해야 하는 과제들을 읊조리면서 차분히 나에게 알려주니까 신기하게도 마음이 진정되면서 서서히 감이 잡히는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후 시험 날이 되었습니다.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시험을 봤는데, 가뜩이나 떨리는 와중에 제 앞사람이 사고를 냈어요.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쾅 소리가 나서 봤더니 방금 출발했던 사람이 T자 주차를 하려고 후진하다가 차 뒷부분을 연석에 부딪친 겁니다. 하필 그 후 바로 제가 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배운 공식을 노래하듯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며 한 코스씩 주행하자 곧 한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겨우 장내기능 시험 합격한 걸로 이렇게 좋아하냐고 비웃을 수도 있을텐데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공간인지능력이나 반사 신경이 뛰어나지 않아서 놀이공원의 범퍼카도 무서워하던 제가 차를 혼자 운전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사실 겁 많고, 성질은 급한 제 모습이 운전을 배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상태이죠? 그런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입으로 말하기였습니다. 길을 따라 선을 따라 차분히 가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말한 공식을 입으로 되뇌는 것이 무척 효과적입니다.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하곤 합니다.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겁 많고 성질 급한 우리 인간들이 인생길을 바르게 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기도를 입으로 되뇌어야 합니다. 시편은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의 찬양이자 기도이자 삶의 고백입니다.
시편은 다양한 저자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소리 내어 드리는 기도입니다. 저자가 다양한 만큼 시편에는 여러 유형의 시가 있는데, 이를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찬양과 탄원.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감사와 찬미를 올려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때로는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듯한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끝까지 붙잡으며 탄원하기도 합니다.
시편의 기자 중에는 잘 알려진 대로 다윗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순간에 자신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시편을 묵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다윗은 비록 그가 어두운 밤을 보내던 시간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속에 있는 모든 말을 소리 내어 털어놓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탄원이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향한 원망과 저주이든 솔직히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 후대의 평가가 어땠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1절로 23절의 말씀입니다. 봉독하시겠습니다.
행 13:21-23 /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은 다윗을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입 밖으로 낸 그 모든 소리를 하나님을 들으시고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셨습니다.
시편의 기도는 속으로 중얼거리는 기도가 아니라 소리 내어 외치는 기도입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쏟아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 통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다윗의 인생은 참 파란만장합니다. 한 집안의 막내로써 아버지의 기대와 자랑에서 벗어나 고요히 양을 치던 소년이 기름 부음을 받아 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왕이 되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의 고비를 영광을 누리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이 끊이지 않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힘이 아닌 여호와를 소망하여 힘입은 다윗은 하나님이 사랑하사 그 집안과 왕위를 직접 세우시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과도 같이 하나님과 함께 인생길을 달린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시편의 다른 기자인 아삽입니다. 아삽은 레위인으로 다윗 왕 시절 성전 음악에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었을 때 다윗 왕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기뻐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레위인이요, 왕의 신임을 받은 자인 아삽, 아무 것도 거리낄게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큰 수치와 고난의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조상 고라 때문입니다.
고라는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적 반역을 저지르고 대신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민족의 반역자입니다. 하나님은 고라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을 다 벌하셨습니다. 아삽의 가문은 레위인인 이전에 큰 죄를 저질러 몰살당한 죄인의 집안이었던 것입니다. 아삽에게는 평생 떠나지 않는 꼬리표가 존재하였습니다. 그의 조상이 저지른 죄악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그에게 수치를 안겨주었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행위와 능력이 아닌 가문의 이름으로 평가받던 시대를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쓰라린 시절을 보냈을 아삽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가져갑니다. 그는 낙심되고 갈급한 영혼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시편 42편 1절 말씀입니다.
시 42:1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아삽은 조상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 앞에 놓여진 불행을 오히려 하나님께 노래로 올려드렸습니다. 목이 막히고 황무지로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 물가로 길을 내사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고라의 자손으로만 여겨졌던 아삽과 그 후손들은 이후로는 더 이상 민족의 반역자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 아삽에게 하나님은 더한 것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탄원시는 삶의 길을 잃어버린 자의 기도입니다. 미래의 불안과 과거의 후회로 발목이 잡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기도와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그저 하나님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려고 몇 마디의 말을 웅얼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과 내가 합하는 기적과도 같은 체험을 가능케합니다. 지금까지는 땅의 일만을 바라보던 내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소망하는 용기와 지혜를 값없이 얻는 것이 기도와 찬양입니다. 약한 줄만 알았던 내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그분의 권능에까지 도달하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요. 그분과의 일치함입니다.
시편은 다윗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아삽만의 결단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했던 이 시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길을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자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그어놓았던, 혹은 스스로 가둬두었던 지난 과거의 틀을 깨고 하나님께 나아간 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 5절과 6절의 말씀입니다.
5 /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길을 모를 때 헷갈리거나 막막해서 나아가지 못할 때 입으로 배운 말씀을 되뇌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길을 만들고 동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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