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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정직한 자는 주의 얼굴을 구하리라, 시 11:1-7, 시편 시리즈 설교(11)

by tat tvam asi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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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자는 주의 얼굴을 구하리라

시 11:1-7

 

똑같은 상황인데, 한쪽은 불안해하고 또 다른 한쪽은 평안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두려워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확신에 차 있는 경우가 있지요. 왜 그렇까 생각해 보면, 한쪽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靈)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그런 것이고, 다른 한쪽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소리가 내면에서 울려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안하고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은 뭔가 좋은 상황에 처해 있기에 그런 것일까요? 다른 쪽에 있는 사람은 상황과 환경이 좋지 않아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둘의 상황은 똑같다는 전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닉 부이치치'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 세계를 돌며 강연하는 복음 전도자가 있습니다. 팔이 없고 다리도 성장하지 않아 짧은 다리를 가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해 8세 이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신실한 크리스천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을 받으며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닉 부이치치가 LA 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왔을 때, 한 여성이 아기를 안고 그를 찾아왔습니다. 놀랍게도 아기는 닉과 똑같이 두 팔이 없고, 두 다리 중에 왼쪽 발이 짧은 아이였습니다. 그 엄마는 아기의 장애를 고치려고 수많은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 기적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닉 부이치치의 강연을 들은 그 엄마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저에게 비로소 기적을 보여 주셨군요. 저는 지금껏 아기의 팔·다리가 자라, 온전한 육체를 가진 정상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을 보면서 팔·다리 없이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바로 기적이라는 것도요." 결국 기적은 주님께서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윗도 하나님을 섬기며 신실하게 주님의 뜻 안에서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생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살펴보면 다윗이 골리앗 장군과 싸워 승리한 이후에 그의 삶은 사울왕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 것을 필두로, 왕이 되고 나서도 그의 인생 말년까지 거의 도망자의 삶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도 다윗의 일생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 11:1 /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새와 같은 상황에 처한 다윗을 보고, 겁에 질린 친구들은 안전하다 생각되어지는 산으로 다윗이 도망가길 권했습니다. 성경에서 '산'은 사람들이 전쟁 등 위기의 상황에서 흔희 찾는 '피난처'로 등장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본문에서 친구들이 말하고 있는 '산'은 하나님 외의 다른 피난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다 현실적이요, 실제적인 것이라고 여겨진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친구들의 권면은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는 지금의 위기에서, 지금의 고난에서 벗어날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방편을 찾으라는 충고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친구들이 말한 "산으로 도망하라"는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실제로 산으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가진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피하라'는 것입니다목숨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친구들은 두려움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빨리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라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그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산으로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다윗은 친구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상황은 그의 고백처럼 자신을 해치려는 적들의 표적의 대상이었습니다.

 

 11:2 /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다윗은 자신이 표적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도 친구들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피난처로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심연의 깊은 절망 가운데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영원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의탁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그가 하나님만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안전해 보이는 산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피난처, 요새, 산성, 피할 바위, 구원의 뿔, 반석' 등으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는 시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대부분은 바로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이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보호를 철저하게 확신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태도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언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누구보다 다윗을 염려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다윗이 어리석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곧 이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곧 불확실 한 것을 신뢰하는 것이기에 어리석지 않는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강구했습니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형태가 이방 군대를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이집트를 의지하고, 바빌론을 향하여 달려가고앗수르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그럴수록 그 이방 군대에 의해 아주 큰 낭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수도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이방 군대가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은 그들이 의지했던 이방 군대에게 착취를 당하고 수치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을 들은 친구들은, 다윗이 적의 손에 의해 무너지게 될 경우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다시 유혹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 11:3 /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으로 하랴" 이 상황은 '혹시 터가 무너진다면'이라는 가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미 무너진 것이거나 무너짐이 임박한 상황의 표현입니다. 나라의 모든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마당에, 의인이라고 무슨 뾰쪽한 수가 있겠냐고, 다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노력이 다 쓸모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친구들은 다윗이 안전한 곳으로 피난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시 11:4 /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이처럼 다윗은 절망과 무기력함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에, 절망과 무기력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 마음과 생각을 집중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하늘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인생을 통촉하시고(=응시하시고), 그들을 감찰하신다(=살펴보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고 있는 인생 하나, 하나를 다 돌아보시고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어떤 피난처보다 하나님만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심을 고백합니다. 이전까지 다윗을 감싸던 절망도, 무력감도 내려놓은 모습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 계심을 깨닫고 불안으로부터, 무기력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위협하는 시선이 아니라 참된 왕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하나님만이 인생들을 살펴보시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평가하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안목이 인생들을 감찰하신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감찰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한'은 '분석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인생의 인간됨을 세밀히 살펴보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언제나 살펴보시고 알아보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안목이 하나님의 안목보다 더 깊고 더 정확하다고 착각할 때가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에고가 우리의 작은 생각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입니다. 우리의 에고가 십자가에서 내려놓아지고 하나님의 영이 온전히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의 안목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승화되어 명백하고 자명한 것을 분별하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늘 보좌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안전한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시 11:5 /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무소부재하시기에 즉 온 우주에 아니계신 곳이 없으시기에, 그 어느 곳에서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기에,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시고 불의에서부터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1:6 /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이 모습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연상케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괜찮은 사람들인 줄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멸망이 오는 줄도 모르고 죄악 된 세상에서 살다가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태우는 바람"이란 팔레스타인 남동편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자연 재앙입니다. 악인에게는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임할 불과 자연적인 재앙까지 겹치는 무서운 형벌이 임하게 된다는 뜻으로,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는 형벌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또 한 가지 신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악인의 편이 아니라, 의인의 편이 되어주신다는 신뢰와 확신입니다.

 

시 11:7 /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민 6:25-26 /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은혜평강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의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의로운 자, 정직한 자에게 그 얼굴을 향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므로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의로운 일을 행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닮은 의롭고 정직한 사람은 위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다윗은 자신의 고백을 통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하나님께 피하든지, 급한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찾고 그것을 의지하든지 하지요그런데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갔다가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 의하여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받게 됩니다. 이후에 에스라와 느헤미야 선지자는 고레스왕 이후 아닥사스다 왕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때 두 선지자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에스라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갈 때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에스라는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가 전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선하게 대하신다'고 말했기 때문에 왕에게 도움을 받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 8:21-23)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아닥사스다 왕께 군대와 병사들을 요청합니다.( 2:7-9) 이처럼 에스라는 이방 왕의 도움을 거절하였으며, 느헤미야는 이방 왕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렇다는 2가지 모습 속에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즉 두 선지자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마음이 어떠했느냐입니다. 다시말해,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being)라는 것입니다. 먼저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중요하고 행위와 행동(doing)은 그 다음이라는 것입니다.

 

두 선지자들의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행동은 전혀 달랐으나, 그 둘의 마음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처럼, 저와 여러분도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자리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참으로 감사하고 어마어마한 실제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며, 기쁨과 감사 안에서 평강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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