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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제임스 던'에 관한 발제문

by tat tvam asi 202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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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당시 대학 3학년이었던 아들이 작성한 글이다. 역사적 예수에 관해 한창 열심히 공부하던 때로 기억된다. 지금은 멀리 중남미 그레나다 선교사로, 웨슬리컬리지에서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I. 서론

 

1-1. 제임스 던 소개

 

제임스 던은 2002년 세계신약학회 (Studiorum Novi Testamenti Societas) 회장을 역임한 정상급 영국 신약학자이다. 글래스고 대학교 (M.A), 케임브리지 대학교(Ph.D, D.D)에서 공부했으며, 더럼 대학교의 라이트푸트 석좌 교수로 은퇴한 뒤 같은 대학에서 라이트푸트 명예교수 (Emeritus Lightfoot Professor) 로 봉직하고 있다. E.P 샌더스, N.T.라이트와 함께 바울 신학의 새 관점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바울 신학뿐만 아니라 역사적 예수 연구,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 연구 및 기독론과 성령론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로 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 『바울 신학』, 『로마서 상, : WBC 성경주석』,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본 발제에 사용된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등이 있다.

 

1-2. 제임스 던에게 영향을 준 배경들 1)

 

 제임스 던은 주로 케니스 베일리 영향을 받았다. 케니스 베일리는 신약학자로서 중동에서 40년 간 연구하였다. 그는 중동에서 마을마다 구전을 통해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 토대로 그는 서양 학자들에게 구전 전승으로 신약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동 지역의 공동체들이 자신들의 전통, 즉 문서들을 남겨서 다른 공동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haflat samara (보존을 위한 공간, a party for preservation)’ 이라고 말한다. 이런 구전은 선생이나 학생들이 따로 없고,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 토대로 베일리는 공관 복음서가 중동 지역의 구전 전승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관 복음서를 기억된 구전 전승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임스 던은 베일리의 주장을 따르면서, ‘역사적 예수’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제임스 던은 베일리의 주장을 넘어서 구전 전승은 신약 성경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약성경의 비유, 가르침, 증언들이 기억된 예수를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II. 기독론

 

2-1. 제임스 던의 역사적 예수 연구의 전제와 방향 (10)

 

  제임스 던은 Q 자료 안에 예수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상당 부분 나타난다고 본다. Q 자료는 예수가 펼친 역사적 가르침으로, 공동체들에 의해 기억된 전승이다. 그 기억 속에 함축된 주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Q 자료가 제시하는 것은 ‘기억된 예수’이다.2)

  예수 전통의 구전적 단계는 최초 제자/교회 모임들 가운데 구연되었다. 이러한 모임들에서 예수의 영향을 분별해낼 수 있다.3)  제임스 던은 ‘예수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보다 예수가 남긴 인상들 ‘기억된 예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임스 던은 3가지로 예수 전통을 정리하고 있다.

  1) 예수가 직접적으로 남긴 영향력을 통하여, 예수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2) 이 영향이 각각 공동체의 전통으로 전승되었다.

그러나 전통에는 예수가 남긴 영향력도 있지만, 예수 제자들의 영향력도 있다.

  3) 전통화 과정의 구어적 성격 (the oral character of the traditioning process) 을 통해 예수가 남긴 기억된 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동안 양식비평은 역사적 예수가 말한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새로운 탐구자들은 양식비평을 넘어서, 예수의 가르침과 상황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3 quest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에 초점을 맞춘다.

 

  제임스 던은 4가지로 자신의 역사적 예수의 연구 방향성을 소개하고 있다.

  1) 역사적 예수의 유일한 과제는 기억된 예수이다.

  2) 제임스 던은 공관 복음서에서 역사적 예수에 관심을 가졌다.

  3) 예수 전통들은 어떻게 역사적 예수가 기억되었는지를 보여준다.

  4) 각각의 전통들을 통해 원 예수의 가르침과 영향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제임스 던은 복음서, 공관복음 전통 안에 머문다. 그는 복음서의 양식들은 통해 전통의 역사와 기원을 분별해 내려고 하였다. 최종적으로 제임스 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개별 전통과 모여진 전통들은 처음 구전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2) 그것들 대부분은 구전 단계로 공관복음 속으로 들어갔다.

  3) 마태와 누가를 포함하여 복음서 저자들은 마가복음이나 Q의 구전 전통을 알고 있다.

  4) 다양한 예수 전통들을 통하여 예수 전승과 변용된 전승을 추적할 수 있다. 4)

 

2-2.하나님의 아들

 

제임스 던은 신약성서 자체 내에서 아버지인 하나님에 대해 예수의 아들 신분이 더욱 현저해진다고 말한다. 마가복음과 Q 자료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칭한 것'이 불과 서너 번인 것에 반해, 마태복음에서는 30번 이상,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약 100번 정도 언급되었음을 확인한다. 즉 하나님이 아버지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독생자라는 내용이 후대에 갈 수록 증가되는 추세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에 대한 개념이, 이미 1세기에 중요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활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에 있어, 헬레니즘 문화에서는 ‘전설 속 영웅, 통치자, 철학자들’로 이해되었다. 유대교 전통 가운데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또한 천사들, 혹은 왕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쿰란 두루마기에서는 왕적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기도 했다. 지혜문헌에서는 의로운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생각하였으며, 카리스마적 랍비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했다.

이 모든 경우에서 공통분모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총애하거나 하나님과 특별히 연관된 자를 가리켰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자, 하나님의 성품을 긴밀히 반영한 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한 자를 나타냈다.5)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의 의미와 후대 그리스도교의 용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와 거리가 먼 것이다.

 

아바 기도

 

예수 전통에서, 역사적 예수가 그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호칭한다.(11.25-26 /  10.21). Q 전통에서는, 예수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억이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 기도는 세 가지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1) 기록된 예수의 기도들 중에 오로지 한 군데에서만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데,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외침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당신은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 결국 그 전통은 여기서 하나의 예외를 인정한다.6)

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는 그들에게도 ’아버지‘라고 말하도록 권면하는데, 이 언급의 방식이 예수 나름의 기도 방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초기 그리스도교 기도의 증언이 이러한 개연성을 강화시킨다.

예수께서 아람어 호칭 ‘아바(abba)’를 사용한 것은 예수 전통 가운데 마가복음에서만 나타난다(14.36).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그리스어 호격 파테르(pater)를 쓰고 있다. 주기도문을 포함하여 다른 예수의 기도들 가운데 호격 pater 이면에 아람어 abba가 자리잡고 있었을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8.15에서 나타난 ‘우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와 갈4.6에서 나타난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에서 주목할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그가 알았고(갈라디아서) 가정할 수 있었던(로마서) 것을 상기시켜주는데, 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한 경험이었다.

둘째,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교회는 아람어 기도 형식을 사용했다아마 이것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교회 가운데 견고하게 확립되어 헬라어 사용자들에게 전승되었고그리스도교 기도의 통상적 표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셋째, 양쪽 구절 모두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인들 나름의 아들 됨을 표현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아들 신분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제임스 던이 내리는 결론은 아바 기도가 예수 자신의 기도 형식이었기 때문에 첫 신자들에게 소중히 간직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의 기도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아들 신분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쳤는가?

 

제임스 던은 “예수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쳤는가?”라는 물음을 두고 여러 가지 접근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유일하게 아들만 알고, 계시를 받는 내용의 접근이다( 11.27/10.22). 11.27과 눅 10.22 Q구절인 마 11.25-27 / 눅 10.21-22의 연속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아들만 알고, 계시를 받는 것은 공관복음 전통의 전형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Q 전통에서 발전된 형태라고 추측한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요구된 관계의 절대성과 배타성, 무제한적 권위에 대한 주장은 마찬가지로 공관복음 전통에서 전례 없는 경우이다.

 

두 번째로 악한 농부들의 비유에 대한 접근이다(21.33-41 / 12.1-9 / 20.9-16 / 도마65). 비유의 틀과 구조는 같아 보이지만, 포도원 건설의 내용, 보냄 받은 종들의 순서, 그들에 대한 취급과 같은 자세한 내용은 복음서 기자마다 다르게 기술했다. 이를 통해 제임스 던은 반복적인 구연의 전형적인 변용을 잘 나타냈다고 보았다. 제임스 던은, 이 비유의 핵심이 농부들이 그를 존대하리라는 희망 가운데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보내는’ 행위라고 말한다. 종들과 아들의 대조가 비유의 극적인 절정에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이 특징은 단순히 그리스도론적 착색으로 간주하여 무시할 수 없다.7) 하지만 예수가 그 모티프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많은 그리스도론적 비중을 읽어내서는 안되며, 예수가 자신의 선교를 종으로서 수행한 이전 예언자들의 선교와 구분되는 동시에 그 연속선상에서 아들의 선교로 견주어본 것으로 기억되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또한 아들도 모르는 것에 대한 접근이다(24.36 / 13.32). 이것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과 예수의 기대가 일치하는 것을 보여준다. 제임스 던은 이것을 전통화 과정 가운데 묵시적 강론으로 첨부된 어록이거나 그 강론의 기초를 이루었던 예수 가르침 중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제임스 던은 기억된 예수의 아바기도 속에 표출된 예수의 아들됨 의식은 아버지-아들 이미지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언급하는 자료 한두 군데 반영된 예수의 가르침 전통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제임스 던은 예수의 아바 기도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존재하며, 예수의 선교 가운데 이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 회고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 됨 의식이 예수의 자기 이해에 결정적이었고, 종말론적 내재성과 긴박성 가운데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직접적 권위의 원천임이라고 정리한다.

 

2-3 인자(16.3-4)

 

언어학적 뿌리

  인자 = 사람의 아들‘ (ho huios tou anthropou)라는 헬라어 단어는 당시 다른 곳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일단의 학자들은 그 문구가 히브리어 ben 'adam 또는 아람어 bar 'enasa 의 문자적 번역으로 그리스어에 들어온 것이 아니냐고 추측한다. 또한 이 히브리어/아람어 문구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리고 개인 뿐 만 아니라 ‘인간 공동체’를 뜻하기도 한다.

 

묵시문학적 뿌리

  예수 시대 이전 아람어 단어 bar 'enas는 단 7:13 8) 에서 나타난다. 다니엘 환상에서 네 마리 짐승이 출현하고 마지막으로 사람 같은 형상이 출현한다. 여기서 짐승들은 네 개의 왕국과 동일시되고 사람 같은 형성은 ‘지극히 높은 곳의 성도들’ 과 동일시된다.9) 다니엘서 7장은 이스라엘이 시리아 군주들에게 억압받던 상황 속에서 쓰여진 문구이다.

 

  다니엘 7장 13절 ‘구름타고 나타난 이’는 막 13.26 14:62에 영향을 끼친 것을 볼 수 있다. 제임스 던에 의하면 인자라는 단어의 용례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성을 전하기 위해 묵시 문학적 관점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즉 인자를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오기 때문에, 지금의 고난 속에서도 성도들에게 희망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III. 예수 죽음과 부활(17~18)

 

3-1 예수는 왜 처형되었는가?

 

  예수는 왜 체포되었으며 빌라도에게 넘겨졌는가?

 

  이 질문에 과거의 답변은 율법에 대한 예수의 도전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는 권세자인 바리새인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복음서에서는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이 부각되지 않는다. 마가복음에 12 13절 이후 바리새인들이 언급하지 않는다.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은 23장의 쟁론에 이어지는 27 62절에만 나타난다. 예수 전통에서는 예수의 처형에 바리새인이 연루된 기억을 보존하고 있지 않는다. 반면 대제사장들은 꾸준히 부각되고 있다.

 

  성전 저항과 성전 어록

 

  성전은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 집안들의 권력의 기반이다. 권력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사회 정교 체제 내의 권력자들에게 위협으로 느껴, 그를 대적하였다. 최종적으로 복음서들은 그들이 종교-권력의 이유로 빌라도에게 넘겨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용서=제의 무시하기?

 

  이스라엘에서 용서를 위한 기도는 예전(제사)의 일부이다. 나아가 희생제사는 용서를 받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예수는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중풍병자와 눅 7:48~49에서 나온 발에 기름을 부은 죄인에게 말함으로써 놀라움을 야기한 것을 회고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예수가 죄의 용서를 제의 바깥에서, 제의에 대한 언급 없이 죄 용서를 선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전통에는 희생제물의 필요에 대하여 암시하지 않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는 하나님의 죄 사함 영역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 기성 종교 제의 중에서 하나님이 사제들에게 부여한 제의에 할당한 역할을 침범한 것이다.

 

  3-2 예수는 죽음 이후 신원

 

  신원의 희망

  

 제 2성전기 유대교에는 의인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사상이 있었다. 그와 같은 모티프는 죽음 넘어 신원을 말하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넘어 신원을 시 16.8~11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죽음을 넘어 계속되는 생명과 ‘영원무궁한 즐거움’으로까지 확대된다.

  그는 고난-신원의 희망에 추가적 표현을 부여하였다. ‘인자’라는 단어는 -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에게 ‘하나님 왕국이 도래함’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구절은 눅 22:29~30에서 볼 수 있다.

 

  부활의 희망?

  

 예수에게 돌려진 가장 오랜 전통의 버전들은 ‘삼 일 후에’ 그가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13:32~33과 막 14:58처럼 ‘곧’, ‘바로’(짧은 시간 내로)를 의미한다. 이는 확실히 임박한 파국에 대한 예수의 기대, 그리고 그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기 이전의 금욕 기간 동안에 대해 떠오른 그의 기대와 결부된다. 오직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될 수 있는 희망의 모호성 가운데, 새로운 날로 일어나고 죽음으로 끝나는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의 최종 형태로 다른 자들과 함께 소생케하는 이미지로 그 희망을 선포한다.

3-3 부활

 

제임스 던이 말하고 있는 예수의 부활전통은 어떤 부분이 핵심인가? 그는 주장에 따르면 핵심요소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예수를 본 것, 위임, 안식 후 첫 날이다.

 

먼저 예수를 본 것은 성서에서 제시된 부활의 핵심적 요소이다. 부활 이후 마리아는 예수를 보았다(20.13). 또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으며(24.34 / 고전 15.5), 고전 15.5-8에 제시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이외에도 주를 보았다는 내용은 성서에 여러번 등장한다(24.40 /  20.20, 20.25, 21.1, 1.22, 고전 9.1 ).

 

그리고 또 다른 요소로 위임의 모티프를 이야기한다. 여인들은 그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야 하거나(28.10 / 20.17), 베드로는 양을 먹여야 하는 부분(21.15-19) 등 예수께서 나타나시고 위임하시는 내용들이 성서에 여러 번 등장한다(24.31-35,  28.19-20 ).

 

또한 안식 후 첫날에 예수께서 나타나셨다는 전통의 요소도 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의 전통은 무덤이 비었다는 것과 연관된 핵심 전통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셋째 날 / 제 삼일 전통과 일치한다. 고전 15.4에서 말한대로, ‘그는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이 날에 그리스도인들에겐 특별히 의미심장한 날, 주의 날로 지켜지게 되었다. 이 날은 주의 부활을 기념한 날이었다.10)

 

그러나 셋째 날 전통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이 원래 부활 현현과 관련하여 조성되었다면, 갈릴리에서 처음 나타난 경우(마가복음)과 남성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난 강한 부활 전통(마태복음)과 매우 상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통의 다양성 내에서, 그리고 그 다양성을 통해서 핵심 전통을 언급할 수 있다고 제임스 던은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임스 던이 말하고 있는 부활 전통에 대한 핵심 요소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 “우리가 타당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정해야 할 점은 첫 신자들이 ‘부활 현현’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은 이전에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이 끼친 영향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전수된 전통들 가운데 간직되었다는 것이다.11)

 

 IV. 결론 : 기억된 예수

 

  역사적 맥락에서, 고도로 구술적인 사회에서 활동하는 집단 / 교회와 관련하여, 이러한 집단 / 교회 모두 매우 광범위한 예수 전통의 구술 목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집단 / 교회의 것과 중첩되면서 이 집단 / 교회 가운데 활약한 자들(사도, 예언자, 교사)이 꾸준히 그것을 함께 공유해왔다는 것이다. 구술적 행위의 관점에서 예수 전통을 활용하는 재개념화는 문어적 편집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이러한 통찰은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로 구어 전통의 성격으로, 연속성을 가진 구연 전승이 그 내용의 주제/구조/핵심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야기와 가르침의 자료를 결합시키고, 반복적 연구가 조명해온 결과에 따른 것이다.

  둘째로 예수 전통 / 공관복음 전통의 성격이다. 공관복음 전통에서 특징적으로 되풀이해서 말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지고 중요한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은 전통의 지속적인 정체성이 그 전통의 첫 형성 가운데 부여되었고, 이것은 회고된 말과 사건이 끼친 영향의 증거로 보아야 한다.

               

  제임스 던은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수 전통을 통하여 여전히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는 그 속에서 말하고 토론하고 식탁 교제를 나누며 치유한다. 그리고 예수 전통을 읽는데 최초의 제자들과 교회 집단들과 더불어 앉고 예수에 대한 기억을 나눈다. 그 가운데서 증언과 교훈을 얻었을 때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교가 발원한 예수, 기억된 예수를 만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보았다.

 

 V. 비판12)

 

훔베르그는 제임스 던과  20세기 방법론들이 복음서에 대해 잘못 이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복음서는 고고학처럼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많은 구전과 기록들은 역사적 예수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던은 역사적 예수를 다루기 위해 공관복음서만 사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자료가 공관 복음서와 Q 자료 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그려내는 데에 한정적이라고 비판한다.

 

훔베르그는 기억된 예수를 따라가서, 역사적 예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홈베르그는 역사를 “wie es eigentlich gewesen ist(역사는 그전처럼 똑같이 서술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역사적 예수는 소수 사람 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지를 못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예수 공동체가 역사적 예수를 보지 못했다.

 

홈베르그는 제임스 던이 말했던 것처럼 기억된 예수가 결코 원천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 공동체들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거나 첨가한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6.9-20 의 내용들이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나타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변질될 가능성이 많다. 역사적 사건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이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적 사건 그 자체와 가까울 뿐이다. 그러므로 역사 자료들은 역사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훔베르그는 제임스 던이 말한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존 메이어에 따라 역사의 5가지 개념을 말한다.

1) 사건으로서의 역사 : 진짜로 일어났던 역사

2) 중요한 사건으로서 역사 : 자료가 아니라 의미로서의 역사

3) 그럴듯한 사건의 역사 : X 는 일어난 것 같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ex (단군 신화)

4) 구전되거나 쓰여진 역사 기록학 : 전해진 역사  (제임스 던의 입장)

5) 현대의 시각으로 설명되는 역사 무신론 역사

그러므로 역사를 생각 할 때 제임스 던은 4번째만 집중하여, 역사라는 의미를 너무 한정적으로 제한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역사는 오직 전해진 것이나 기록 된 것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VI.평가 (강점과 약점) 및 토론문제

 

 제임스 던을 통하여 초대 기독교인들이 역사적 예수를 보는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 알 수 있다. 구전 전승을 통해 예수의 원 영향력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그는 역사적 예수 시대의 상황, 사상, 언어들을 비교하면서 예수의 전통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전통들을 어떻게 이어져 가는지에 대해 새로운 시도한다.

제임스 던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예수 상을 나타난다. 예수를 단순히 견유학파나, 혁명가가 아니라,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려는 자로 묘사하였다. 하나님 나라를 외치면서, 사회 정의를 함께 해 나간다. 하나님 나라와 인자의 개념으로 종교-권력을 비판하고, 새로운 나라를 꿈꾸게 한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기 위한 자료를, 공관복음서와 Q 자료에만 한정하여 역사적 예수를 좁게 만들었다. 신앙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의 연속성을 강조한 케제만과 달리, 제임스 던은 구전된 예수 전통에만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의 전승들이 변질되거나 첨가된 계기를 설명하지 못했다. 초대 기독교에는 예수를 목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각각 전통들의 내용들이 첨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막 16:9-20이 원 공동체가 아닌, 후대에 첨가 되었다는 것이 나타났다.  

  

  제임스 던은 오로지 구전된 역사에만 집중해, 의미로서의 역사 부분을 놓쳤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정체성과 그의 죽음의 의미의 부분이 어떻게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전파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가 어떻게 기독교 정체성을 굳건하게 세웠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나의 질문

1) 구전전승으로서의 예수와 신앙의 예수의 간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 역사적인 예수를 공관복음서와 Q 자료 외에도 다른 대안이 있는가?

 

3) 제임스 던이 말하였던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예수상이 오늘날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정의 관점에서)

 

*참고자료

1. Jesus remembered (Christinanity in the making volume 1), James Dunn, Eerdmans

2.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상,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3.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하,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4. James Dunn and the synoptic problem, Ingolfsland Dennis, Trinity Journal

5. Questions of method in James Dunn's Jesus Remembered, Holmberg Bengt, Sage publication


1)  James Dunn and the synoptic problem, Ingolfsland, Dennis, Trinity Journal

2)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2,  449p

3)  ibid, 449p

4)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2,  459p

5)  집회서 4.10, 마태복음 5.45, 누가복음 6.35 참조

6)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2, 306

7)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2, 317

8)  다니엘서 7장 참조

9)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2,  326p

10)  안식 후 첫날에 대한 전통에 대해서 제임스 던은 호세아 6.2를 근거로 전통이 나타났다고 추측을 한다. 그러나 신약성서 어디에도 호세아 6.2를 직접적으로 인용하지는 않았다.

11)  제임스 던 지음, 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2, 494

12)  Questions of method in James Dunn's Jesus Remembered, Holmberg Bengt, Sage pub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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