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열어 주를 보게 하소서
요 5:30-40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에 대한 증거와 증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구체적인 근거의 내용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라는 것을 크게 세 가지로 증언하였습니다.
첫째는 예수님 자신의 삶과 하신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하나님께서 친히 증언합니다.
❚ 요 5:30 /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든지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셨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촘촘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에고(ego)의 영역에서 일을 처리하신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진정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여기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여기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이가 예수님을 인도하시기에 예수님은 무엇을 말하고 행할지 염려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가심을 알기에 원하는 어디든지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가르치신 치유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곧 자신의 뜻임을 인식하자마자,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일 수 있습니다.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에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고요히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영(靈)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두려움과 실존적 불안입니다. 두려움은 사랑의 결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결핍은 완전한 사랑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곧 속죄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고 그것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신 것입니다.
❚ 요 5:31-32 /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증인으로 하나님을 내세우셨습니다.
여기서 '증언하시는 이'는 하나님아버지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님뿐만 아니라 보내신 모든 선지자에게도 임재하시고 동행하셨습니다.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시고 애굽의 왕에게 보내셨을 때, 열 가지 재앙을 나타내심으로 모세를 친히 보내셨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도 수많은 기적과 언약의 말씀과 임재하심을 통해 모세와 함께 하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기적으로, 때로는 언약의 말씀으로, 때로는 자연현상들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어 두 번째 증인으로 세례요한을 세우셨습니다.
❚ 요 5:33 /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 세례 요한은 백성들이 가장 좋아하던 선지자였고,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세례요한을 따랐고, 심지어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까지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세례요한이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고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이러한 증언을 '진리'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 요 14: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의 진리는 하나님의 실재, 계시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이러한 사명에 대하여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등불은 영원히 밝힐 수 있는 빛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주변을 밝힐 수 있는 빛입니다.
❚ 요 5:34-35 /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주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사셨던 것처럼, 모든 이들도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완전한 빛 가운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참 빛이신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등불이었습니다(1:23). 그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었고, 그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마음의 법칙을 작동시킨다는 것을요...
우리가 행복하고 기쁘고 고양(高揚)되고 즐겁고 빛나는 상태에 있지 못하면 우리는 아버지를 공경하고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마음에 도입된 분열'로, 마음을 창조자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에고(ego)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분리 이후에 만들어진 자아의 질문하는 일면입니다.
분리된 혹은 분열된 마음은 혼동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마음은 자신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고, 자신과 일치하지 않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일면들은 서로에게 이방인이 됩니다. 이것이 쉽게 두려워하는 상태의 본질이며 이 상태에서는 언제나 공격이 가능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처럼 바른 마음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에고적 작동으로 그른 마음 상태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른 마음이란 '그른 마음'을 교정한다는 것으로, 정확한 지각을 불러오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바른 마음은 잘못된 지각을 치유하므로 기적을 지향하며, 이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무엇이라 지각하는가에 비춰보면 참으로 기적입니다.
우리가 지닌 능력은 진정한 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본래 판단하는 성향을 띤 우리의 지각은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된 이후에 도입된 것입니다. 분리 이후로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신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분리된 분리감이 없으셨기에, 자신의 마음에 그려진 것이 치유면 치유,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면 살리는 것,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쫓아내는 것,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이면 일으키는 것 등 그 마음에 상상한 것을 다 현실에서 이루어내실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미 받은 것으로 느끼고 믿음으로써 그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꿈들도 반드시 현실에 나타나게 됩니다.
인간은 그저 습관적으로 보여지는 외부 세상을 그대로 반응하며 봅니다. 자신이 진정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심어주신 우리 마음속 상상의 힘을 의지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것의 창조적인 과정에 맞추어 자신의 미래를 미리 준비시키고 만들어갑니다.
사람은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식,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 '존재의 의식', 예수의 영이 나의 안에서 운행하시는 것을 의식하면서 지금 이 순간 과거의 자아관념, 현실 팩트, 에고와 기존 패러다임을 무시한 채, 지금 이 순간을 Present, 즉 선물로 받아들여서, 이미 소망이 성취되었음을 지금 이 순간 믿어내고 감사와 기쁨과 평안 안에 흠뻑 빠질 수 있습니다. 지금이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선물, 즉 권능의 성령님,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 우리의 충일한 마음의 느낌을 최상으로 선택해 머금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생명을 표현하며 숨겨진 재능을 온 세상에 마음껏 펼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많은 이들이 성서를 자세히 조사하고, 자유롭게 인용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문자적인 것에 집착하며, 생명을 주는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셨듯이, 우리도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아버지와 하나가 되려는 진지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계시는 분명히 뒤따릅니다. 확신합니다.
우리들이 내 안에 참 빛으로 계신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을 받을 때, 사람들을 참 빛으로 인도하는 등불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성도로 부르셨습니다. 어두워서 길을 찾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여 빛 가운데로 나아오게 하는 것이 우리의 성도된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증언'이 이를 증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요 5:36 /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 요 5:37 /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 셋째로 구약 성경 말씀 전체가 예수님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 요 5: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언급한 성경은 구약성경을 말하는 것인데, 아직 신약 성경이 쓰여지기 이전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모세를 믿는다고 했는데,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가 무엇이며, 그 죄의 결과가 사망이라고 하는 것을 밝히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죄 지은 인간을 정죄하고 고발합니다.
율법과 성경은 이 죄와 심판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며, 그 길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의 삯을 치르며,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 구원을 얻게 됨을 증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시고 선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과 유대인들은 아직 주님의 말씀과 구원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말씀 가운데 구원의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해 안타까워하시고, 한탄하셨습니다.
❚ 요 5:38 /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 요 5:40 /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은 친히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증언하셨고, 성경이 증언하고, 예수님 자신의 생애가 증언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지금 당장 풍족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부와 번영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모든 증언들과 예수님의 가르침,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을 내 마음 속에 모셔 들이기만 하면,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살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당시 누구보다 성경을 많이 알았고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만 예수님을 보고도 그리스도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잘 알고 잘 지킨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자 세상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사고(思考)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좁은 세상에서 무한한 존재의 작업을 다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빛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이 그의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을 때 끝없는 빛의 광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죄와 벌이 있는 곳에서 떠나, 우리는 하나님의 완벽성이 있는 끝없는 자유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려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주의 영광을 보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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