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시는 예수님
요 7:1-13
유대인들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웠습니다. 유대인들이라면 당연히 초막절에는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 년에 세 번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는 반드시 성전에 올라가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사건 이후에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는 다니려 아니하셨습니다.
❚ 요 7:1-2 /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오신 분인데 어찌해서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한다고 해서 그들을 피해 다니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 겸손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형제들이 갈릴리 지역에서만 사역하시는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항의를 합니다.
❚ 요 7:3-4 /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예수가 정말 메시아가 맞다 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많은 이적들을 펼쳐서 자신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낸다면 즉 그의 기적에 의하여 명성을 획득할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다 쉬운 길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허락하신 능력을 알아주지도 않고 보아줄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낭비하지 말고, 유대로 가서 그곳 잘난 사람들 앞에서 그 능력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사단의 계교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증명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면 되고 성전에서 뛰어 내리면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하나님의 친히 함께 하심을 보여주라고 합니다.
당시 갈릴리와 유대는 요즘 우리나라로 보면 지방과 수도권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지방에 머물며 작은 고을들만 다니시는 예수님이 답답해 보인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수도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수도권에 가보면 매우 분명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도권에서 일해야 소위 전국구가 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이런 부분에서 매우 민감했고, 그런 시류를 지혜롭게 타야 한다고 예수님께 간청한 것입니다.
❚ 요 7:5 /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이는 잘못된 믿음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자기의 척도에 맞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본은 신뢰이며 수용인데, 자기 중심적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내 생각하고 같으면 옳고, '은혜스럽다' 말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의 생각엔 '자기 형인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시시하게 시골에 머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유대로 올라가서 그들에게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고 자기를 나타내야 하지, 그렇지 못하고 지방 고을이나 다니며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을 수 있느냐?'는 반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겸손하신 분입니다.
2. 기다리시는 예수님
물론 예수님은 이 세상에 분명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유대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 요 7: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질 때를 위하여 늘 준비하고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아무 때나 결정합니다. 이처럼 사람들과 예수님의 차이는 조급함과 기다림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능력은 사실 대동소이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도 성공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바로 시간의 선택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회를 잡는 자와 놓치는 자의 차이입니다.
❚ 요 7:7-9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 신뢰하는 자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조차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 요 7:10 /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3.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자,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 요 7:11-12 /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예수님은 그 형제들에게는 처음에 명절에 유대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유대인의 규례를 따라 은밀하게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단연 장안에서 가장 화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를 '예수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만 의존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의 여론을 중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여론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삶의 우선순위로 정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수전노가 목사님께 "내가 죽으면 전 재산을 빈민구제에 쓰라는 유언을 분명히 해 놓았는데도 왜 사람들이 나를 수전노라고 손가락질하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돼지와 소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돼지가 소더러 "네가 우유를 주듯이 나도 고기를 주는데 왜 나는 너처럼 사람들에 인기를 얻지 못하지?" 소가 한참 생각하다가 "그것은 나는 살아서 우유를 주니까 그러는 게 아닐까?" 하더랍니다. 사랑과 용서도 때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 무엇을 위해서 내가 여기에 있는지를 항상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일을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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