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사랑
몬 1:8-13
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혀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 한 죄수가 들어왔는데 그의 이름이 오네시모라는 죄수였습니다. 그는 원래 노예 출신이었고 빌레몬이라는 아주 부유한 주인을 배신하고 그의 재산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쳤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바울은 그를 너무 너무 사랑합니다. 뗄야 뗄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의 손에 이 빌레몬서를 기록해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빌레몬의 상처가 컸을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편지를 가지고 왔지만, 쉽게 빌레몬이 용서할 수 있을까요? 아마 바울도 오네시모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빌레몬은 바울의 동역자인데,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오네시모를 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오네시모의 인생을 바꿔 놓으신 것입니다.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가 아니라 갈 길을 잃어 방황하는 한 마리의 잃은 양으로 오네시모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소개 받습니다. 바울은 지극한 사랑과 정성을 가지고 오네시모에게 사랑을 증거하고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오네시모는 삶이 바뀝니다. 바울의 수종자가 되어 바울의 동역자가 됩니다. 그럼으로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었기에, 빌레몬에게 사랑으로 부탁하고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몬 1:8 /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물론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자기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제자인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몬 1:9-10 /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러나 나이가 많은 연장자인 바울은 빌레몬에게 능히 명령할 수 있지만 그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사랑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네시모를 가리켜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 말합니다. 바울은 한 영혼이 새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기꺼이 해산하는 수고 같은 헌신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좋은 믿음의 동역자를 얻었습니다. 연로한 바울을 위해서 오네시모는 옆에서 바울을 수종들면서 그의 좋은 말 친구가 되었고 그를 대신해서 아마 글을 쓰는 대필 역할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형기가 끝난 오네시모를 옆에 두고 싶었지만 그를 옛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 보냅니다.
몬 1:11-12 /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 또는 ‘가치’를 뜻하였지만 그는 죄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무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그 인생이 180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가까이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법률은 도주한 노예가 잡히는 경우 그 생사권은 종의 주인에게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이미 회개하고 거듭났으므로 새 사람이 되었으나 그의 주인 빌레몬으로부터 법적인 용서는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육신의 상전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냄으로서 용서를 받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회개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오네시모에게는 하나님의 용서 뿐 아니라 그와 더불어 사람에게 받아야할 용서도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심복은 내 심장을 뜻하는 말인데 이 낱말의 원어 동사형은 '긍휼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의 심복으로 말한 것은 회개하고 거듭난 오네시모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현입니다. 당시 사회의 형편으로는 종에 대한 인권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한 종이 된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신앙적으로 바울의 친자식처럼 맞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회개 후 바울에게 유익한 존재가 된 오네시모를 신실한 성도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되 다시 돌아와 복음을 위하여 갇힌 자신을 돕는 자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 보냈던 것입니다.
몬 1:13 /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바울에게 있어서 오네시모는 단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심복으로 계속 그의 곁에 두고 싶어했고 종으로서가 아니라 형제의 관계로 두고 싶어했으며,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할 만큼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이제 오네시모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사랑은 그 영혼을 구원시키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오네시모는 어느덧 바울의 심복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에게 속을 몽땅 빼 줄 정도로 마음을 쏟았습니다. 동시에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무조건 복종할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자기를 시중 들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네게로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고 본문이 밝혀 줍니다. 결국 빌레몬서와 함께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다시 바울 사도에게 보내어 시중들게 하므로 바울 사도를 따라 서반아 전도에 동행하였고 그후에 바울과 함께 로마로 돌아와서 함께 순교할 만큼 그는 바울의 심복이었습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용서'라는 단어가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용서의 사랑'은 무익한 종 오네시모를 살려 마침내 유익한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의 사랑'은 바울과 빌레몬과 오네시모와 모든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그 무엇보다도 '용서의 사랑'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용서와 사랑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로 미워하는 응어리진 마음은 지옥을 살아가는 것과 같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바울과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이어 주는 용서의 사랑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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