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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②, 요 4:15-19, 요한복음 시리즈 설교(19)

by tat tvam asi 202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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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 ②

요 4:15-19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요 4:13-14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중에 등장하는 "이 물"은 야곱의 우물에서 퍼올린 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십니다. 세상적인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다 채울 수 없음을 지적하시는 것이지요.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목마름이 단순한 육체적 필요를 넘어서는 것을 뜻하며, 오직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만이 우리의 영혼을 참으로 만족시킬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욕망에 의한 목마름에는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본문에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에서 '마시는'은 계속 마셔도, 충분히 마셔도 계속 목마른 모습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욕망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이 없으며, 오히려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보면, 러시아의 어느 마을에 바흠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바흠은 100 루블을 주고 산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는 늘 '땅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흠에게 다른 지방에서 온 농부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볼가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막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흠은 그 농부에게서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시키르라는 마을에 가면 1,000 루블만 내면 땅을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침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들판에 나가 출발할 장소를 정한 뒤 1,000 루블을 내고 출발해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서 ‘자기 땅’이라고 표시만 하면 그 땅 전체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바흠은 갖고 있던 땅과 집, 재산을 모두 팔아서 만든 1,000 루블을 들고 바시키르 마을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동네 촌장에게 1,000 루블을 내고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출발하는 바흠에게 동네 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한 장소로 돌아와야 합니다. 만일 그 때까지 돌아오지 못한다면 땅도 가질 수 없고 1,000 루블의 돈도 돌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흠은 동네 촌장이 하는 말을 듣고 걸음을 서둘렀습니다조금이라도 더 빨리더 멀리 들판을 돌아서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바흠은 햇빛이 내리쬐는 들판을 돌아다니며 네 귀퉁이마다 구덩이를 파고 '내 땅'이라는 표시를 하다가 해가 막 저물려는 찰나에 간신히 출발지로 돌아왔습니다그러나 너무도 지친 나머지 출발지에 도착하자마자 피를 토하며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바흠이 숨을 거둔 뒤에 바흠의 하인은 괭이를 들고 바흠의 시신을 묻을 구덩이를 팠습니다그 구덩이의 크기는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단 2m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환경조건이 아니라 '나 자신'인 것입니다.

 

요 4:15-16 /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생수를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수는 영생을 주는 물로,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 충만함과 만족을 상징합니다. 이 여인은 일상적인 물에 대한 필요보다 더 깊은 영적 갈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바로 예수님이 그 갈증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감지합니다. 이는 믿는 우리들에게도 일상의 문제들을 넘어서는 영적 충만이 가장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시며 대화를 시작하셨고, 점차 그녀의 삶속 깊은 문제들을 드러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는 요청으로, 예수님은 여인의 삶의 진실을 꿰뚫어 보시며 영적 갈증과 해답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요청은, 예수님의 통찰력과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해 있는 문제를 치료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사역 방식을 나타냅니다. 이는 우리가 환경조건을 아무리 바꾸어도 목마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환경조건을 바꾸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욕망의 목마름을 해소하려 하지요. 하지만 인간은 무엇이든 두 배를 가지면 욕망은 네 배로 커지고, 세 배를 가지면 욕망은 아홉 배로 커진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에고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게 될 때,  끝없는 욕망은 계속 되지요. 환경과 조건과 상황이 좋아진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내 안에 계심을 온전히 깨달을 때,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내 안의 신성을 깨달을 때,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참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 4:17 /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이 구절은 사마리아,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한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여인은 진실을 말하여 자신에게 남편이 없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그녀에게 과거의 다섯 남편과 현재 동거하고 있는 남자가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고 그의 말을 인정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진솔한 고백과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이 대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사랑의 대상임을 나타냅니다.

4:18 /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이 구절은 그의 삶의 진실을 드러내시고 그와 함께한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은 여인이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으며현재 함께 사는 사람도 그녀의 남편이 아님을 아셨습니다이는 예수님이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계심을 나타내며그분이 단지 물리적인 갈증 해소만을 논하는 것이 아닌 영적인 필요와 목마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4:19 /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셨을 때 그분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선지자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고백합니다. 이처럼 수가성 여인은 자신의 속사정까지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가 주시는 생기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났습니다( 37). 그런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그의 말씀(로고스)은 우리의 핏속으로 흐르는 생명의 말씀(레마)이 되고, 그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혼을 살리는 생기로 충만해집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한,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먼저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명확한 목적이 없으면 일을 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곧바로 연결된다면 하나로 집중되어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힘에 의하여 일이 조화롭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조화롭게 하려면 인간 본래의 실재이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맞추어 재조정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주고 있는 가르침 중 이보다 더 큰 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나를 믿으면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너도 할 것이고, 그보다 큰일도 할 수 있다.”(요 14:12)

 

우리가 예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우리의 상념을 예수님에게 집중한다는 것이고 예수에 집중할 때 예수와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깨어 있는 눈으로 보면, 만사는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사람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혹은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즉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외부 환경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외부 환경에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한을 주어버리면, 그 외부 환경에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외부 환경에 따라 자기 마음속의 상태가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자기를 힘들게 한 힘이 외부에 있다고 인정하는 한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버린 권한에 복종했기 때문에 힘든 것이 구체화된 것인데, 나는 힘들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전능한 힘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에 복종하면 예수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구체화됩니다. "예수가 내 안에 계시다"라고 주저 없이 선언할 때 예수가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 안에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 안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생각하면,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엄청난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 속에는 모든 공급, 모든 지식, 모든 선함, 순수함, 완전함이 들어 있습니다.
이 내재하는 예수님에게 말하십시오. 예수가 내 안에 현존함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나에게 나타나서 나의 통치자가 되어 달라고 말하십시오.
“나는 이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예수가 확고히 실재하고 있음을 알고 감사한다.
이제 나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요,
전 존재가 순수해져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룩하게 임재하사 이 육신이라는 성전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완전히 충만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내 영혼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무한한 축복과 만족을 체험하고 있다.
이 축복과 만족은 영원히 내 안에 거한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내 속에 내 속에 확고히 임재해 계신다. 나는 순수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이다.”
라고 항상 생각하십시오.
이것을 잠재의식에 말하십시오.
그러면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임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나 감정, 행위를 청산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이때 억제할 수 없는 순수한 상념이 솟아오르고 이 상념이 우리의 전 존재를 통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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