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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 느헤미야 7장 1-73절, 느헤미야 시리즈 설교(7)

by tat tvam asi 2024.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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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

느헤미야 7 1-73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52일 만에, 문짝을 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아름답게 건축하고서, 거기에 들어가 살지 않는다면 그 집은 쉽게 흉가가 될 것입니다. 집을 잘 짓는 것만큼이나 지어진 집에 들어가 그 집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1 /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성벽을 공사를 진행하면서 방해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습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물론이고, 심지어 선지자 스마야마저도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를 성전에 가두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벽을 완공했다면, 느헤미야는 응당 최정예 무사들이나 유다 사람들 가운데 기골장대한 사람들을 뽑아서 성벽을 지키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물리적인 힘이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벽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들, 레위 사람들로 지키게 합니다. 이는 느헤미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신앙공동체를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 안에 성전이 있기 때문에 레위 지파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지게 합니다.

 

 7:2 /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 관리 책임자로 레위 지파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니와 하나냐가 선임되었습니다. 이들이 선정된 이유가 그가 ‘충성스럽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충성스럽다’는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나다’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냐는 충성스럽고, 하나님을 경외함을 통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어가는, 십자가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느헤미야의 동생 하나니는 1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겨울 궁전인 수산 궁에 있을 때, 예루살렘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수산궁까지는 약 1,600km 정도 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돌아올 때에 꼬박 4개월이 걸렸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하여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 각지역에서 출발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는 여정인데 약 800km이고 40일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가는 길에는 잠잘 수 있는 호텔이 있고, 음식점이 있고, 쉼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니가 예루살렘에서 수산궁으로 갔던 그 길은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이 들고 가야 했습니다. 거리도 산티아고 순례기의 2배나 됩니다. 그 먼 길을 가서 예루살렘의 상황을 전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니도 하나냐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7:3-4 /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예루살렘 성벽은 완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반대자들은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해가 떠서 날이 완전히 밝은 후에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해가 지기 전에 문을 닫고 잠그고, 반드시 경비하는 사람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성벽 완성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완성된 성벽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목적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5-73절까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절에 의하면 그 이름들은 계보대로(가족별로) 등록을 하였다고 합니다.

 

 7:5 /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6-7절에는 인솔자 12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6-7 /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8-38절은 가족별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8-38 / 바로스 자손이 이천 백칠십이 명이요. ... 스나아 자손이 삼천 구백삼십 명이었느니라

 

39-45절에는 제사장들,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 등 레위 지파에 속한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39-45 /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 레위 사람들은 호드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사십팔 명이요. 문지기들은 살룸 자손과 아델 자손과 달문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디다 자손과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팔 명이었느니라

46-60절에는 느디님 사람들(성전에서 막일하는)과 솔로몬의 신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46-60 /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느니라

 

61-65절에는 계보가 불확실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61-65 /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 총독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66-73절에는 돌아온 사람들의 총 숫자와 예물의 숫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7:66-73 /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의 계보는 에스라 2장에도 거의 동일하게 나옵니다. 본래 히브리 성경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한 권, ‘에스라-느헤미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권의 책에 이렇게 긴 족보를 2번 반복해서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갔던 사람들이 전부 다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과 페르시아를 비교하면 페르시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국입니다. 그곳에서 수 십 년을 살게 되니 그곳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없는 땅, 척박한 예루살렘으로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돌아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겨주신 것입니다.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레위 지파 사람들도 있었지만, 성전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종이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들로부터는 천하게 여김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이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곳이라고 여겼기에 그들은 돌아왔고, 성벽을 재건하는데 온갖 방해가 있었을지라도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겼기에 그 이름을 지금까지 남겨 주셨습니다. 혹시 유다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의 예루살렘처럼 오늘 우리의 삶이 황량한 상황에 있는 분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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