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시날 땅으로 옮긴 에바 환상
슥 5:5-11
1. 에바 속에 한 여인
오늘은 스가랴 선지자가 시날 땅으로 옮겨지는 에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슥 5:5-6 /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이니라 하시고 또 이르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 스가랴에게 천사가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천사가 에바라 말씀하여 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에바’는 곡식의 양을 측량하는 용기인데 약 22리터에 해당하는 광주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도량형으로 한 말은 20리터입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큰 말을 에바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에바란 함량 미달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도구라는 의미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까닭은 ‘기준, 모델’을 삼으셨는데 그 사명(부르심, 택하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기준’은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불의한 기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즉 ‘소금’은 ‘소금’인데 ‘맛을 잃은 소금’이 된 것입니다.
▶ ‘그들은’ 결국 성전 재건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고 거역한 이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검처럼 축복과 저주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축복과 저주의 기준은 준행(순종)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슥 5:7-8 /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 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그가 이르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 ‘이 에바 가운데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다시 말하면 곡식과 열매를 담아야할 에바 속에 죄악이 담겨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에바 속에 ‘악(惡)’이 가득 차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지금 죄악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곡식과 열매를 담아야할 ‘에바’ 속에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은, 본래적인 역할을 망각하고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불의하고 부정확한 ‘에바’가 된 것입니다. 에바는 본래 정확하게 분량(分量)을 측정하는 도구인데, 지금의 이스라엘은 정량을 계측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목적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혈로 변질되어 거룩함을 상실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 ‘둥근 납 한 조각’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가리킵니다.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그 여인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한 문장에 ‘던져’라는 단어를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던지다’(히브리어 솰라크)는 ‘버리다. 멸하다. 폐기처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과 기능에서 벗어난 가치를 상실한 도구는 결국 용도 폐기되고 말 것이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2. 악인의 길, 의인의 길
슥 5:9 /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오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 ‘학의 날개 같은 날개’
날개가 있다고 다 천사가 아닙니다. 십자가가 교회를 상징하지만, 주님을 떠난 교회가 더 이상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두 여인’은 누구입니까? 일반적으로 두 여인은 타락을 부추기고 촉진시켜서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는 모든 대적을 말합니다. 두 여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묵시가 전해진 시대적인 정황을 살펴야 합니다. 성전 재건이 16년 동안 지연되고 중단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전 재건에 쓰임 받은 이들(스룹바벨, 여호수아,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이 있는 반면, 성전 재건을 방해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두 여인’은 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성전 재건을 훼방했던 ‘산발랏과 도비아’와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이스라엘 내부의 적들과 외부 세력을 말할 수 있습니다.
▶ 이 묵시에 기록된 ‘두 여인’의 정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거나 부채질 하는 것처럼 죄악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와 같은 악한 대적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속이 꽉 찬 알곡인지 겉만 번듯한 쭉정이인지 바람을 불어보면 압니다. 바람이 불면 쭉정이는 날라가고 알곡은 남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인지 반석 위에 지은 집인지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 숨은 진가가 드러납니다.
슥 5:10-11 /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니
그가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것이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 이 두 세력들이 결국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늘로 들어 올려서 시날 땅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시날 땅은 창세기11장에 보면 바벨탑을 지은 장소입니다. 결국 바벨탑은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높은 탑을 쌓아 하나님 자리까지 닿게 하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죄악을 가리킵니다. 죄악의 결과는 ‘흩어짐(디아스포라)’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의의 열매는 생명이지만 욕심에 이끌려 사는 죄의 삯은 어김없이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식일의 주인, 막 2:23-28,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수요 예배 설교 (0) | 2024.07.18 |
---|---|
2024. 7. 17. 수요 기도문 (0) | 2024.07.17 |
누가 크냐- 꼭 안아주세요, 막 9:33-37,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수요 예배 설교 (0) | 2024.07.15 |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5-8, 주일 설교 (0) | 2024.07.15 |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 : 37-44,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설교문 (1) | 2024.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