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이 변하여 기쁨이 되리라
스가랴 8:18-23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슥 4:6 /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즉 이렇게 불가능한 현실 가운데서 사람의 그 어떤 힘과 능력으로 안 되지만, 하나님이 영이신 성령의 능력으로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므로 그들에게 비전을 가지게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주신 첫 번째 비전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슬퍼하며 금식하는 절기가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는 비전입니다.
슥 8:18-19 /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사월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의 정복을 당한 사건을 기억하는 금식이고, ‘오월 금식’은 성전이 불타버린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칠월 금식’은 그달리야 총독의 피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요, ‘시월 금식’은 예루살렘이 포위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네번의 금식은 유대인들이 치욕적인 상처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살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절기였습니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처를 달래며 슬퍼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기들이 변하여 기쁨의 절기가 되고,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이전의 슬픔을 다 잊어버릴 만큼 큰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계속하여 금식하는 절기를 지켜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더 이상 금식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진리와 화평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메시아를 통해서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특성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이 누리게 될 징표들이었습니다(요 1:47; 마 5:9).
유대인들이 포로생활 중에 잊을 수 없었던 슬픈 날을 기억하고자 네 번의 금식일을 정하여 지켰는데, 예루살렘의 멸망(왕하 25:3-21)을 기억하는 4월 9일과 성전 파괴(렘52:12-13)를 기억하는 5월 10일, 그리고 제사장 그달리야의 살해(왕하 25:23-25)를 기억하는 7월 2일과 예루살렘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을 기억하는 10월 10일 이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기억들로서 매년 이 날이 되면 금식하면서 슬퍼하였지만, 이제 이 날이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게 해 주겠다고 비전을 주십니다.
둘째는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것이라는 비전입니다.
슥 8:20-22 /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황폐하여 사람들이 떠났던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후에 여러 백성과 주민들이 찾아올 것이고, 이곳, 저곳에서 우리가 속히 예루살렘에 가서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며 나아오겠고, 많은 백성과 강대국까지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게 될 것을 말씀하므로,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 비전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도 나도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려고 몰려 들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이스라엘의 위상이 변화될 것이라는 비전입니다.
슥 8:23 /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언어가 다른 이방백성 열 명이 유다사람 한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너희가 하나님과 함께 있다 함을 들었으니, 우리고 너희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게 될 만큼 영향력있는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의 삶이 얼마나 축복된 삶인가를 알기 때문에 서로 그 공동체에 들어가기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 재건과 이로 인한 축복이 궁극적으로는 메시야 왕국의 도래와 메시야의 통치와 관련을 맺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약속은 장차 메시야 왕국의 영광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회복될 예루살렘은 슬픔이 사라지고 진실과 화평의 성음이 될 뿐만 아니라(19절) 온 세계 만민에게 구원을 전하는 도성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보여 주신 비전을 또한 우리도 마음에 품고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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