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사 43:19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할렐루야!
봄의 끝자락, 초여름의 시작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가 오고 난 후여서 그런지, 이번 주간 하늘이 참 파랗고 예쁘더라구요. 이처럼 날이 좋거나 예쁜 풍경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지요.
저도 하늘을 보면 우리 성도님들이 생각나고 꽃을 보면 우리 권사님들 얼굴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마 아직 남자친구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우리 교회 청년들도 똑같더라고요. 어제 하루 종일 청년부가 속해 있는 단톡방이 시끌시끌했는데, 알고 보니 파란 하늘이 예쁘다며 각자 자신이 찍은 하늘 사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 이렇게 낭만 있는 사당중앙교회 식구들과 함께하게 되어 무척 행복합니다.
함께하는 계절이 쌓여갈수록 우리 성도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갑니다. 좋은 곳이 있으면 다같이 가자고 약속을 잡고, 또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나누시는 성도님들을 보며 '삶을 그리고 소유를 공유하던 초대교회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좋은 것을 볼 때도 성도님들 생각이 나지만 무엇보다 설교를 준비할 때 우리 성도님들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합니다. 우리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께서 요즘 무엇을 보시고, 무엇을 들으시고, 무엇을 말하실지, 어떤 것을 궁금해 하시고, 필요로 하실지 등등 여러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지만, 항상 그렇듯이 이 모든 생각을 마무리하는 것은 성도님들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소망! 올 한 해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빠르고 더 뜨겁고 더 강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모두가 행복을 갈구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 갈급해지기만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망을 소원하는 것, 즉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들은 소망의 의미를 소장이나 소비와 같은 물질과 행위에서 찾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으로 이르게 하는 소망은 너무도 모호하여 한눈에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무엇이든지 다 사고 팔며, 심지어는 소망까지도 소비하고 소유하도록 조장하게 되었습니다.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사람의 심리를 파는 것도 당연시 된 요즘 공격적인 마케팅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아직도 모르세요? 혹은 이것이 없으면 뒤쳐집니다. 등등의 캐치프라이즈를 보면 우리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지고 꼭 그것을 가져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소망은 고작 이러한 영역에서 머무르는 가치가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뜻을 둔 우리에게 소망이란 “확신에 찬 기대”를 뜻합니다. 이것은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확고한 자신감입니다.
오늘 설교의 배경이 되는 이사야서는 심판과 소망의 책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의 참 뜻이 가장 잘 드러난 말씀 중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본문인 이사야 43장은 바벨론으로부터 빠져나온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원을 약속하신 내용이 있는 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중동지역에 속해 있는 이스라엘은 땅의 많은 부분이 광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가 잘 내리지 않고, 내리더라도 금방 땅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메마른 땅이지요. 그렇다면 이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오랜 소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죠. 고대 이스라엘은 여러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에 불과하였는데, 그 주변국 중에는 이집트가 있습니다. 이집트는 당시 풍요의 땅으로 그들에게는 나일강이 있어서 그 강으로 인해 땅이 비옥할 수 있었습니다. 씨앗을 뿌리면 금방 곡식이 자라나고 남는 곡식들로는 장사를 하니 그 땅에는 곡식도 상인도 물자도 많았을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는 어떠한 존재였을까요? 오랜 세월을 종살이한 나라,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차라리 모든 땅이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지금 이스라엘은 물로 고생하고 있는데 그 곁에 이집트라는 풍요의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큰 괴로움이었을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마침내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 도착한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격동의 역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끝없는 사람의 욕심과 그에 비해 한정적인 자원을 두고 일어난 전쟁은 작은 나라에 불과한 이스라엘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에게 목마름과 갈증은 평생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때로부터 시작하여 오랜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물로 인한 다툼과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그것, 바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언약의 말씀을 주신 시기가 참으로 재밌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 이 축복의 메시지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못할 바로 그 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사55:1-9 /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은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기를 살아갈 이스라엘에게 그 무엇보다 빛나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소망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소망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무엇을 소망하느냐입니다. 무엇을 소망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의 태도가, 나아가는 길의 방향이, 나의 온전한 정체성이 결정지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세워졌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이스라엘은 목마른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헛된 것에 수고하며 이미 불필요한 것에 돈을 다 써버려서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부르사 그들을 열방을 위한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왕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새 언약은 기존에 우리가 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소망입니다. 이것은 한눈에 보여서 그 가치를 완전히 파악하다 못해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이 땅의 것이 아닙니다. 이 소망은 손으로 움켜쥐어서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 언약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끝없이 싸워야하는 갈등의 씨앗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새 소망은 우리 마음에 새기고 주야로 묵상하여 서로 나누고 섬기고 하나 되게 하는 그것입니다. 광야도, 사막도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 두신 권능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 능력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메마른 땅에서도 끝없이 흐르는 생명의 물을 얻게 된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이 이야기에 각자 자신의 이름을 대입하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그 해에 백 배의 수확을 거두어들였다. 주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부자가 되었다. 재산이 점점 늘어서, 아주 부유하게 되었다. 그가 양 떼와 소 떼, 남종과 여종을 많이 거느리게 되니,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아버지 때에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 버렸다. 그 땅의 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서 떠나가시오. 이제 당신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그은 그 곳을 떠나서, 그랄 평원에다가 장막을 치고서,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의 종들이 그랄 평원에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솟아나는 샘줄기를 찾아냈다. 샘이 터지는 바람에, 그랄 지방 목자들이 그 샘줄기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목자들과 다투었다.
그 종들이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 지방 목자들이 또 시비를 걸었다. 그는 거기에서 옮겨서,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 때에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주님께서 우리가 살 곳을 넓히셨으니, 여기에서 우리가 번성하게 되었다" 하면서,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하였다. 그는 거기에서 브엘세바로 갔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너의 자손의 수를 불어나게 하겠다." 그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였다. 그는 거기에 장막을 치고, 그의 종들은 거기에서도 우물을 팠다.
왕이 군사령관을 데리고, 그에게로 찾아왔다. 그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나를 미워하여 이렇게 쫓아내고서, 무슨 일로 나에게 왔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당신 사이에 평화조약을 맺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와 당신 사이에 언약을 맺읍시다. 당신은 분명히 주님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그들을 맞아서 잔치를 베풀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사람은 이삭입니다. 이 사람은 최서현입니다. 이 사람은 사당중앙교회 성도님들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실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물을 주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받은 물을 소유하기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지혜로 우물을 두고 거래를 하거나 소비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자신이 해야 할 일, 우물을 파는 일을 묵묵히 하였습니다. 그가 막힌 우물에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소망이 우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으신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소망은 생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삭은 자신과 자신의 식구들 뿐 만 아니라 그 일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이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고 그에게 찾아와 그와 친구가 되길 부탁하였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지난주와 지지난주의 주일예배가 떠올랐습니다. 지지난 주는 성령강림주일 예배였는데, 많은 성도님들께서 예배가 참 좋았노라 말씀하시며 찬양과 말씀의 내용이 자신의 고백이었노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저 역시도 예배가 참 은혜로웠는데, 그 중 도입부를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싶습니다.
"해쳐 나가야 할 문제들이 우리의 안팎을 둘러싸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나타날 때마다 두려움이 확 밀려들기도 합니다. 잘해 보려고 했지만 자꾸 꼬이는 것만 같은 사람들과의 문제로 고심하며 잠 못 이룰 때도 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저마다 무언가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전쟁, 지진, 가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들을 접할 때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가장 갈급한 것은 권능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 속에서 평안하고 담대하게 살고 싶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 안에서 더 깊이 더 확실하게 체험하고 싶습니다. 우리 영혼의 갈급함, 우리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시원케 해주실 것을 믿으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메마른 땅을 흠뻑 적시고도 남을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생명수 되신 하나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사람은 물 댄 동산 같아서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모든 생물이 살게 하는 그 생명의 물을 가정으로 이웃으로 세계로 흘려보내게 됩니다.
우리는 소망 안에서 하나 된 하나님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같이 먹고 아름다운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교회입니다. 광야 같고 사막 같던 우리의 인생 속에서 길을 내시고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함께 이 기쁨의 자리를 세워나가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소망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자녀로 불러주신 크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소망을 주사 하나님의 것 되게 하셨으니 그 능력을 힘입어 내 이웃을 돕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주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저희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시며,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언제나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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