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대적자들, 느 6:1-19, 느헤미야 시리즈 설교(6)

by tat tvam asi 2024. 6. 16.
반응형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대적자들 

 6:1-19

 

 

성벽 재건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대적자들은 점점 더 교묘하게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느 6:1 /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집 안 거실을 리모델링한다고 하면, 공사가 마무리된 후에, 벽지나 페인트칠을 하고서 방문과 창문을 답니다. 만약 방문이나 창문을 먼저 달아 놓고, 도배를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게 되면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공사를 끝내지 못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럼에도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 등에게는 느헤미야가 성벽공사를 끝내었다고 보고가 들어갔습니다.

소문은 칭찬이든 험담이든 과장(誇張)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내용을 옮길 때,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이 섞이게 되면 그 내용이 부풀어 오릅니다. 옮기지 않아야 될 이야기는 옮기지 않고, 옮겨야 할 내용은 사실만 옮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소문을 들은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느 6:2 /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30 km 지점에 위치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오노 평지에 있는 한 마을에 만나자는 제안은 자신을 해치기 위함임을 간파했습니다. 만약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결론을 위한 만남 제안이라면, 예루살렘에서 30k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장소가 아니라 예루살렘 시내에서 만나자고 했을 것입니다.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는 제안에 대해 느헤미야가 말한 답변을 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느 6:3 /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느헤미야는 공사중이라 내려가지 못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참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아마 이렇게 답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의 속셈을 모를 줄 아십니까? 내가 약속장소로 나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없애버릴 계획인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제가 지금 큰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있어야 일이 진척이 되네요.”라고 에둘러 말했습니다.

하지만 산발랏과 게셈은 알아듣지를 못하고, 4번이나 사람을 보내어서 만나자고 재촉했고, 느헤미야도 동일하게 답변을 했습니다.

 

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느 6:5 /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산발랏과 게셈은 5번째 사람을 보낼 때에는 손에 편지를 들려 보냈는데, 그 편지는 봉하지 않은 편지였습니다. 산발랏이 앞의 4번까지는 봉한 편지를 쥐어서 사람들을 느헤미야에게 보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5번째 편지를 보내면서 풀칠을 하지 않고 보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로 하면 인터넷에 공개서한을 올렸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6-7절입니다.

 

느 6:6-7 /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그 내용인 즉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고 하고 있고, 그 사실을 페르시아왕에게 보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정시대에 가장 악질적인 모함은 ‘역모(逆謀)’입니다. 역모의 누명을 쓰면 벗어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나는 역모를 꾀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면, 감추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 반복해서 강하게 “나는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이렇게 강하게 부정하는 것을 보니 사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하여 역모를 꾀했노라고 거짓자백을 하게 되면, 드디어 이실직고를 했노라며 능지처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8-9절입니다.

 

느 6:8-9 /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는 자신이 역모를 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지어진 이야기라고 말하고, 자신이 성벽을 잘 완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오해나 모함을 받게 되었을 때는 아닌 사실에 대해서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는 유혹 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10-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느 6:10-12 /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하루는 느헤미야가 최근에 잘 보지 못한 스마야 선지자를 찾아갔더니 그가 이르기를 “하나님의 성전 안에 숨읍시다. 성전 외소 안에 숨어야 목숨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지자가 성전 안에 숨자고 말하니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번에도 스마야 선지자가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그렇게 제안한 것인 줄 간파했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에 성전으로 도망가서 제단에 있는 뿔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전 외소에는 제사장들이 들어가는 곳이기에 일반인들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입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성전 외소로 피신하였다가 문을 잠그면,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느헤미야가 꿰뚫고 아는 것입니다.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진행된 예루살렘 성벽이 마침내 완성이 되었습니다. 15-1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느 6:15-16 /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주전 586, 남유다가 완전히 망한 이후,  140여년이 지나도록 방치되어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이 불과 52일 만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산발랏, 도비야, 게셈의 집요한 방해와 스마야의 교묘한 계략 등 숱한 난관이 있었지만 마침내 대역사를 이루어내었던 것입니다 그 완성된 성벽을 보고, 반대자들이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셨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을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방해에도 그 일을 이루어 낸 것을 보니 위에서 누군가가 돕지 않고서는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혹 성도님들의 가정이나 일터에는 무너진 상태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또한 신앙생활이나 삶의 자리에는 다시 세우려다가 하기 싫음이나 여러 방해로 인해서 중단되어 흉하게 보이는 성벽은 없습니까? 아니 마땅히 다시 세워 올려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140여년 동안 세우지 못한 예루살렘 성벽처럼, 세우기를 포기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가만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을 완성해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니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두렵게 하다’입니다.

 

9절 /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13절 /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14절 /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19절 /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대적자들은 끊임없이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은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두려움을 갖게 하여 성벽을 재건하려는 손에 힘을 빼려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뇌물과 비방으로 공포심을 갖게 하려는 것에서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비야, 산발랏, 스마야와 같은 사람들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여기며, 그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셨음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헤미야에게 16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느 6:16 /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대적자들이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려고 했는데, 정작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이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를 두렵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살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더 높은 자리에 가야 한다. 세속적인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오늘 하루도 살아가십시다. 그 때에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