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삶
갈 2:17-21
바울은 본문에서 3번의 가정법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여 주시고, 이제는 주님과 깊은 교제의 자리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1. 바울은 17에서 가정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갈 2:17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죄인으로 드러나면” 이는 의롭다함을 얻은 후에도 실수하고 넘어질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어떤 오해를 예상하게 되느냐 하면, “당신은 지금 율법의 행위는 필요 없다.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이냐?” 비난 받기 쉽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은, “지금 당신은 죄를 조장(助長)하고 있소. 당신은 도덕폐기론 자요” 하고 비난할 것을 예상하고,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고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7하) 단호히 거부합니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중보로 인간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로 옮겨지고, 그리스도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칭의'(Justification)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변화를 말씀하십니다. 은혜로 생명을 얻었다면 이제 믿는 사람이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랑의 힘을 통하여 '성화'(Sanctification)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용서의 삶, 사랑의 삶을 성령님의 도우심을 붙들고 걸어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은 18절에서 다시 가정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갈 2:18 /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도 '의인'(義人)으로 모든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 없다 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헐어버린 율법이 다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가정법을 사용하여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미 율법의 요구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갈 2:19 /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로마서 6장11절을 먼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롬 6:11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1절에는 “죽었다”는 말과 “살았다”는 말이 들어있는데, 나무를 예로 들면 “죽었다”는 말은 끊어짐을 의미하고, “살았다”는 말은 접붙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진영(陣營)에 소속이 되어 있던 내가 거기서는 분리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진영에 속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얻기 전에는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를 출애굽을 들어서 설명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로의 군사는 홍해까지는 추격을 해왔습니다. 다시 노예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간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사로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왕국에서 은혜의 왕국”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간악한 사탄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악용(고전 15:56)하여 나를 정죄하고 결박하여 가두었으나, 이제는 은혜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지배 하에서 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됩니까?
이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갈 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혼동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육체는 죽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육체와 영의 속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육체와 영은 서로 상반된 위치에 있지만,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육체 속에 살면서도 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에 산다 말하지만, 육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것이 육체냐 성령이냐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삶에 참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진정한 길입니다.
인간과 세상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세계관은 개인이나 국가의 존립에 두려움을 조장하게 마련입니다. 날이 갈수록 전쟁과 파괴적인 힘을 가진 여러 형태가 발전됨에 따라, 이러한 두려움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더욱 가공할 만한 것은, 물질적인 파워의 끝판왕은 더욱 발전되고 확산될 것입니다. 요즘 최첨단 AI 인공지능에 관해 여러 성도님들도 많이 들어 잘 아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물질로 바라보고 해결하려 한다면 희망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세계를 영적으로 바라보고 인식해야 합니다. 영적인 의식을 갖고 살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안전, 조화, 건강, 풍요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과 우주를 물질로만 보는 것에서, 자기 자신이나 세계를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영’의 실재를 스스로 체험하고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근본이치를 터득한 사람, 성령의 깊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그 뿌리가 튼튼하여 세상 풍파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리 쏠리고 저리 밀리면서 어렵게 살아오셨지요?
온 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고전 2:11-12 /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들의 인생 여정의 중심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열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우리가 잘 깨닫고 우리가 전해야 할 가장 기쁜 소식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정죄를 받았는지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죄 없이 함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바울은 21절에서 가정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갈 2:21 /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마지막 절에서 본 장의 결론과 같은 말씀을 합니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하고 본 주제로 돌아갑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다시 말하면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1하)고 말씀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의롭게 되는 방도가 달리 있는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면, 그것은 헛된 죽음을 죽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만 헛된 데로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21상) 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폐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은혜의 영원성을 증거하신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청산하시어 나로 의인이 되게 하였은즉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세상 한가운데서 날마다 기뻐하며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삶을 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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