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간증
갈 1:13-24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이 참된 복음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갈 1:13-14 /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현재와 이전을 구분하는데, 자신의 이전 상태를 “유대교에 있을 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교회를 핍박하며 없애려고 했던 자였습니다. 유대교에 대한 엄청난 열심과 충성심으로 그 전통을 따랐던 자였습니다.
이렇게 기세등등했던 바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는 길, 즉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갈 1:15 /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바울은 잘못된 열심으로 어떻게든 교회를 없애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았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바울의 인생에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바울이 예수님을 믿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바울에 대해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갈 1:16 /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바울의 인생에 찾아오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바울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엄격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이방인과는 생각만으로라도 절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할 자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명으로 주시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 같은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갈 1:17 /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바울이 받은 복음에 대해서 확인이나 승인을 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그의 사도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과 사도직분에 대해서 어떤 사람에게도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있는 먼저 된 사도들에게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 사도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베드로를 만나게 됩니다.
갈 1:18-19 /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바울은 삼 년이 지난 후에, 게바 즉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15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첫째 단락에서 예루살렘에 가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둘째 단락에서는 예루살렘에 방문한 것을 중요하게 말할까요?
바울이 받은 복음과 사도직분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울의 복음이 사도들의 복음과 별개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바울의 사명이 다른 사도들의 사명과 관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처음 방문한 것은 3년 후의 일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바울과 베드로가 만납니다. 그리고 15일 동안 함께 지냅니다. 그 두 사람이 무엇을 했을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로의 경험과 지식들을 나누며 정말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울보다 먼저 사도 된 자요 교회의 기둥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두 사람은 복음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방문에서 만났던 사람은 베드로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다는 것은 바울의 복음이 사도들의 복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바울과 베드로와의 만남은 바울의 복음에 대한 사도의 인정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거짓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갈 1:20 /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바울은 베드로와의 만남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바울은 줄곧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유대의 교회들은 아직 바울의 얼굴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의 변화, 바울이 예전에 그가 없애려고 했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 교회들이 바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갈 1:21-24 /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바울의 변화는 단순히 종교를 바꾼 변화가 아닙니다. 유대교였던 바울이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로 바꾼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삶의 한 영역, 종교라는 부분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 전체가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한 걸까요? 우리는 이런 변화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고 그 뜻에 따라 역사하셨습니다. 스스로도 자격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은혜로 품어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은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를 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종이 위에 나의 간증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로서 변화된 삶으로 더 주님을 닮아가며 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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