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요나서 설교 시리즈 ⑧, 욘 4:1-4,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다

by tat tvam asi 2024. 5. 25.
반응형


 4:1-4 /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우리말에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 적,  돌이킬 반,  꾸짖을 하,  지팡이 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 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입니다. 아마 어떤 경우에 이 말을 쓰시는지 사실 잘 아실 것입니다. 마치 우리 속담에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적반하장은 멀리 찾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요나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성내는 것이 옳으냐

 

 4:1 /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오늘 1절을 보면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라는 두 가지 표현을 나타냅니다. 물론 그 대상은 니느웨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2절에서 볼 때 하나님입니다. 그는 왜 싫음과 성냄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을까요?

 

우선 요나가 살던 시대는 앗수르라는 나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많은 고통을 받았던 시대입니다. 따라서 요나는 앗수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앗수르라는 나라를 심판해야 한다는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싫어하는 앗수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돌이키신 것입니다.

 

 3:10 /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런데 문제는 40일이 지나면 무너질 줄 알았던 니느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돌이킴을 보시고 자신의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요나는 지금 얼마나 감정이 격해져 있겠습니까? 이러한 표현으로 1절은 매우 싫어하고, 성낸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니느웨에게 하는 감정을 넘어 하나님께 하는 표현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입니다. 결국 요나의 분노는 극에 달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항변하는 기도를 합니다.

 

4:2 /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의 기도를 보면 아주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우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르는 것이 자신이 고국에 있을 때 이렇게 될까봐 안 간다고 한 것 아니냐는 것으로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나는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나하면 2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요나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지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임을 요나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미 자신을 부르실 때부터 요나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통해 니느웨를 회복시키려고 하셨으며, 그래서 그는 도망친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사실 선지자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죄인이 회개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그리고 죄인이 죄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 용서하심을 받는 것을 기뻐해야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합니까?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니느웨만큼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용서하지 않으셨으면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을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즉 그는 편견이 있는 선지자였으며, 수많은 오해를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을 끌어당기는 선지자였다는 말입니다.

 

사실 요나는 지금 이 말씀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다시스로 도망하던 요나가 기도하자 요나를 살리신 분입니다. 이미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가를 체험한 선지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니느웨는 요나가 선포한 말씀을 듣자 곧 하나님을 향해 금식을 선포하고 재에 앉아 철저한 회개를 할 때 하나님께서 선포하셨던 심판을 거두십니다.

사실 죄인이 돌아오는 것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항상 바뀌는 분이십니다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시면서까지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요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3절에서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라고 아주 독설 아닌 독설을 고백하지 않습니까?

 

 4:3 /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절에서 말씀하시길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4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는 지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는 아는 것과 삶으로 살아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요나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면서도, 아버지가 어떠한 분인지 알면서도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은 거룩한 분노라고 하는 입장을 취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자신이 아는 것과 삶의 방향이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신앙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내 중심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도 멀리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금 내 안의 신앙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혹시 나도 요나처럼 하나님을 향해 성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이 거룩한 분노가 아니라 내 욕심이며, 내 교만이라면 주님은 분명 우리에게 묻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내게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신다면 내 안의 잘못된 생각과 신앙을 다시금 돌이키는 더 올바르고 위대한 용기를 소유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내 생각이 더 대단하고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대단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시금 내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삶의 변화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