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기도
마 26:36-46
36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할렐루야! 사순절 4번째 주를 지나며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시는 우리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교회에서 그리고 개인으로 고요히 사순절을 보내는 가운데 세상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불안정하여 때로 답답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의 자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시끌시끌한 세상처럼 최근 제 속도 꽤나 소란스러웠는데요, 바로 어제가 만우절이었죠? 만우절은 서로 장난으로 거짓말을 하며 웃음을 주고받는 날입니다. 그리고 어제 차라리 만우절 장난이길 바라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상을 입게 되었어요. 책상에서 떨어진 물건으로 인해 발등이 찍혀서 새끼 발가락이 골절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부상 정도가 막 심각하지는 않아서 깁스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4월의 많은 행사를 앞두고 부상을 입게 되니 참 편치 못한 상황입니다.
건강의 문제에 있어서 아버지도 별로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병원정기 검진을 가서 잘 관리하던 당화혈색소가 이전보다 증가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당화혈색소는 포도당이 결합된 혈색소로 혈당이 높으면 이 혈색소가 증가하게 되는데, 최근 3개월간의 혈당 조절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입니다.
그동안 운동도 식단도 빠지지 않고 관리했기에 오히려 좋은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조금 어리벙벙한 상태로 의사에게 되물으셨습니다. “아 이전보다 올랐나요?” 그러자 의사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합니다. "목사님 이전 수치를 꼭 기억하셔서 지금이 올랐는지 내렸는지 확실히 아셔야 해요. 특별히 혈당 관리는 긴 호흡으로 꾸준히 가져가셔야 합니다."
발을 다치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제가 아버지의 보호자로 병원에 대동하게 된 가운데 관리가 미흡하였다는 성적표를 받으니 다소 울적한 기분이지만 그래도 상황을 정확하게 알게 되어 더 철저히 관리해야겠다는 분명한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부상이나 생각한대로 나와 주지 않는 결과, 전부 달갑지 않은 상황입니다. 심지어 계속 기도하고 준비하던 것들이 어그러지면 더 마음이 불편합니다. 사모님은 이제 곧 있을 바자회에 많은 도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주중에 더 많은 성도님들을 직접 만나서 교회로 초청하려는 계획이 발의 부상으로 인해 차질을 빗게 되었고, 또 목사님은 빨리 컨디션을 회복하여 교회에 아프신 성도님들께 좋은 소식을 전하여 서로 격려와 위안을 주고 싶은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검사결과로 속상하셨겠지요.
심지어 사모님은 발을 다친 날이 주일이었는데, 다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움직임에 제약을 받을까봐 처음에는 다친 사실도 숨기시고 병원도 가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떻게든 무리 없이 원래의 일정을 소화하고 싶으셨는지 안 아픈 척을 하시다 결국 성도님들의 걱정과 제 성화에 못 이겨 화요일에 병원에 가셔서 골절이라는 정확한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골절에 대한 진단과 혈당 수치 상승이라는 결과는 사실 결코 반가운 손님이 아니죠. 처음에는 계획에 방해만 되는 이러한 상태를 알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지금 현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치유와 관리, 회복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와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6절로 38절의 말씀입니다.
36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태복음 26장에는 예수님의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바로 직전의 상황을 그린 매우 긴박하고 고통스러운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에게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셔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불안으로 가득 찬 표정을 주고받는 세 제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엎드려 기도하셨다.
기도의 주 내용은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구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가운데 보이신 인간적인 모습, 곧 괴로움과 고통에 비통해하는 면모에 위안을 얻기도 하고, 혹은 예수님이 겪으신 잔혹한 수난에 가슴 아파하며 사순절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뒤따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 전까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모르셨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다가올 고난을 모르셨기에 더 고통스럽고 괴로워하셨는가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누누이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고하자 항변하며 이를 막던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면서 혹독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돌연 십자가를 앞두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셨을까요? 예수님은 고민하며 슬퍼하시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 마음이 죽게 되었다라고까지 표현하십니다. 담대히, 담담히 죽음을 예고하시던 예수님의 이전 행보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더욱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아버지여 만일 하실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는데 여기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는 말은 곧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는 말이죠.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을 정확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십자가 형벌을 앞에 두고 예수님이 정말 피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종종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육신적 고통에만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채찍과 가시관 조롱 등의 예수님이 당하신 육신적, 정신적 고난입니다. 십자가 사형 방법은 모든 사형 방법 중에서 가장 극악한 것이라는 키케로의 말처럼 이는 육체적으로 매우 극심한 고통을 가져다주지만 예수님의 고민은 이것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끊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단절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신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소외와 단절보다 더한 고통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더한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은 십자가 자체의 고통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되는 고통이었고 바로 이것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항하는 인간의 불순종인 죄, 곧 하나님부터 분리되려는 인간의 악한 속성을 끊어내기 위해 직접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피 흘리는 고통과 죽음의 관문을 앞에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마지막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두 번째, 세 번째로 기도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가장 큰 고난과 두려움을 앞두고 우리에게 보이신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자기의 뜻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도록 결단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요 승리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말씀을 읽는 우리와 함께 공명합니다. 편한대로 원하는 대로 말하고 살던 나를 부수고 깨뜨리고 깨닫게 합니다.
마 7:7 /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이 더 명확해졌지요? 이 구절을 놓고 내 욕망의 실현을 바라던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대상은 기도제목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두드리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욕망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내가 미리 답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내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하셨습니다. "영성이란 부서짐을 수용하고, 부서짐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는 지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며 내 뜻과, 내 욕심대로 살지 않고, 내 존재의 목적이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서두에 저희 가정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계획이 어그러져서 순간 당혹스러웠으나 곧 병원에 가서 몸의 상태를 알게 되자 더 잘 관리할 것을 다짐했다고 말씀드렸지요. 살다보면 전혀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기도한 것이 응답을 받지 못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삶의 대부분이 그렇지요.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기도는 '피할' 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기도였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고집'이 아니라 아버지 뜻을 수용하려는 '순종'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는, 그리하여 깨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하던 내 죄악 된 욕심이 부숴지고 마침내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그 놀라운 뜻을 밝히 보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하시고, 그 뜻을 따르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내 마음의 뜻과 생각이 하나님께 향하길 원합니다. 겟세마네 기도 가운데 보여주신 예수님의 순종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도록 우리의 입과 마음과 행동을 지켜주세요. 오직 주님 안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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