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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혈루병 여인, 피가 마르다, 마가복음 5장 22-36절,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수요 예배 설교

by tat tvam asi 2024.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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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병 여인... 피가 마르다...

 

막 5: 22-36  /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할렐루야! 따뜻한 가정의 달 5월입니다. 다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이제 밖에 나가면 길거리에 활력이 돌고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니 제 마음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요즘에는 밖에서의 활기찬 에너지가 저를 막 불러서 하루에 한번 꼭 산책을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길거리 전도를 하시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지하철이나 번화가, 횡단보도 같이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주로 전도를 하는데,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나 싸늘하여서 제가 굉장히 놀랐습니다. 예전에는 불쾌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데, 이제는 싫어하는 것을 넘어 완벽한 무관심으로 대하더라고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아무래도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 길거리 전도의 방식이 불편할 수도 있고, 또는 교회에 대한 반발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상황을 보니 한 농담이 생각이 나네요. 아마 다들 들어본 이야기일 텐데...

 

한 신학생이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공부한 것이 없어 도무지 답으로 적을 말이 없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 학생이 아주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적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이 기상천외한 답을 본 교수님은 무릎을 치면 감탄합니다. 그리고 그 답안지에 이렇게 점수를 매겼습니다. ‘하나님은 백점, 너는 빵점’

 

그런데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이 교수의 마음 같은가 봅니다. 답은 다 하나님께로 밀어두고 아는 척만 하니, 빵점이라는 형편없는 점수를 맞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신학생이, 그리고 교회가 다시 정답을 맞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본보기 예수님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에게서 답을 찾은 사람들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바로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딸과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 온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군중을 헤치고 예수님께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적에 교수님이 재미있는 문제를 하나 내셨습니다. 바로 “큰 무리가 따르더라” 이 부분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라면 어떻게 이 본문을 그리실 것 같나요? 저는 종이에 예수님을 그리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제자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그림을 그렸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군중 앞이 아닌 군중 한가운데 있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앞뒤양옆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서 제자들은 마치 슈퍼스타를 호위하는 경호원처럼 이동하였을 것이라 말하시더라구요. 생각해보니 당연합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고치시고 말씀과 일용할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분이 오셨는데 어찌 그 마을이 잠잠할까요. 저 멀리서부터 소문을 듣고 동네방네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그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와중에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의 회당은 율법을 가르치는 기관으로서 회당장은 매우 큰 영향력이 있는 유대 지도자입니다. 당연히 다른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의 율법학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입장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예수님께 찾아와 그 발아래 엎드립니다. 많은 이목에 상관하지 않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아마 딸이 굉장히 위급한 상황에 놓인 것 같습니다.

 

그런 야이로의 간청에 그의 집으로 향하는 예수님을 따라 큰 무리가 함께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동행하는 길에 12년 동안 혈루증 앓은 여인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여인이 앓고 있는 혈루증은 정상적인 생리현상이 아닌 지속적인 자궁 출혈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레위기 율법에 따라 이러한 유출병이 있는 사람을 부정한 상태라 여겼습니다. 심지어는 그를 만지고 닿는 사람에게도 주의를 요청할 정도니 얼마나 그 취급이 심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니 이 여인은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말 온 힘을 다해 애씁니다. 원래 성경에서 개인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많이 생략돼있는 편인데, 이 여인이 얼마나 병에서 놓임받고자 노력했는지 26절에 보여줍니다.

 

막 5: 26 /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이 여인은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배척받던 여인이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력을 다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습니다. 유출병에 걸린 사람과 닿는 자 역시 부정함을 입는다고 율법에 기록되었기에 아마 이 여인은 사람들과 뒤엉켜있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불편하고 낯설고 심지어 죄책감이 드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건 제 해석이지만 아마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았을 때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길을 비켜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실 때 다들 군말 없이 같이 그 집으로 향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이와 같은 높은 직함도, 자신을 위해 나서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까지 굉장히 힘겨운 상황들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낫는다!”라는 믿음을 갖고 홀로 죽을 힘을 다해 예수님께 닿은 여인은 할렐루야!! 그 즉시 피가 마르고 병에서 자유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몰래 빠져나갈 일만 남았는데 야속하게도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시고 자기 옷에 손을 댄 사람을 찾기 시작하십니다. 자 이제 여인은 일생일대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외간 남자의 옷 술을 만진 것도 모자라 부정한 상태에서 손을 대었으니 부정을 옮긴 것이지요. 이를 사람들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하느냐 아니면 제자들이 말한 것처럼 사람이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서로 밀친 것으로 하고 조용히 도망가느냐. 정결예법에 따라 크게 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여인은 다시 한 번 믿음으로 앞에 나섭니다. 믿음으로 이 여인은 자신의 부정을 예수님께 옮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을 자신에게 옮겼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멘!

 

혈육의 가족에게는 딸이라는 호칭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전혀 연고도 없는 초면의 사람을 예수님은 딸이라 부르십니다. 오랜 병중에 여인에게는 고통 외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습니다. 딸을 고치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찾았던 야이로의 그 간절한 마음처럼 예수님은 열 두해 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었던 여인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그녀의 가족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병이 나았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혈루병이 그치고 피가 마른 여인 옆에 다른 의미로 피가 마르는 한 사람이 있지요. 바로 야이로입니다. 한시가 급한데 예상치 못한 소동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소식꾼이 찾아와 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야이로는 여인이 오랜 병에서 치유된 것을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 순간 절망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동일하지 않나요? 믿음의 한계를 정해놓는 것. “기적은 아픈 사람을 고치는 것까지 만이야. 내 딸은 이제 불가능해.” 또는 “예수님이 다른 사람은 다 고쳐도 나는 못 고쳐. 예수님이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나는 아니야. 날 위해서는 아니야.” 예수님의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상황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예수님은 믿지만 자기에게 그 일이 일어나리라 믿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무너진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하십니다. 야이로의 집에 가신 예수님은 아이의 부모님과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렇게 5명만을 데리고 아이의 방에 들어가 능력의 말로 아이를 고치십니다.

 

막 5: 43 /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같은 치유사역을 하시지만 예수님은 여인의 때와는 다르게 행동하시는데요, 많은 군중 앞에서 여인을 찾아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오히려 사람들을 다 물리시고 또 치유의 사실을 숨기십니다. 그리고 아이의 회복을 위해 먹을 것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는데, 그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을 주십니다. 모든 병자에게 다 다른 치유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나만을 위한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다가오십니다. 공동체에서 소외되었던 여인에게는 큰 소리로 나음을 선포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 여인의 정함을 알게 하시고, 딸의 죽음의 너무나 슬퍼하던 그 부모에게는 딸과 함께 하는 시간, 어린 딸이 기력을 마저 회복할 시간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딸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닙니다. 바로 나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고, 예배에 자리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아픈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에게는 일어나 그 침상 자리를 뜨라 명하시고, 모두가 꺼리는 문둥병자의 몸에는 손을 대서 회복을 명하시고, 또 키가 작은 세리장 삭개오를 돌감람나무 아래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행위는 3가지의 큰 틀을 공유합니다. 

 

첫 번째는 만남입니다. 일단 예수님을 찾아가서 만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뚫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연결입니다. 옷자락을 만지던, 그 손을 대던 예수님과 닿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이 나에게 임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선포입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치유하셨음을 선포하며 그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고치신 것처럼 하나님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일 1:1 /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고, 닿았고, 들었습니다. 기독교인은 답을 찾은 자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또는 피가 철철철 흐르는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의 정답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두에게 각기 다른 치유를 보여주신 예수님.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아시는 예수님. 나를 찾으사, 만지시고. 선포하시는 예수님.

 

귀한 예수님의 아들, 딸인 사당중앙교회 성도님들께 말씀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모든 아픈 사람 위에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이 함께 하심을 믿으며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 나를 가장 아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모든 아픔과 고통을 예수님께서 가져가서 평안과 회복, 거룩의 능력으로 우릴 덮어주세요. 이 시간 병과 싸우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사 고치시고 회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찾으시고 만지시고 회복을 명하신 주님, 다 나았음을 선포합니다.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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