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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웨슬리 설교 14 '신자의 회개‘(The Repentance of Believers)를 고찰한, 그 특별한 시간 (Ⅸ)

by tat tvam asi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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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위해서 회개와 믿음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웨슬리는 회개와 믿음을 기독교의 관문으로 보았고, 회개는 믿음에 선행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깨달음이 죄 사함에 대한 믿음에 앞서 있기 때문이 다. 그리고 회개는 구원의 믿음의 필수적 조건으로 회개의 열매를 요청한다.

 

회개는 단순히 어떤 일을 잘못했다’ ‘저지른 잘못을 후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보다 훨씬 깊은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참된 회개는 다음 세 가지의 내용들을 포함한다.

 

​①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자신이 지닌 부패한 본성을 철저하게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릇된 평가, 즉 교만 을 의미한다. 이 교만은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헛된 욕망을 품는 것과 동일한 것으 로 이것이 바로 사탄의 형상이다. 여기서 나는...이다라 는 헛된 망상, 달리 말하면 아집이 만들어진다. 회개는 바로 이 같은 우리의 실상, 비참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② 이런 상황에 처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부 패한 본성을 목도하면서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함 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죄에 죄를 더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실상을 명확히 알고 있기에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거나 심지어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해도 거기에 마음을 팔거나 귀를 기울일 수 없다.

 

​③ 셋째는 복음을 발견하게된다. 자기의 실상을 분명히 알게 되면, 또한 자기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부터 벗어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은총 가운데 예비하신 복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죽음의 문 앞에서 죽음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 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이다. 이렇게 진실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늘은 멀지 않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진실로 회개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믿음이다. 이 믿음은 영적 세계에 눈 멀어있던 이에게 빛과 같다. 눈 먼 자에게 갈 길을 알려주고,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춰주며, 어리석은 자에게 진리를 깨우쳐 준다. 부패한 본성에 서 만들어진 편견과 이 세상 위에서 터 닦은 어리석은 지혜를 단번에 허물어뜨리는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참된 진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온갖 망상과 장애물들을 쳐부수고 참된 진리의 근원 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이 믿음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사실과 우리 죄를 자신의 몸에 온전히 지우신 사실, 그리고 우리 죄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고 확신케 한다. 곧 죄인인 나를 행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대한 거룩한 확신이며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게 하고 확신케 한다. 이 인식과 확신을 통해 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은 죄의 사슬에서 해방된다. 죄 사함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회개에 대한 설교를 읽다가 원죄에 대한 설교문을 다시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불신앙(무신론) 교만 자기-의지 세상의 사랑(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원죄의 요소를 다시금 살펴보게 되었다.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거룩이 사라지고 악마의 형상과 짐승의 형상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Way to the Kingdom)에서 우리의 모든 능력, 영혼의 능력이 타락했고, 전적으로 타락하여 모든 기반이 정도에서 떠났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이성, 의지, 자유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게 되었으며, 인간 욕심 이 가득하여 통치도 타락해서 힘만 생기면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개인적이고 이기적 목적을 이루는 데 급급하다고 하였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심리학을 공부할 때, 우리의 의식은 무의식이 지배한다는 이론과 연결지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 부모의 양육을 받으며 자라나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되는데, 상처로 인한 내면의 아픔은 각 사람의 생존과 방어를 위한 전략을 찾아내게 되고 자기를 지키며 보호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성격으로 발달된다는 것이다. 우리 내 면의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처로 인해 변형되어 나타나는 성격은 만 6세까지 형성되고 확정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개인의 내면에 있는 6살짜리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원죄와도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꼬이고 문제가 발생하고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 힘을 격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격정이라는 힘에 의해 세상이 휘둘리고 소용돌이 같은 혼란에 빠져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서로를 탓한다. 이 어두운 힘의 근원에 저항하고 다룰 수 있으려면, 온전한 회개(μεταν οέω)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려면, 내가 하나님 안에서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어야만 가능하다.

 

성격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면서도 감옥에 갇힌 줄 모르고 살면서, 상처 쓴 뿌리 왜곡된 믿음 체계로 인 해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을 보이며 서로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는 되물림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6: 24) 이 말씀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을 부인해야 하는 것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자신 안에서 습관적으로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들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묶여서 운명처럼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험과 추론에 기초한 기억에서, 또한 욕구에 기초한 신념체계에서 현실을 조정하려고 애쓰고 발버둥 쳤 다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인 나 자신이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이 세상에 주의 뜻을 이룰까?‘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현재에 대한 감정이 형성된다. 미래는 며칠 뒤에나 우리에게 찾아오는 막연하고 희미한 어떤 것이 아니다. 미래는 이미 우리의 희망과 두려움, 꿈과 계획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꿈과 희망 을 가지고 어떤 것을 바라거나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부분이 오늘의 나를 계속 이끌어 나가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현재가 행복하고 불행해질 수도 있듯이 미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도 우리의 현재가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현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왜곡시키는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써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보다도 아침 공기의 냄새를 추적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본질적으로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지, 그냥 가만히 정지해 있거나 뒤로 가는 것은 아니다.

 

절망은 미래가 닫혀 있고 변할 수 없고 무의미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내면적 정신 구조이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믿기로 선택하면 다른 가능성과 대안들이 생긴다. 희망의 느낌은 미래를 내 앞에 열려진 세계로 바라보며, 극복해 나갈 길이 있다고 믿게 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미지를 형성하지 않고,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에 의존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 하나님의 이루심 을 상상하고 그것을 선포하여 행동해야 한다! 과거의 쓴 뿌리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믿고 상상하고 입으로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계속적으로 선포하고 행동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선포하고 행동할 때, 우리 뇌의 기억과 잠재의식이 바뀐다. 우리가 정말로 믿고 선포하면 우리의 뇌의 기억과 잠재의식의 프로그램이 바뀐다고 한다!

 

걱정은 주로 미래를 다룬다. 걱정은 외로운 행위이다. 걱정은 우리로 하여금 불안하며 초조하고 긴장하게 한다. 걱정은 희망을 잃고 비관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두려움/죄의식/수치심/집착/거절감/강박 등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져버린 삶에서 돌이키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깊고 깊은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알게 되고, 온 우주가 아버지의 것이고 자신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기를 부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를 억압하고 위축시키는 모든 힘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더 이상 그 위에 군림하는 힘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 하나님의 이루심을 상상하고 선포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쓴 뿌리, 습관적인 성향 등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믿고 상상하며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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