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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주 안에서의 기뻐하라, 갈 5:22-23, 갈라디아서 시리즈 설교(24)

by tat tvam asi 202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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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의 기뻐하라  

갈 5:22-23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린 아기들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루 400번 이상 방긋 웃는 그 웃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하루에 15번 정도 웃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아기들을 보면 방긋 웃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그 웃는 모습에 매혹되어 우리는 아기들을 사랑합니다. 이 말은 누구나 기쁨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슬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만약 우리의 삶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면 우리의 인생은 무거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 성령의 2번째 열매인 희락 즉 기쁨의 열매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희락은 억지로 꾸며내거나 만들어 낼 수 없지요. 마음이 행복하고 기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겉으로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표정을 행복하게 꾸미려 해도 심령이 행복하고 즐겁지 않으면 곧 드러나고 맙니다. 

 

그렇다면 희락의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요?

 

 4:4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를 보면 "항상 기뻐하라" 하였는데, 우리는 항상 기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찔림을 받기 쉽지요.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기쁨이 넘치게 살 것이다.'라는 기대를 마음에 품기 원합니다. 우리 마음에 소망을 주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대 위에 은혜를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 영으로 오신 예수님, 권능의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예수의 영, 성령님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놀라운 비밀을 온전하게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가 겪는 일들로 인해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성령님과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예수 믿고서 아직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오늘 본문을 주의 깊게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의 강조점은 '주 안에서'라는 말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주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 17:21-22 /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오늘 주 안에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합시다.

 

바울이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 안에서 기쁨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상담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보면사람들이 언제 기뻐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이에 대해 4가지를 이야기합니다.

➀ 사람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 기쁨이 생긴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면 기쁨이 생깁니다.

 

➁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기뻐한다고 합니다.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은 돈을 벌었을 때 기뻐합니다.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은 명예를 얻었을 때 기뻐합니다. 학문의 깊은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연구 결과를 얻었을 때 기뻐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었을 때 기뻐합니다.

 

➂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기뻐한다고 합니다.

내가 잘 살든 못 살든, 또한 내 자신의 형편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내 자신이 내 모습을 내가 인정할 수 있다면 거기에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➃ 자기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남과 나눌 때 기쁨이 온다고 합니다.

재산이 있는 사람이 재산을 나누어 구제하는 일에 힘쓸 때 기쁨이 옵니다.

지식을 가진 사람이 후학들에게 지식을 나눌 때 기쁨이 옵니다.

좋은 소식을 받은 사람이 그 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기쁨이 생깁니다.

 

사도 바울도 이 네 가지 조건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이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5:3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말합니다.

 

롬 5:5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다시 말하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막 흘러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 때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만큼 환란과 핍박을 많이 받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고 나서는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크기는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 마저도 아낌 없이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실 만큼, 우리를 완전한 사랑 안에 두셨습니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하나님의 사랑은 폭포수같이 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한,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힘에 의하여 우리의 삶이 조화롭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조화롭게 하려면 인간 본래의 실재이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맞추어 재조정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주고 있는 가르침 중 이보다 더 큰 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나를 믿으면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너도 할 것이고, 그보다 큰일도 할 수 있다.”(요 14:12)

 

우리가 예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우리의 상념을 예수님에게 집중한다는 것이고 예수에 집중할 때 예수와 하나가 됩니다. 

 

둘째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었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빌 3:1 /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기쁨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빌 3:7-8 /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깨어 있는 눈으로 보면, 만사는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사람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혹은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즉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외부 환경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외부 환경에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한을 주어버리면, 그 외부 환경에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외부 환경에 따라 자기 마음속의 상태가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자기를 힘들게 한 힘이 외부에 있다고 인정하는 한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버린 권한에 복종했기 때문에 힘든 것이 구체화된 것인데, 나는 힘들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전능한 힘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에 복종하면 예수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구체화됩니다. "예수가 내 안에 계시다"라고 주저 없이 선언할 때 예수가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영광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 예수님을 발견하자마자, 너무나 좋아서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취급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저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주님 자신만을 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온다 할지라도 죽음의 불안 앞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소명 의식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빌 4:10-11 /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기가 당하는 모든 형편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으로 받아 들이면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비천하거나 풍부할 때도, 배고프거나 배부를 때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비결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4:13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상념)을 무리하게 현실화하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어리석은 행위가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힘이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랑의 힘), 만물의 배후에 있는 실재를 받아들이는 일만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자신의 본성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실재에 귀 기울이고, 따르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길이요, 예수와 하나 되는 길입니다. 진실로 마음속 깊이 원하는 것이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인간이 이 생명력으로 복귀할 때,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작용하기 시작하고, 우주는 그를 통하여 우주 자신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온도계와 같은 사람도 있고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온도계와 온도조절기의 차이를 아시죠? 온도계는 날씨가 추우면 수은주가 내려가고 더우면 올라갑니다. 이렇듯 환경에 따라 기분이, 신앙생활이, 기쁨과 감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은 온도계와 같은 사람입니다.

 

반면 온도조절기는 날씨가 추우면 온도를 올리고, 더우면 온도를 내려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주는 기능을 합니다. 이렇듯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고 영향을 주는 삶을 사는 사람은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바울의 삶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도직을 감당하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육체의 가시라고 불릴 만큼 오랜 기간 앓고 있던 지병도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감옥에 감금되어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고 누리게 된 절대적인 기쁨을 숨길 수 없었고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온도계가 아닌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바울은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

곧 예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므로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빌 1:18 /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바울의 형편을 살펴봐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간수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또한 네로의 궁전에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기에 전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밖에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뻐한 것입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있다"라고 명확히 선언하는 것은 교회 성도들뿐 아니라 사람들을 진보시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장합니다. 성장하는 성도는 이상을 세우고 그 이상에 맞는 비전을 갖습니다. 이와 같은 성도는 언젠가는 비전을 이룹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의 소원을 두고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그 소원과 비전을 온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안 이루어질 것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전을 마음속에 품고 집중하면 그 비전이 구체화됩니다. 마음은 본래 구체화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전이 명확히 세워지면 만물의 본원에서 필요한 것들이 흘러나와 그 비전이 구체화됩니다. 따라서 비전이 명확하면 명확할수록 그 결과도 더욱 명확해집니다.

 

아무것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없어 우울할 때, 지금 나눈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해 보십시오.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에 기쁨이 솟구쳐 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소중한 이들과 함께 나눌 때 기쁨이 흘러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4:4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 기쁨에 주의를 두십시오!

 

기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라는 명령에 해당되는 헬라어 카이레테(chairete)는 습관적으로, 계속적으로 기뻐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기쁨을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이든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음을 늘 기억하십시오. 스스로 정한 한계를 뛰어넘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우리는 원망하고 분개할 이유를 갖고 살 수도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갖고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택하면 반드시 그 선택한 것이 내 손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나는, 하나님의 창조력을 이양 받은 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존재야. 그러므로 항상 기뻐할 수 있어." 하고 기쁨을 선택하기로 결단하면 그 기쁨은 내 것이 될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땅에 머무는 것을 생각하며 슬퍼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통신이 되지 않는 세상을 생각하며 한탄만 하고 있지 않았으며, 토머스 에디슨은 어둠에 대해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불편하다고 원망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 안에 새겨놓으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여 마침내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가만히 있지 마십시오. 선택하십시오. .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기쁨의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여러분의 의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곧 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주 안에서의 양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 밖에서의 음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안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3세기에 지어진 시를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당신은 가능성을 갖고 태어났다.
당신은 선량함과 신뢰를 갖고 태어났다.
당신은 이상과 꿈을 갖고 태어났다.
당신은 위대함을 갖고 태어났다.
당신은 날개를 갖고 태어났다.
당신의 운명은 기는 것이 아니니, 기어 다니지 마라.
당신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를 사용해 나는 법을 배워라.
- 루미(Ru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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