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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예수 이름의 권세, 행 3:1-10, 사도행전 시리즈 설교(15)

by tat tvam asi 202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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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름의 권세

행 3:1-1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늘 하신 말씀이 있다면,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제자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이후 초대 교회에서 기적과 표적이 많이 나타나 하나님을 찬미함으로 구원 받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3장은, 초대 교회에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사도들이 권능을 받고 기적과 표적을 행하고 말씀의 열매를 맺으며 부흥하는 가운데,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약 40세의 장애인이 걷게 되는 기적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 기적은 예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하여 줄 뿐만아니라, 초대 교회가 외부의 공격을 받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은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기록입니다. 선천적인 앉은뱅이가 걷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이라 불리던 성전 문 앞에서 앉은뱅이 걸인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합니다.

 

행 3:1-3 /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이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구걸합니다. 마침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필사적으로 구걸합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도 이 사람이 "한푼만 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구걸하는 사람은 몸을 땅에 엎드려 손을 벌려 동냥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형식적인 적선을 위해 그 사람에게 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며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려고 했습니다.

 

행 3:4-6 /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걷지 못하는 장애인은 적선해 줄 사람이 보라고 했으니 무엇을 얻을까 기대하며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적은 돈을 그에게 적선할 수 있는 있었겠지만, 사도들은 그에게 더 귀한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미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기에, 사도 베드로의 마음이 가만 있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겠습니까?

 

사도 베드로가 설령 은과 금이 있어 그것을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었던들, 그 사람이 그것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곧 돈이 떨어지고 나면 또다시 성전 문 앞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은과 금보다 더 값진 것을 그에게 주길 원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이름의 권능으로 말미암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길 원하였던 것입니다.

 

행 3:7-9 /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사도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능이 사도 베드로의 손을 통해 그 사람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러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사도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났을 때, 겨우 몸만 지탱한 것이 아니라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걸을 수 있었고 발과 발목의 힘으로 뛰기까지 했습니다. 

 

이사야 35 6절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 35:6 /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당시에는 장애인을 부정하게 여겼기에 성전 안으로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가 성전으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감개무량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은 육신의 치유와 비교할 수 없는 영혼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사람들도 엄청 놀랐을 것입니다.

 

행 3:10 /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성전에 정기적으로 기도하러 다닌 사람은, 성전 미문에 있던 구걸하는 그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오랜 시간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해왔기에 성전출입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얼굴과 옷 차림새를 보고 다 알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걸하는 사람이 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동어 반복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의 '놀랍게'는 '놀라움으로 인해 마비'가 될 정도라는 표현입니다.  두 번째의 '놀라니라'는 그야 말로 '황홀경'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약 40년 동안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걷고 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참 대조적입니다. 왜냐하면 성전 미문에서 초라하게 구걸하던 걷지 못한 사람과 금&은으로 장식된 높이가 약 23미터 나 되는 웅장한 성전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초라하다 할지라도 예수 이름의 권세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이름의 권세를 알아, 마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의 손이 되어 영혼을 살리듯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역사를 감당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습니까? 베드로 개인의 능력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 걸인을 단번에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고, 예수님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건 생활에 기초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행 3:1 /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는 경건한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3(지금의 오전 9), 6(지금의 정오), 그리고 제 9(지금의 오후3) 등 세 번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이미 두 번의 기도 시간을 가졌고, 세 번째 기도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습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언제나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고,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기질적으로 다혈질이라 순간순간 자신의 불 같은 성격이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불 같던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체험을 한 뒤, 자기 자신의 주장이나 계획이 다 사라졌습니다. 베드로의 삶은 오직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갑니다.

 

'내가 기도하였는데앉은뱅이 거지가 일어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운 생각이 들어, "일어나 걸으라" 명령하지 못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이목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살아계신 예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다 가지고 계시는 복의 근원이시죠!!! 그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베소서 1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복은 신령하며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이 모든 신령한 복을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안에 있는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전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슴을 여시고 그분의 심장으로부터 아름다운 불꽃을 꺼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을 여시고 예수님 심장에서 꺼내신 불꽃을 우리들 심장 안에 넣으셨습니다. 그 불꽃이 우리들 각 사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강렬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 불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불꽃은 우리들 가슴 속에서 점점 자라나 아주 커다란 불길이 되었습니다. 그 불길이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스치자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아픔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이 우리 몸 전체에 꽉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변했습니다.

 

가장 신기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담대히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기적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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