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된 초대교회
행 4:29-31
사도행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도들이 자주 모여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똑같은 모습은, 저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마다 무릎 꿇고 같이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토록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의 배경은, 나면서 앉은뱅이를 낫게 해준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에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낫게 한 일은 자기들의 신령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권능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설교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주와 주님 되심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 관원들이 그들을 불러다 놓고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 행 4:18 /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못 박은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의 수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리던 종교적 기득권을 빼앗길까 염려가 되어서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위협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길, 초대교회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요. 만일 초대교회가 태평하였다면 오늘처럼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도요. 초대교회에 있었던 많은 문제들이, 성도들을 예수님 앞에 나와 기도하게 만들었고, 그 기도를 통하여 초대교회가 강력한 영적 군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 기도를 통하여 자기 자신과의 내적 전쟁을 치루는 것입니다.
기도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자신의 에고적인 성향을 내려놓고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 성령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그 음성에 순종하는 치열한 전투이지요. 힘들고 어려울 때 억지로라도 기도하는 자리로 나가면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함께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도들을 하나님의 영과 가까이하게 하고 그로인해 강하게 만드는 것은 기도입니다.
스포츠나 연예 분야에 '2년차 징크스'(sophomore jinx)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 중에 데뷔 첫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두 번째 시즌 때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말입니다. 그리고 가수나 배우들 가운데 첫 노래나 첫 작품을 크게 히트를 친 사람들이 다음 노래나 작품에 부진한 경우가 많아서 생긴 말입니다. 첫해에는 크게 성공을 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높아진 기대치와 과도한 중압감 등이 겹쳐서 다음 해에 슬럼프에 빠진 것입니다.
아마 당사자가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은 정말 대단할 것입니다. 작년에 그렇게 잘 됐었는데 금년에는 잘 안 되면, 이렇게도 해 보고 또 저렇게도 해 봅니다. 하지만 역시 잘 안 됩니다. 문제는 자신이 그 이유를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컨디션도 괜찮고, 오히려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는데,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주변에서 왜 그러냐고 묻는데, 뾰족이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는 영적인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영적인 기쁨도 누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앙생활이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적인 기쁨도 사라집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슬럼프입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가 있었습니다. 이 아들 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아들이 학교 간 뒤에 교회로 달려갑니다.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교회 앞 카페에서 가까운 친구와 만나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눕니다.
친구가 묻습니다. "요즘 아들은 어때?”
기도를 마치고 나온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말도 마!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나 너무 힘이 들어, 미칠 것 같아.”
엄마가 깨닫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선 스스로 기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하여 전혀 신뢰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나와서도 여전히 염려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했을까요?
"지금 힘이 들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심을 믿어요."라고 말해야 했지요.
그런데 엄마의 입에서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결단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염려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 기도할 힘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 빌 4:6-7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 과학에서 밝혀내고 있지요?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어요.
❚ 잠 4:23 /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자, 이제 우리의 기도를 막는 두 가지 이유를 살펴봅시다.
하나는 염려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 노년이 된 많은 분들이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건강, 물질, 관계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서 그렇지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질 때 어떻게 우리 마음을 다스려 나가야 할까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자신이 구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선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지요.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이 마음에 생기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생명력이 제대로 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이지요. 즉 우리 감정이 밝아지고 그에 따라 마음의 진동수가 높아져, 하나님의 창조성이 우리 안에서 드러날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 속에 그저 머물러 있을 때는, 주님이 응답하신다는 확신이 없어,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힌 상태가 바로 염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서운한 마음이 있을 때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정말 할 만큼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이 생기도록 내버려두시는가' 하는 서운함입니다.
'나만큼 신앙생활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도 저렇게 큰 복을 받으며 사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렵게 내버려두시는가' 라는 서운함이 있을 때 기도가 막히게 됩니다.
염려와 서운함을 곱씹으면, 나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기도할 때 감사로 시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전쟁하러 나왔는데 두려워 벌벌 떨며 "우리 군대 수가 적은데 이제 다 죽겠다" 벌벌 떨며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두려움은 동료의 사기마저 빼앗아 갑니다.
두려움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정말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나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결국 우리 인생이 승리하는 비결은 성령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시작할 때 모든 두려움이 떠나가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 안에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靈)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고 마음속에서 감동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을 때,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있기에, 마음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을 때, 그 어떤 지식과 경험보다, 다른 이의 그 어떤 충고의 말보다 위대합니다.
지식 가진 사람이 머뭇거리고 두려워할 때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돌파합니다. 경험 가진 사람들이 그 경험이 이 상황에도 맞는가 두리번거릴 때, 하나님의 계시를 그 마음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것이라 확신하기에 정면 돌파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2. 이 싸움에서 승리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예수님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질병과 어려움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우리는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진동수가 낮아지니까요.
인간은 온 우주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 내면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성이 우리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현실이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 감정, 말은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 그것과 비슷한 유형의 것들을 더 끌어모은 다음, 그에게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이 모습을 인간이 명백하게 볼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낳았는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로부터의 해방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창조물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완전한 결의로 자기 자신의 신성과 마주하고 그 신성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생각'과 '느낌'은 '살아서 고동치는 것들'이며, 이를 아는 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혜를 사용해 자기 자신이 만드는 상념과 감정들을 통제할 것입니다.
온 우주에 아니계신 곳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권능의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부름에 사랑의 현존으로 답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것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 요 10:30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가 내 안에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과 하나이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하여 온 세상으로 퍼진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예수님과 하나 된 자로 여기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예수와 하나인 자로 보면 생명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이름 안에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 안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생각하면,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엄청난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 속에는 모든 공급, 모든 지식, 모든 선함, 순수함, 완전함이 들어 있습니다. 이 내재하는 예수님에게 말하십시오. 예수가 내 안에 현존함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나에게 나타나서 나의 통치자가 되어 달라고 말하십시오.
"나는 이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예수가 확고히 실재하고 있음을 알고 감사한다. 이제 나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요, 전 존재가 순수해져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룩하게 임재하사 이 육신이라는 성전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완전히 충만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내 영혼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무한한 축복과 만족을 체험하고 있다. 이 축복과 만족은 영원히 내 안에 거한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내 속에 내 속에 확고히 임재해 계신다. 나는 순수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이다."라고 항상 생각하십시오. 이것을 잠재의식에 말하십시오. 그러면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임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나 감정, 행위를 청산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이때 억제할 수 없는 순수한 상념이 솟아오르고 이 상념이 우리의 전 존재를 통치하게 됩니다.
❚ 행 4:24 /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있다"라고 명확히 선언하는 것은 교회 성도들을 진보시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장합니다. 성장하는 성도는 이상을 세우고 그 이상에 맞는 비전을 갖습니다. 이와 같은 성도는 언젠가는 비전을 이룹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의 소원을 두고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언제나 오로지 아버지에게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님께 집중한다면 우리의 생각이 변화될 것이고, 생각이 바꾸면 불안한 삶을 평안한 삶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로 향할 때 예수는 내 안에 계시므로, 우리가 바로 예수가 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온 마음을 예수님께 얼마나 열어놓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의 영, 성령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으로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 요일 4:4 /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힘들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등의 파괴적인 생각이 들어올라치면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크심이라' 선포하며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끝까지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 마 28:18-20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능력이 오직 예수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 행 4:30 /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 집니다"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기도하는 가운데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아마 처음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이 그들 가운데 넘치게 되자, 마음속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나의 문제는 예수님이 해결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 행 4:29 /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이라는 책에 '소중한 희망'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가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화가의 화랑 3층에 젊은 부부가 아기 하나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아기의 오른쪽 눈에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기 엄마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보면 정상적인 사람인데도 눈을 감고 조심조심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아기 엄마가 아기 돌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릴 때 아기 눈을 아프지 않은 눈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화가는 맨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데 자꾸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다가 반복하다가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아기 엄마가 너무나 기뻐합니다. 그리고 아기 엄마는 화가에게 이야기를 하여 줍니다. "우리 아기가 더 크면, 우리 아기한테 내 눈을 이식해 줄 거예요. 그러면 저 그림처럼 내 아기도 예쁜 눈을 가질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한 쪽 눈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 쪽 눈으로 밥을 먹고, 한 쪽 눈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한 쪽 눈으로 길을 걷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에게 영원한 생명주시기를 원하시는 엄마 예수님을 우리가 알 때 우리는 더 이상 모든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다윗은 젊은 사자도 궁핍하여 주리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 시 34:10 /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를 찾는 자에게는 모든 좋은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님이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이 그 마음에 들어오자,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두려움이 떠난 초대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 행 4:31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초대교회가 위협과 조롱 앞에서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권능의 주님께서 자신들을 통하여 역사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님의 자녀와 백성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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