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유리하는 삶 / 창 4:1-12
1 /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3 /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5 /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6 /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7 /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8 /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9 /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11 /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12 /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2025년 새해에 첫 새벽기도 말씀으로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오늘로 꼭 7일째가 되었네요. 우리 성도님들은 이 변화에 금방 적응하셨나요? 저는 아직도 다이어리를 쓰거나 문서를 작성할 때 날짜 입력칸에 2024년이라고 적었다가 다시 2025년으로 고쳐 쓰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년 12월부터 계속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사건, 사고들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과거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새 해의 행복을 비는 인사말이 무색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참 많이 지쳐있는 상태지요. 내 힘과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분노, 두려움, 체념과 같은 우울한 감정들이 삶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새해를 위한 설교로는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본문을 들고 오다니, 마치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듯한 느낌이지요? 모두가 잘 알다시피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다루는 최초의 살인, 그것도 형제 사이에서 벌어진 잔혹한 범죄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정말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살인과 저주, 죄와 폭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갈등의 굴레를 끊게 된 놀랍고 신비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로 모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혼란하고 허무한 세상에 질서가 바로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생명력 있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에서 출발하였어요. 하나님과 인간은 의무와 형벌로 점철된 주종관계가 아닌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잘 관리하는 동역자의 관계였습니다. 바로 이 관계에서 복이, 그리고 생명이 흘러나왔죠. 그러나 인간은 큰 착각에 빠지고 말게 됩니다. 자기 힘을 통해 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발견했다고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복이 아닌 저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비극은 복과 저주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복이란 과연 무엇인가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 인사를 전할 때, 어떤 의미를 담아 상대에게 전하나요? 물질적 풍요와 부, 좋은 건강과 원만한 인간관계,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복의 의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을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가리켜 저주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악을 정의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 선택권과 통제권을 손에 쥐었을 때 무슨 일이 발생하였나요? 질서를 파괴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속이고, 다투고, 마침내 서로를 죽이는 비극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향한 저주는 하나님이 내리신 죽음의 주문이 아니라 자기 방법대로 복을 취하려는 인간에게 찾아온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한 채, 인간이 스스로 정의한 선악의 기준으로 살게 되자 어떤 세상이 펼쳐지게 되었는지는 성경을 통해서도,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지요. 인간의 죄와 욕망은 자기 스스로를 떠돌아다니고 방황하며, 유리하는 삶으로 내몰았습니다. 이상합니다. 왜 우리는 더 잘 살아보려고 할수록, 더 똑똑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불행으로 치닫게 되는 것일까요? 분명 복으로 가는 지름길로 향했는데, 눈떠보니 종착지가 저주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함정입니다. 가인의 일기를 한번 살펴볼까요?
여기 적힌 일기에는 온통 분노, 억울함, 증오와 같은 감정의 찌꺼기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그는 자기 마음대로 선악을 재정의합니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위협으로 느끼고 악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개인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내려진 결정은 결코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기심과 악한 충동에 사로잡힌 가인에게 경고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다, 죄가 너를 원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결국 가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은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가인의 시도는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죄가 모두를, 심지어는 죄를 행하는 자기 자신마저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이것이 애초에 복이라는 목표에서 빗나간 궤적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죄는 '하타'라고 합니다. '하타'는 실패하다, 목표에서 빗나가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죄는 곧 목표를 이루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을 따라 거룩하고 존귀한 존재로 사는 것이죠.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충만하게 누리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우리의 원래 삶입니다.
창 1:26-28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오늘 날 우리는 아주 요란한 실패를 목격하였습니다. 자기 감정과 기분을 법과 질서로 삼는 죄악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뿌리 깊은 죄악 때문에 우리 마음이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안 되는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다시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위험과 결핍의 시간을 통과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간구하는 자에게 다시 질서를 세울 힘과 하나님과 세상을 사랑할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은 1월 7일이죠. 동방정교회에서 성탄절을 지키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삶을 따르는 모든 믿는 자에게는 매일이 성탄절이요, 부활절이 아니겠습니까?
죄의 저주 아래에서 외롭고 고된 하루를 보내는 모든 이에게 저주를 뒤엎고 질서를 회복하며 목표를 향해 제대로 나아갈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과 섬김으로 저주를 뒤엎으시고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기심과 악한 욕망이 주는 헛된 욕심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의 모습 그대로 살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세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십니까?, 시 10:1-18, 시편 시리즈 설교(10) (0) | 2025.01.09 |
---|---|
예수 - 연결하는 자, 눅 4 : 14-24,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설교 (0) | 2025.01.08 |
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셨으니 ...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 눅 4:18-19, 신년예배 설교문 (0) | 2025.01.07 |
주의 영을 시험하지 말라, 행 5:7-11, 사도행전 시리즈 설교(25) (0) | 2025.01.06 |
희망을 노래하라, 장로부부 헌신예배, 행 3:6-8 (0) | 2025.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