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감사를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감사! 고마움을 나타내는 이 단어는 일상생활에서도 참 많이 쓰이지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로 어느 상황에서 감사를 표현하나요? 보통은 무언가를 받았을 때 감사인사를 합니다. 감사할 만한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대개 이와 같은 모습이 그려지겠죠? 한번 이미지를 보여주실까요?
두 가지 상황이 앞에 나와 있네요. 가장 많이 감사인사를 전할 수 있는 상황이죠. 선물을 받을 때와 도움을 받을 때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기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따릅니다.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해요. 내가 무언가를 받았을 때 우리는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고, 감사인사를 전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오가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인사를 전한다면 그 감사는 크게 가치 있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서로 주고받은 것이 없거든요.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이 상식, 그러니까 무언가를 받았을 때 감사하고, 받은 사람이 감사인사를 한다는 이 상식을 깨는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본문을 함께 살펴볼까요? 누가복음19장1절로1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오늘 본문은 소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요, 예수와 삭개오입니다. 예수는 어떤 인물인가요? 당대의 수퍼스타입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몇천 명이 모일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했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 같은 분이 없었거든요.
사람을 살리고,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놀라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 들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간략히 소개했으니, 그 옆에 나란히 적힌 이름의 주인공 삭개오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삭개오를 세리장이요, 부자이고, 키가 작은 사람이라 설명합니다. 세리장이자 부자... 이 설명 하나만으로도 당시 유대 민족에게 있어 삭개오를 향한 평가는 끝이 났습니다. 이 사람은 수퍼 스타 예수님과 전혀 걸맞지 않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에요. 삭개오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완전 밥맛이고, 비호감입니다. 세리장이 뭐길래 유대 사람들이 이렇게 삭개오를 향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걸까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죄인 취급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편에 서서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이방인인 로마 제국에게 바치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이유를 차치하고도 이방인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이방인과 교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분리되어 집에 들이지도 않고 식사도 같이 하지 않습니다. 세리는 그런 이방인인 로마를 위해 일을 하였고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으므로 부정한 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세리 중에서도 그들을 통솔하는 세리장의 위치에 있으니, 그를 향한 세간의 평가가 무척이나 박하였으리라 예상됩니다.
물론 삭개오가 죄인 취급을 당하기는 해도 직함이 주는 권세가 있어서 대놓고 그를 비난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리장에, 부자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더 그를 기피하고 멀어지게 하는 이유가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세리장이 되기까지 열심히 자신의 직무, 그러니까 동족의 돈을 거두어 로마제국에게 주는 일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요.
삭개오를 설명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키워드. 곧 그가 세리장이고 부자였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피하고, 그 사실을 삭개오가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는 것은 그를 설명하는 세 번째 키워드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키가 작은...'이죠. 사실 사는 데에 키가 작거나 큰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상황이 오면 적절히 양해를 구하고 감사인사를 하기만 한다면 웬만한 일은 쉽게 해결이 되지요. 그런데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자, 바로 나무 위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자기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안 삭개오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기보다 차라리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 큰 어른이고, 세리장으로써 율법과 체면이 중시되는 이 유대 사회 속에서 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삭개오는 자기 마을에 온 수퍼 스타 예수님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이 가실 길을 급하게 뛰어가서 나무 위로 올라갔고, 덕분에 예수님의 얼굴을 자세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삭개오에게 너무나 놀라운 일이 펼쳐집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방문하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야 겨우 얼굴이나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그 수퍼 타가 내 집에 가서 나와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그 약속에 삭개오는 세상을 얻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 하나만으로 그는 완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상합니다.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 것도, 집을 내어주어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것도 삭개오인데, 주어야할 입장이 되었지만 삭개오는 누구보다 감사하며, 더 나아가 자기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더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그의 정체성을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죄인 취급당하며 아무리 가져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표되었습니다.
삭개오의 인생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서로 감사와 기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삭개오의 감사가 우리의 감사가 되고, 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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