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리라
슥 9:1-17
7-8장까지 금식과 회복의 말씀이었다면 9장 마지막까지의 말씀은 예언과 신탁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비록 심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담겨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희망의 깔려 있습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I.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슥 9:1-8)
슥 9:1-2 /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그 접경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리니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니라
북부 지역 견고한 성이 무너집니다. 하드락은 수리아에 속한 도시이고 다메섹은 수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그들의 땅에 내리고 머문다는 것은 수리아가 경고대로 멸망하기까지 재앙이 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슥 9:3-4 /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그 말씀의 경고가 하맛에도 임할 것이요, 두로와 시돈에도 임할 것입니다. 매우 지혜롭다고 하는 두로와 시돈에도 그 말씀이 임합니다. 두로와 시돈은 예부터 무역 왕국이었습니다. 해상 무역으로 엄청난 재물을 쌓아두었습니다. 은을 티끌처럼 긁어모으고,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아놓았습니다. 두로는 작은 섬이지만 자기를 지킬 요새를 건축했습니다. 45m나 되는 난공불락의 성을 쌓아서 앗수로의 군대가 5년 동안 공격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13년 동안 포위하였으나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드락과 다메섹, 하맛, 두로와 시돈은 팔레스틴의 북부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북부 지역들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하였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틴 남부지역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슥 9:5-6 /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팔레스틴 남부지역은 주로 블레셋 족속이 살던 도시들이었습니다.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은 블레셋 도시들입니다. 이들은 두로와 시돈이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무서워할 것이요, 두려워 떨 것입니다. 그리고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요, 아스글론에는 더 이상 주민이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더가 블레셋을 칠 때에 가사의 왕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다른 나라사람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래서 왕의 대가 끊어지고, 아스글론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죄악을 징벌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시지는 않습니다.
슥 9:7 /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유다와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처럼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부스족속은 이방인들이었지만 다윗의 그 성을 정복하고 그들도 유다 백성이 되었습니다(삼하 24:16; 대상 21:15). 이처럼 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언약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메시아가 와서 복음이 전파된 후에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슥 9:8 /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그렇다면 언약의 백성들은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그 집을 둘러 진을 치고,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포악한 자들이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로부터 당한 모든 고통과 억울한 일들을 친히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철저하게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더가 팔레스틴 지역을 정복할 때 유일하게 이스라엘 지역만 살아남았습니다.
II. 나귀타고 오시는 겸손하신 구원의 왕(슥 9:9-13)
슥 9:9-10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이란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택한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왕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라가 회복되고, 주권이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임하는 왕은 어떤 왕입니까? 그 왕은 그는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십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만큼 겸손한 왕이십니다. 그리고 그 왕이 세우시는 왕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다 꺾으신다고 했습니다. 즉 화평의 복음을 전하실 겸손과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그의 통치가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르고,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왕국 시민들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과 겸손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라 시민들입니다.
III. 왕관의 보석같이 빛나리로다(슥 9:11-17)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언약의 말씀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뿌림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즉 언약이란 맹세로 보증하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피는 구원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실 영원한 새 언약이기도 합니다.
슥 9:11-13 /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그러므로 아직도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요새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요새는 예루살렘, 곧 하나님 자신이 요새가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전쟁의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힘을 주시어 골리앗을 이기게 한 것과 같이 미약한 자들에게 힘을 주어 승리하게 하십니다.
슥 9:14-17 /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억울함과 원통함을 친히 보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악의 세력을 멸하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예수를 믿는 우리도 주님이 쓰신 왕관에 박힌 보석과 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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