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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웨슬리 설교 40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을 고찰한, 그 특별한 시간 (Ⅹ)

by tat tvam asi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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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무엇인가? 웨슬리는 성화를 일차적으로는 교리보다는 기독교적 삶의 주제로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이 땅에서 순례하는 신자, 성도의 삶이다. 완전 또는 완전 성화는 곧 성령 안에서의 사 랑의 삶이다. 종교개혁 이후 지나치게 믿음만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인 도덕적 삶과 실천을 경시하게 된 신앙의 현실에 대응하여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성결한 삶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웨슬리의 완전의 교리는 성서와 고대 교부들의 사상적 토대에 기초한 거룩함의 신학, 사랑의 신학, 실천의 신학, 성령의 열매를 맺는 신학이라 말할 수 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기독교의 중심 주제이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완전이자,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다. 웨슬리는 그것을 의도의 순수성이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며, 온갖 더러움과 모든 내적. 외적 불결을 탈피하는 마음의 할례이자,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 말한다. 즉 웨슬리에게 있어 완전은 의와 참 성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워지는 것이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웨슬리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말함에 있어, 이를 인간의 무지나 실수 등에서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자유로 본 것이 아니다. 그는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동기가 되는 문제로 보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문제도 그 동기의 순수성에서 찾았 다. 실수 또는 무지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도 율법의 위반이며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함에는 틀림없으나 웨슬리는 이러한 실수를 죄로 부르지 않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에는 완전한 것이 없다는 반대에 부딪치면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어떤 의미에서 불완전하며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것인가를 밝혀야 했다. 웨슬리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도 불완전한 면을 가지게 됨을 인정하며, 그것은 지식 에 있어서 완전할 수 없고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에서의 불완전성이라 이야기한다. 하나님 앞에서 털끝만큼도 잘못이나, 허물이 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칼빈의 완전에 대한 신학은 바로 여기에 시작과 끝을 맺는다. 불완전한 인간은 지상에서가 아닌, 그 사후에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진고 결론 내린 칼빈과 달리, 웨슬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한 성화를 말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완전은 단계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완전이다.

 

웨슬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낙관론이 있었다. 웨슬리는 부정적인 인간이해, 죄성, 타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부정한 인간이 부정하지 않음을 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그를 계속 붙잡기 때문이다. 웨슬리에 따르면 성결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삶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의식적 죄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순간순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은 순간순간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가능한 완전인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단일적 사건, 영구적 완성이 아닌, 순간적이고 점진적인 완전이다. 그리스도인은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사랑과 형상 안에서 성장하며, 죽을 때까지만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인간론에 휩싸여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미루는 패배주의의 믿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 영혼에게 이루신 구원을 확실히 믿고 진취적으 로 삶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웨슬리의 신학은 설교하고, 노래하고, 생활하는 신학이다. 웨슬리는 결코 신학을 교회 현장이나 교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부터 유리시키지 않았다. 그에게 신학은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로서 성결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원리와 지침을 전달하는데 있었다. 웨슬리의 신앙과 생활의 생생한 역사를 관찰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거룩한 사랑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의의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중세 카톨릭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은 이신칭의라는 성서적 교리의 회복을 이끌었지만, 믿음으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하여는 강조하지 못했다. 이에 웨슬리는 당시 극단적 칼빈주의와 18세기 영국의 타락한 상황에 마주하여, 루터와 칼빈과는 달리 성화를 향한 인간의 응답, 참여에 강조점을 두었다. 칼빈주의자들의 완전이 예정론에 따른 구원의 표시로서의 완전이었다면, 웨슬리의 완전은 사랑과 순종 을 통한 완전이었다. 순종과 사랑을 포함하고 그 자체가 역동적이며 하나님의 은총에 계속적으로 응답하는 구원의 길은, 다른 사람들과의 전반적인 관계와 하나님을 향하는 전적인 사랑에 전념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한 사랑 또는 성결이다

 

성화는 우리의 원형상인 하나님의 형상을 향해, 의와 참된 성결로 매일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 점진적인 변화는 부주의한 무관심이나 태만함으로써가 아니라, 활발한 전적 순종과 모든 계명의 열성적 준행과 경성과 수고함으로써,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우리 십자가를 짐으로써 기다리는 동시에, 진지한 기도와 금식,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규례에 철저히 참여함 속에서 기대되어지고, 이루어진다. 웨슬리는 은총의 수단, 곧 신자들이 완전한 성화에 이르기까지 은혜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들을 소개함으로 이 변화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웨슬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삶과 끊임없이 사랑의 실천과 찬송, 기도 등의 은총의 수단을 통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그려낸다. 웨슬리에게 있어 경건의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편이고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처럼 성화되었다는 것, 타고난 부패에서까지 구원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증거와 열매로 알 수 있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항상 거하고, 변함없는 오래 참음과 인내와 포기함으로, 모든 노여움을 초월하는 온화함으로, 심령이 양선하고 온순하고 사랑스럽고 부드러움으로, 충성됨과 단순함과 경건한 성실함으로, 심령이 온유하고 평온하며 흔들리지 않음 으로, 음식과 수면 그 밖의 모든 본성적 영적 일에 절제함으로 알 수 있다.

 

웨슬리 신학은 양극을 절묘하게 화해시키는 접속, 연결의 신학이다. 실로 웨슬리는 의인과 성화, 설교와 삶, 신학과 교회, 카톨릭주의와 개신교주의 등의 대립적인 요소들을 '하나님의 은혜'라는 한결같은 주제로 화합시켰다. 웨슬리의 신학 은 그리스도인의 완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함으로 곧 인간의 응답에 대한 강조와 함께 하나님의 주권을 동시에 세워나간다. 웨슬리 학자 아우틀러는 특히 웨슬리가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라는 개신교적 대원리와 '성결의 삶'(holy living)이라는 가톨릭적인 대주제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했다는 사실에서 웨슬리 신학의 고유한 위치를 찾고자 한다.

 

웨슬리는 그의 신학을 이론, 사변적 학문으로서가 아닌 삶, 설교로 적립해 나갔다. 웨슬리 신학은 형이상학적이 고 추상적인 신학의 추구를 넘어,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실천적 신학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개인적 성화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추구함으로, 사회를 개인의 성결을 위해 피해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성화된 사람이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하는 사랑의 실천의 장으로 열어나갔다.

 

우리는 완전이라는 말에 알러지가 있다. 그동안 사회 내의 경쟁과 성공에 대한 목마름 속에서의 완전은 완벽에 이르기까지 나의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 수고를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완전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케 되는 것, 거룩한 사랑에 참여하는 것,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라 말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웨슬리의 복음사역은 곧 수많은 영혼 구원과 영국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도출하였다. 웨슬리의 복음사역의 전 과정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으로,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 은혜의 초청은 웨슬리의 시대, 웨슬리라는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현재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도 열려있다.

 

영적 분별의 능력은 상실되고, 인간은 점차 완성을 위한 하나의 부품처럼 사용되는 현 시대에 성결과 은혜, 사랑 그리고 실천을 선포하는 웨슬리의 완전론을 재발견하는 작업은 지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힘이 되어줄 뿐 아니라, 더 나아 가 개인과 교회를 연결시키고, 그리고 한국 사회에 실질적인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촉진시킬 수 있는 힘을 제공하리라 사료(思料)된다.

 

구원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체험일 뿐만 아니라, 긴 연속적인 과정이다. 웨슬리의 입을 통해 나온 처음부터 끝까지의 외침은 성결이었고, 구원론이었다. 웨슬리의 신학, 설교, 삶을 다시 되새기면서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삶의 과정들 속에서 하나님이 태초에 우리게 주셨던 잃어버린 우리의 형상들을 되찾기 원한다. 하나님과 일치됨, 내적·외적 거룩함, (sola fide, holy living)를 같이 말하는 웨슬리의 신학이야말로 사랑과 성결이 부재한 이 시대에 각별히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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