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시 15:1-5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이 시는 다윗이 성막에 관심이 많았을 때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하다면 사무엘하 6장이 배경이 될 것입니다.
언약궤인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이나 있었습니다. 그 여호와의 궤를 메어 나오는데,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날뛰니 웃사가 궤를 붙들었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궤를 다윗성인 예루살렘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져가 거기서 석 달을 있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여호와의 궤를 메고 다윗성으로 올라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감격적이었는지, 다윗은 있는 힘을 다해서 춤을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 미갈은 남편 다윗을 이해하지 못하고, 면박을 줍니다.
❚ 삼하 6:20 /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그러자 다윗은 자신이 춤을 춘 것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지만, 마음에 더 큰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 시 15:1 /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다윗이 진심으로 여호와의 궤가 있는 주님의 장막에 머무르고 싶어하고,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물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다윗은 참된 예배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시 15:2 /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① 정직하게 행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흠 없이 완전하게 걷다'입니다.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야말로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직하게 행하다'라는 단어는, 노아나 아브라함이 흠이 없는 자라고 할 때도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노아가 술취함으로 말미암아 노아 집안에 죄와 저주의 시발점이 되었던 사건을 잘 알고 있잖습니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 속임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무너질뻔 하였고, 90세가 넘도록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자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이라는 자녀를 출산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이처럼 노아와 아브라함이라 할지라도 흠이 전혀 없는 완전무결한 자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아브라함은 살면서 발견되는 여러 흠과 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그 죄를 날마다 씻으며 살아감으로, 마침내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 창 6:9 /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기의 흠과 티를 씻으며 사는 자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② 공의를 실천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정직을 행하는 삶이 소극적인 태도라면 공의를 행하는 것은 적극적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경건한 삶을 살기에 힘쓰는 자입니다. 성경에서 공의는 그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연약한 자가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살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힘없고 연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당하는 일이 없는 나라가 되도록 힘쓰는 자, 주께서 이렇게 주님의 공의의 말씀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③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합니다.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좀 더 정확하게 해석하면, '그 마음에 있는 진실을 말하며'입니다. 즉 진실을 말해서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진실한 사람이어서 진실한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 잠 23:7 /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순전하고 신실한 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회개할 때는 자기가 죄를 범한 것을 고통스러워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예배드릴 때에는 오직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만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여기에 다른 생각을 첨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예배드리고,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마음에 품으며 살아가는 자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르고, 주의 성산에 사는 사람의 삶이 어떠한지를 2절을 통하여 참된 예배자의 삶을 말씀하신다면, 3절은 참된 예배자의 바른 언어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 시 15:3 /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④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유교 문화권에 속한 한국 사람들은 살인이나 도적질 같이 행동으로 하는 죄는 크게 여기는 반면에, 말로 남을 헐뜯거나 비방하는 것은 별로 큰 죄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일단 겉보기에 그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몸에 난 상처는 며칠이면 아물지만, 언어로 인한 상처는 평생 갑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로 남을 헐뜯거나 비방하지 않고, 온유한 말을 하는 자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⑤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참된 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자는 언어생활 뿐 아니라 행동에도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세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사람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⑥ 이웃을 비방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인 허물을 흉보지 않는 것이라면, 비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상대를 폄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르며, 주의 성산에서 사는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허물을 들추지 않으며, 비방하지 않는 등 바른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성령님의 조명하심 아래에 있는 사람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는데, 그 새 사람의 특징 가운데 가장 먼저 말씀하신 내용을 에베소서 4:2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 엡 4:25 /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새 사람이 된 것의 첫 특징이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중요합니다. 옮기지 말아야 할 말은 이제는 나로 끝내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르고, 주의 성산에 사는 사람의 올바른 인간관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 시 15:4a /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⑦ 망령된 사람을 멸시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대합니다.
주의 장막에 머물려는 사람은 '망령된 사람' 즉 '버림을 받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시한다는 말은 그런 자들의 악한 행동을 본받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에 힘쓰는 자들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 다음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주의 장막에 머무르고, 주의 성산에 사는 사람의 물질적인 것에 관한 것입니다.
❚ 시 15:4b-5 / ...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⑧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함부로 서원하지 않습니다. 사사 입다처럼 자신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에 무엇이든지 자기를 처음 맞아주는 것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어리석은 서원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당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면 내가 이러이러하게 하겠습니다"하고 불쑥 서원을 했다가, 막상 그 일이 해결되고 난 후에는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함부로 서원하지도 말고, 일단 서원한 것은 나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지키십시오.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만큼 서원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⑨ 이자를 목적으로 돈을 꾸어주지 않습니다.
당장 돈이 급한 사람의 딱한 처지를 이용하여 높은 이자를 받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자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고리대금업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동족에게 높은 이율을 목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남의 어려운 처리를 이용하여 나의 이익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⑩ 뇌물을 받고 무죄한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뇌물을 받고 죄 있는 자는 무죄 방면하고, 그 죄를 죄 없는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힘 있는 자라고 해서 봐주고, 내게 뇌물을 주었다고 해서 봐주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연약한 자라고 무조건 두둔해도 안 됩니다. 시시비비를 바르게 가려서 공정하게 집행하고 판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공정하게 판결하는 자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뇌물보다 더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장막에서 주님과 거하기 원하는 사람은 주님을 최상의 가치로 두지, 물질을 최상의 가치로 두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 장막과 성산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주심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지켜가다 보면, 거기에 고달픔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의 손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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