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래요
살전5:16-18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할렐루야! 예배의 자리에 오신 모든 성도님을 환영합니다. 아직 6월 중순인데 벌써 이렇게 덥다니 앞으로 다가올 7,8월의 무더위가 얼마나 극심할지 긴장이 됩니다.
이렇게 슬슬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교육부 전도사들은 다른 의미로 긴장하게 되는데요. 😊🎶💕🙌💖
여름이 왔다는 말인즉슨,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바로 어제 유초등부 교사 선생님들과 함께 여름성경학교를 위한 교사 강습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강습회에 관해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보통 강습회에 가면은 3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먼저는 여름성경학교 주제, 그리고 주제곡, 마지막으로 공과활동...
우리교회가 속한 감리교 서울남연회 각 지방에서 오신 수 백명의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이번 년도 여름성경학교에 관한 주제가 무엇인지, 새로운 찬양은 어떻게 부르고 춤추는지, 공과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자, 그럼 깜짝 퀴즈 나가겠습니다.^^
이번 2024년 유초등부의 여름성경학교 주제는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기도할래요!'입니다. 아주 눈치가 빠르시네요. 오늘 설교 제목과 동일하죠.
그렇다면 주제 성구는 무엇일까요? 역시 오늘 본문과 같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귀한 성경구절을 주제로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강습회에서 주제곡을 배우는 도중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찬양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구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나는 아직 잘 모르지만, 또는 기도가 어려워도 기도가 어색해도, 그리고 하나님 내 목소린 작지만 듣고 계시죠" 등등의 내용들이었습니다.
찬양 가사가 참으로 솔직하죠? 축하드립니다. 우리 사당중앙교회 선생님들은 아직 기도가 뭔지 몰라서 어떻게 무엇을 왜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절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참 소화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우리도 지키기 어렵거든요. '아니 내 삶이 이렇게 팍팍한데 어떻게 항상 기뻐해. 누구한테 퍽 하고 맞아도 그냥 웃으라는 건가? 쉬지 말고 기도하려면 잠도 안 자지 말고, 다른 볼일도 봐서는 안되는 건가? 범사에 감사하라니 내가 지금 감사할게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 제가 안 좋은 일을 당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억지로 감사의 거리를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아직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말씀을 무작정 행위로 옮기려다보니 나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전달되는 것은 딱딱한 명령일 때가 많죠.
"너 기뻐해. 너 기도해. 너 감사해. 안 그러면 하나님이 복 안 주신다." 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이런 협박성 멘트로 우리를 다그치시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모두가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 말씀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멀리 갈 필요 없습니다. 바로 18절 뒤에 정답이 나와 있죠.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도를 특별한 행위로 생각하면 부담이 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의식이, 그리고 마음의 초점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상태입니다. 즉 기도는 하나님의 의도와 뜻에 대한 나의 신뢰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아이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사랑으로 날 사랑하시는지를 먼저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과 행동을 억압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옳은 길을 가길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죠?
어린 아이들에게 사랑, 믿음과 같은 무형의 추상적인 개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성경의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이 느낀 감정을 내가 느끼고, 그들과 또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유초등부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 중에서도 성경 이야기로 아이들을 교육하기를 시도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최근에 한 아이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전도사님! 밤에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성경을 3장씩 읽어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듣기에 좀 자극적인 내용이 많아서 고민이 돼요..."라고요.
우리 성도님들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호기롭게 성경 통독을 도전하더라도 레위기, 민수기라는 양대산맥에 가로막혀 그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셨으리라 예상됩니다. 저 역시도 이 앞에서 여러 번 절망하였거든요.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통독하기에는 창세기부터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구나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창세기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타락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여러 살인, 성 문제 등의 죄악 된 모습이 나오지요. 이러한 사건 사고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솔직한 질문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이 질문을 듣고 먼저는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그냥 읽어주는 것이 아닌,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과 접근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좋을까하고 고민하시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해 드렸습니다. 성경 통독도 기도와 같습니다. 통독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함입니다. 창세기가 사람의 추악함을 그대로 고발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선택들이 이루어 낸 결과들을 지탄하고 경고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책을 소개해 드렸어요. 독일의 유명 삽화가가 함께 작업한 어린이 성경인데, 그 그림들이 참으로 생동감이 넘쳐서 성경을 읽는 우리도 이야기 안으로 초대합니다.
제가 느꼈던 감동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몇 가지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흉년이 들어 곡식을 사기 위해 이집트에 가게 된 요셉의 형제들입니다. 이집트의 압도적인 건축과 문화 앞에서 너무나 작고 초라한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이 장소에 손이 묶인 체 노예로 끌려온 요셉이 느꼈을 충격은 얼마나 더 컸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64)
당장이라도 따먹고 싶을 정도로 크고 탐스러운 가나안의 포도입니다. 이제야 가나안 땅을 탐색한 정찰대가 모세에게 본 것을 보고하면서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다.(104)
예기치 않은 끔찍한 고난을 당하게 된 욥의 참담함이 나치에 의해서 살던 곳에서 쫒겨나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된 유대인의 비참함으로 표현되었습니다.(215)
이 밖에도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러 그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울린 것은 이 삽화였습니다.
두 사람이 광야에 서있습니다. 누구인 것 같나요? 놀랍게도 이 장면은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예수님과 그런 예수님을 유혹하는 마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둘의 생김새가 같아요.(237)
이 그림을 보면 더 자세히 표현되었습니다. 같은 얼굴을 하였지만 무언가 확연히 다릅니다. 왼쪽에는 황금을 선택하였지만 결국은 차가운 잿빛의 삶을 살고 있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사나이가 있고요. 오른쪽에는 고난을 상징하는 가시 돋힌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사나이가 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사나이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요.
우리 안에 있는 욕망과 본성은 너무도 부지런하고 교묘해서 우리와 똑같은 얼굴로 나타납니다. 악은 어느 새 우리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않아서 이기심과 뒤틀린 욕망, 폭력과 억압의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황금을 쥐고 있는 매력적인 악에 비해 선은 볼품이 없습니다. 가시 돋힌 나뭇가지에요. 하지만 그것을 잡고 계신 분이 가장 온화한 미소로 앉아있습니다.
악은 세련되게 그 모습을 계속 감추어서 사람을 유혹합니다. 내 왕국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마귀의 유혹이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때때로 그 유혹은 마치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방심하는 순간 우리는 그 속삭임에 넘어가서 돌로 빵을 만드려고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에게 보호를 받는 멋진 장면을 연출하려 하고, 결국 악에 굴복해서 욕망과 본성에 내 자신을 내맡기게 됩니다. 바로 이 때 우리 여름성경학교의 주제를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기도할래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곧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오늘 본문 말씀이 주어진 배경인 데살로니가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마게도냐의 중심 항구도시이자 수도인 데살로니가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곧 여러 사건이 폭풍처럼 지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서 이 일련의 과정을 잘 기록하였는데 함께 17장 1절로 10절을 어린이 성경으로 봉독하겠습니다.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유대 사람의 회당이 있었다. 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회당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해석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다가 패거리를 지어서 시내에 소요를 일으키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끌어다가 군중 앞에 세우려고 찾았다.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군중과 시청 관원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다. 그러나 시청 관원들은 야손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다."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다는 것은 바울과 실라가 옥에 구금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바울과 실라, 그리고 복음을 받아드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로마 황제를 거역한다는 정치적인 혐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박해가 너무 심해지자 바울과 실라는 그 도시를 떠나 피신할 수 밖게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떠나온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걱정과 성도들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 결국 자기 대신 디모데를 파견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을 굳게 하고 고난을 위로하며 환난을 이길 힘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돌아온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본을 보이며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고받은 바울은 기쁨으로 그들을 치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서신을 작성하였고, 그것이 바로 오늘 읽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입니다.
사실 상황만 놓고 보자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한 환경은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은 그 사회에서 소외와 적대, 박탈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에 대한 소망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본 바울은 서신을 통해 아름다운 3편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이러합니다. 먼저 1장에 그는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1장 2절로 4절의 말씀 봉독하시겠습니다.
살전 1:2-4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동족으로부터 받는 멸시와 모욕을 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 모든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굳세게 바울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들을 향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사랑과 소망이 넘치게 하길 간구하는 인내의 기도를 드립니다. 3장 11절로 13절의 말씀입니다.
살전 3:11-13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 마음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 고난의 상황 속에서, 도저히 내 힘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없는 핍박의 환경 속에서 바울은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에 힘쓰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삶의 기도를 드리길 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진정한 힘과 권력은 군사정권으로 무장한 로마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이 행하시고 또 행하실 구원의 역사에 대한 소망의 기도로 서신을 마무리합니다. 5장 23절 24절 말씀입니다.
살전 5:23-24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고, 무엇가를 받았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환경에 따른 기쁨과 감사는 곧 사라져버리고 상황에 따라 무가치하게 변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안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감사, 곧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소망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억지 노력과 인위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바로보고 꿈꾸게 된 소망입니다.
기도를 통해, 기쁨을 통해, 감사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발견하시는 사랑하는 사당중앙교회 선생님들,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믿는 자에게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주를 예배하는 모든 선생님들, 성도님들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사, 상황을 보던 눈을 들어 이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풍성한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도록 힘과 지혜를 더하여 주세요. 참 스승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기도와 말씀 안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당중앙교회 교육부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앞으로 교회 안에서 진행될 모든 예배와 행사를 주님께서 주관하실 것을 믿으며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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