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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뒤집지 않은 전병, 호 7:8-16, 호세아 시리즈 설교(14)

by tat tvam asi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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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지 않은 전병

 7:8-16

 

호세아 시절 이스라엘의 삶 가운데 정의가 구현되고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을 하나님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로 회개토록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했지만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이에 임박한 심판을 강력히 예고하면서 그들의 영적 상태를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에 비유했습니다.  

 

 7:8 /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전병이란 고운 가루로 반죽하여 구운 소제의 예물입니다. 그런데 뒤집지 않았다고 합니다. 뒤집지 않았다는 것은 뒤집을 때가 되었는데도 뒤집지 않은 상태입니다. 밑의 반쪽은 익었지만 위의 반쪽은 아직 반죽한 상태 그대로입니다. 그럼으로 뒤집지 않은 전병은 한쪽은 타고 한쪽은 익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전병으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뒤집지 않은 전병은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영적 상태가 서로 혼합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하자나 의심이 많은 믿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것도 미성숙한 믿음에 해당됩니다.  

 

본문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잡되니”라고 말하듯이 열방의 믿음이 함께 섞인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를 믿으면서 다른 나라의 우상들도 동시에 섬긴 것입니다. 나아가 다른 나라와 인본주의적인 외교 관계를 맺어 그들의 도움에 의존하고자 한 것입니다. 요컨대 한 입으로 여호와와 바알을 함께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와 또 그 결과입니다. 우선 이유는  이방처럼 먹고 마시는 것이 풍부해지고 나라가 강대해지기를 원했고 또 그런 나라와 친교를 맺어 도움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7:9-10 /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오히려 이방에게 계속 시달림을 받다가 결국 그들에게 멸망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완전히 배반하여 아예 섬기지 조차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과는 상관 없이 형통을 바라고 환난에서 구해주기만 간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자기들에게 어느 민족도 받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랑을 베풀어 주었는지에 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에게 수탈과 멸망을 당하자 또 다시 여호와께 눈물로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의 형통만을 위해서 여호와를 찾았고 심지어 형통을 보장해 준다면 아무 신(神)이나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방인과 혼인을 맺을까요? 그것은 이방인들과 관계를 맺어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신들의 악한 실상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는데도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해져도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치료하는 하나님께로 가야 할 필요성을 전혀 생각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을 두고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7:11 /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비둘기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힘 되는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것은 애굽과 앗수르를 자신을 도와줄 힘으로 여긴 것입니다. 애굽과 앗수르가 강하게 보인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애굽과 앗수르로 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전혀 보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강하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 하는 애굽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아래 있음을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증표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싸우지도 않았는데 승리의 전리품을 갖고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하나님의 손 아래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힘을 갖고자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이야 말로 뒤집지 않은 전병이고 어리석은 비둘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돈이 있는 곳으로 마음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돈도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7:12-13 /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 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

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거는 기대가 무엇입니까?

 7:14-15 /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내가 그들 팔을 연습시켜 힘 있게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오직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경배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와 하나님이 온전한 인격적 교제를 이어가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지금이야말로 더 늦기 전에 전병을 뒤집어야 할 때입니다. 성도와 교회 모두 뒤집어져야 할 전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뒤집지 못하면, 우리가 또 다시 하나님께 슬피 부르짖는다 할지라도 그분은 아무 조치를 취해 주지 않습니다.

 

 7:16 /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하나님이 성도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도 실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은 마음을 고치십니다. 자신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습관적으로 생각과 감정의 중독에 사로잡힌 마음, 두려움과 불안, 염려와 근심, 분노와 이기심 등에 휩싸인 마음을 고치시고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치료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동안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살던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는 고백을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치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료 받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비 한 방울 물 한 모금 밥 한 그릇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는 고백입니다.

 

돈이 나를 살린 것이 아니라 은혜가 나를 살게 하셨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치료 받은 마음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뜻대로 안될 때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원망과 불평이 전부입니다. ‘원망하지 말아야지’라고 아무리 각오해도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삶은 항상 우리를 격동하며 우리 속 깊이 숨어 있는 원망과 불평을 그 밑바닥까지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서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아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세상의 것에 아쉬워하며 살아가는 악함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치료는 곧 생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여 힘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감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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