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는 피난처가 되시도다
시 14:1-7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십니다.
❚ 시 14:1 /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가 히브리어로 '나발'인데, 그 의미는 '어리석음과 악함, 하나님이 없음'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사무엘상 25장에는 '나발'이라는 실제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마온 지방에 한 목장주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양 떼가 3,000마리, 염소 떼가 1,000마리가 되는 목장을 가진 부자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치안이 몹시도 불안하였기에,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그 마을과 지역을 지켜주고, 수고비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한 600명이 그 지역을 지켜주고서, 양털을 깎는 때(목축하는 사람에게 양털을 깎는 때는, 농사를 짓는 사람의 추수 때)에 사람을 보내서 양 떼를 지켜준 대가로 먹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음식은 커녕 다윗과 다윗의 부하들에게 모욕을 주는 말을 하고서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그의 부하 600명 중에 400명을 데리고 가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음식을 급하게 준비해 와서 다윗이 노를 누그러뜨렸습니다.
❚ 삼상 25:25 /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나발'이었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발 '어리석은 자'와 같은 단어입니다. 나발은 수천 마리의 가축을 기르는 농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여러 종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동네 유지라 불렀을 것이고, 어르신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그의 종들은 '주인님'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나발-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눈도 없었고,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발에게는 오직 이기심과 완고함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나발'에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결코 지능지수가 낮거나 학교를 많이 다니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나발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특징은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어리석은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 시 14:2-3 /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래도 혹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굽어살피셨다고 합니다. '굽어살피다'는 '몸을 앞으로 내밀어서 찾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사는 자연인들이 다 어리석은 사람들, 나발들인 것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혹, 하나님을 향해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고 있는가 해서 몸을 앞으로 내밀어서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14:1-3절의 말씀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10-12절에 고스란히 인용하고 있습니다.
❚ 롬 3:10-12 /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러니까 다윗이 살았던 때나, 그로부터 천년이 지난 사도 바울이 살았던 때나, 모두 하나님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은 동일했던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사도바울의 시대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는 어떻습니까? 다윗왕이 살았던 시대와 사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이 모두 동일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은 부패하고, 가증하며, 선을 행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 시 14:4 /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삶을 사는 것을 떡을 먹는 것처럼 익숙하게 행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찾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짓눌러야 자신의 몫이 확보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원히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히 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 시 14:5 /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두려워하다'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은, '두려움'에 대한 강조로서, '두려움에 압도당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모임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계셔도 무용지물이다' 라고 생각하기에, 온갖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결국에 어떤 것을 알게 되지요? 자신들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하나님이 의인들 가운데 계시는 것을 마침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요? 바로 하나님 보좌 앞에서 입니다. 심판의 자리입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결코 악한 자의 손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누구의 손을가 들어주실까요? 바로 의인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 악한 자의 편에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악한 자가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와 함께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지요? 그러한 자와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의로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자, 의로운 자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이 세상 살면서 악한 자의 편에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 시 14:6 /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했나요? '가난한 자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분입니다.
어리석은 자 & 악한 자가, '하나님이 없다. 그러니 자신이 아무리 악한 일을 해도 하나님은 아무런 일도 못하신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가난한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을 주신다면, 이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겁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도우라고 주신 겁니다. 그런데 하 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하나님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에 그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만나는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아니라,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의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 삼상 18:12 /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악인들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지만,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오고 그러면 그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고백합니까?
❚ 시 14:7 /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오늘 말씀을 기록한 다윗은 포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란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곳에서 돌이키실 때라는 것은 죄악된 인간이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 잃어버린 즐거움을 되찾는 것, 우리가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때 회복이 되고 다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기도입니다. 이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거절했으나 언젠가 때가 되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 요 1:11-13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악을 행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짓밟고 좌절시키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억압과 죄의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셔서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기쁨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고달픔을 아시고, 우리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님의 과거에 흘리셨던 눈물을 닦아주신 분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 자녀들이 흘릴 눈물을 닦아주실 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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