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시다
갈 5: 1-6
우리는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모르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나서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잊고 지내는 겁니다. 가장 쉬운 예로, 건강이 그렇습니다. 건강할 때는 모르다가 건강이 안 좋을 때 그 소중함을 절실히 알게 됩니다. 있을 때에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다가 지나가면 깨닫게 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가치를 잊어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서 급하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바울 당시 갈라디아 성도들은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어 할례가 의에 이르는 최종 방법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형식에 의해 할례를 받는 것이 오히려 그리스도와의 친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갈 5:1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모든 연약함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다 받으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스스로를 정죄하던 일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자유함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그 어떤 종의 멍에도 멜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주님께서 나를 살리셨음을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 율법 아래로 들어가겠다는 것은, 구태여 율법의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살아가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은혜를 주셨는데, 자신이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의에 이르려고 하니 주님의 은혜는 인정하지 않는 꼴이 되버리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두 가지를 주장합니다.
먼저 굳건하게 서라는 말은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경계를 하며 굳세게 방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종의 멍에란 노예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잡아두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노예를 강제로 복종시켜서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일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갈라디아 교회는 이 자유를 반납하려고 합니다. 자유를 포기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어떻겠습니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 아닐까요?
첫째, 그리스도가 아무 유익이 없게 됩니다.
갈 5:2 /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할례를 받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주는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율법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자신의 의를 이루겠다는 말이지요. 이는 자신의 노력인 것이지,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단지 할례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둘째,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갈 5:3 /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할례를 받는 것은 스스로가 율법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율법을 지키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어디 할례 하나뿐인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물론이거니와 기록된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율법을 주장했던 율법주의자들은 모든 율법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할례와 절기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할례와 절기의 참된 의미를 가르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행위적으로 그것을 지키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과 그들의 주장을 따르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경고한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됩니다.
갈 5:4 /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이 율법으로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니 율법을 지키려다가 그리스도와 끊어지게 되고 은혜에서 떨어지게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오해하지 않도록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 주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 소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갈 5:5 /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쉽게 말해서 믿는 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기에, 모든 절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날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능력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제 이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날마다 우리 삶에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갈 5:6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할례를 받고 안 받고 내가 뭔가를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날마다 우리 삶에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심으로 믿음으로 사랑을 나타내게 하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 자유롭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우리의 상념을 예수님에게 집중한다는 것이고 예수에 집중할 때 예수와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깨어 있는 눈으로 보면, 만사는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사람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혹은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즉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외부 환경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외부 환경에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한을 주어버리면, 그 외부 환경에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외부 환경에 따라 자기 마음속의 상태가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자기를 힘들게 한 힘이 외부에 있다고 인정하는 한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버린 권한에 복종했기 때문에 힘든 것이 구체화된 것인데, 나는 힘들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전능한 힘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에 복종하면 예수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구체화됩니다. "예수가 내 안에 계시다"라고 주저 없이 선언할 때 예수가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상념)을 무리하게 현실화하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어리석은 행위가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힘이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랑의 힘), 만물의 배후에 있는 실재를 받아들이는 일만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자신의 본성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실재에 귀 기울이고, 따르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길이요, 예수와 하나 되는 길입니다. 진실로 마음속 깊이 원하는 것이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인간이 이 생명력으로 복귀할 때,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작용하기 시작하고, 우주는 그를 통하여 우주 자신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요 14:20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있다"라고 명확히 선언하는 것은 교회 성도들을 진보시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장합니다. 성장하는 성도는 이상을 세우고 그 이상에 맞는 비전을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은 성도는 언젠가는 비전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의 소원을 두고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그 소원과 비전을 온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안 이루어질 것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전을 마음속에 품고 집중하면 그 비전이 구체화됩니다. 마음은 본래 구체화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전이 명확히 세워지면 만물의 본원에서 필요한 것들이 흘러나와 그 비전이 구체화됩니다. 따라서 비전이 명확하면 명확할수록 그 결과도 더욱 명확해집니다.
마 28:18-20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있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체성에 크나 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예수는 언제나 존재하는 주체인 한 점에 집중했습니다. 오로지 아버지에게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한 점에 집중한다면 우리의 몸에서 빛이 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만 바꾸면 불안한 삶을 평안한 삶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로 향할 때 예수는 내 안에 계시므로, 우리가 바로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자유로,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연합하여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주님께 나의 에고를 내려놓고, 사랑 · 나눔 · 섬김 · 누림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부어주시고 허럭하시는 만큼, 내가 마음에 소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세상을 섬기며 내 안에 계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펼쳐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건강과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유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소망을 기다리고 믿음으로 사랑을 나타내십시오. 그렇게 자유를 통해 주님을 온전히 높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자꾸 얽매이던 것에서 자유하십시오!
이제는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것과 생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하루하루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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