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멀리 서 계십니까?
시 10:1-18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시 10:1 /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어찌하여'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탄식시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이, 또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왜'라고 시작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경우가 많지요.
우리가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우리의 기도에 '어찌하여?' 혹은 '왜?'라는 말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때와 방법과 우리가 정한 때와 방법이 같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며, 우리가 가려는 길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진리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시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멀리 서 계시는 것 같고, 숨어 계시는 것처럼 여겨져서 삶과 신앙이 힘듦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멧돌은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표대로 돌아갑니다. 때로는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지만, 곡물은 확실하게 갈아져서 아주 고운 가루가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바라본 악인의 언행(言行)은 어떠합니까?
❚ 시 10:2-4 /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련한 사람들인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을 잘 돌보아 주라고 하셨지만, 악한 자는 '심히 압박한다'고 합니다. 즉 악한 자들은 가련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착취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영화에서 종종 보는 것처럼 악덕 대부업자가 돈을 빌려주고서, 고리의 이자를 물리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목숨까지 위협하며, 끝까지 돈을 받아내듯이 악한 자의 삶이 마치 이와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있는 욕심을 자랑합니다. 이에 비하여 의인,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탐욕을 부리는 자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멸시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악인은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하나님은 감찰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끔 듣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하나님이 있으면 지금 당장 나에게 벌을 줘 보라고 해!"라고 거친 막말을 쏟아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오만 방자함에도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시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시편기자는, 또 이렇게 증거합니다.
❚ 시 10:5-6 /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누리는 것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난을 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여기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땅에서 시작될 것이요, 만일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악인들이 가련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포악한 짓을 저지르는 지를 증거합니다.
❚ 시 10:7-8 /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악인들의 입에는 저주, 기만, 폭언, 욕설, 악담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악인들이 내뱉은 말 중에서 악담, 거짓말, 욕 등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시 10:9-11 /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악인들은 말만 악했던 것이 아니라 행동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을 해치기도 하고, 먹잇감을 잡기 위해서 웅크리고 있는 사자처럼 숨어 있다가 때를 만나면 연약한 사람을 끌고 가고, 불쌍한 사람들을 짓누른다고 합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갑을관계'에서 갑 중에서 갑인 사람이 을 중에서도 을인 사람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아무리 굳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흔들립니다. '정말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 그 야훼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가? 지난 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러한 극악의 상황 속에서도 침묵하고 계시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는 주변에서 악인이 형통하고 오히려 의인이 가난하게 사는 경우를 목격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역사적 단죄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역사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민족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시인이 하나님께 역사적 단죄를 요구합니다. 다윗은 지금 심판해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악인들로 인해서 왜곡과 불의, 억울함과 원통함이 판을 치는 듯한 세상이 된 것 같이 느낀 시인은 이렇게 호소합니다.
❚ 시 10:12-13 /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시인이 하나님을 향해서 "일어나옵소서"라고 읍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앉아계시기만 하시고, 즉 아무런 역사를 행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을 드옵소서"라고 호소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는 손을 내리고 계시는 것처럼, 즉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능력을 베풀지 않고 계시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하여"가 다시 나옵니다. 시인의 생각에 '하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르게 하시는 일을 행하셔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이 그 때가 아니냐고 주님 앞에 묻는 것입니다.
얼마나 애절하고 간절한 기도입니까? 시인의 간구는 이어집니다.
❚ 시 10:14-15 /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시인이 "주께서는 보셨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세상이 뒤죽박죽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셨기 때문이거나, 보셨더라도 해결할 능력이 없는 분은 아니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연약한 계층인 고아를 돌보시는 분이시면, 더욱이 그 도우시는 일을 '벌써부터' 하시는 분이시라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악을 찾아내실 수 없을 때까지 찾아 달라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왕, 곧 세상의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의 호소를 들으십니다.
❚ 시 10:16 /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이어서 시인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믿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시편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 시 10:17-18 /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인의 간구는 확신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가련한 사람, 가난한 사람과 같은 히브리어 단어)의 소원을 이미 들으셨다고 합니다. 앞으로 들어주실 것에 대해서도, 들어주실 것에 대한 확신 때문에 들으셨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격인 고아와 을 중에 을인 사람인 압제 당하는 사람을 변호하여 주시고, 무엇보다도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활개를 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시편 10편을 비롯한 대부분의 탄원시는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들이 활개를 치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들이 연약한 사람들을 짓누르는 것처럼 보여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같은 질문들을 쏟아냅니다. 이처럼 악인들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학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자녀들은 이런 세상의 현실을 바로 보고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시며 통치자시요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온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그럼으로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아뢰어야 한다.
따라서 시인의 탄원은 마지막에는 감사와 찬양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 역시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찬양합니다"입니다.
오늘 탄원의 시에서 다윗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반드시 의로운 자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과 가난한 자와 의로운 자들이 승리할 것이라" 라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속에 고통이 있고,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지금이어야 된다고 여겨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사람의 고통에는 원인이 있는데, 가장 큰 원인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그러기 때문에 덧없이 사라지고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고 그것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생기를 부여 받은, 어마어마한 존재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만물과 함께 하늘과 땅의 중간에 살고 있지요. 즉 하늘(天)과 땅(地)사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기운에 영향을 받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로부터는 잠재력과 땅으로부터는 에너지를 받는다는 것이지요.
온 우주에 아니계신 곳이 없고, 온 우주를 떠받치고 계시며, 우주를 관통해 계시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기쁨 뿜뿜💫💖✨, 에너지 팡팡🎉🎊🎇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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