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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빈 들에 나타난 기적, 요 6:1-13, 요한복음 시리즈 설교(31)

by tat tvam asi 2024.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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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 나타난 기적

 

요 6:1-13

 

Ⅰ. 빈 들에서 일어난 기적 

 

요 6:1-4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은 말씀을 듣느라 때를 놓친 허기진 수많은 군중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요 6:5 /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 말씀을 들은 빌립이 대답합니다.

 

요 6:6-7 /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이 사람들의 시장기만 면하게 하려해도 오천 명에 김밥 1줄 3,000원 잡고, 대략 1천 5백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계산하면서 보지 못한 것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의 권능입니다.

 

빌립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주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이십니다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나이다주님은 능히 이 군중들을 다 먹이실 수 있음을 제가 믿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주의 어느 곳이든 아니계신 곳이 없이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유지하고 떠받쳐 주는 힘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창조를 이루어지게 하는 원리이고 법칙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우리 자신을 엶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성취의 법칙으로서 우리의 의식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0:10 /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요히 따뜻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그대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더 풍요롭게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 힘은 이미 왔고, 모두에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나는 그것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이나 개신교인들, 가톨릭이나 성자들만을 위해서 일하시는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자나 죄인들 모두에게,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든, 혹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공평하게 작용하십니다. "그것"은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신조에 상관없이, 작용합니다. "그것"은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시고, 누구나 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함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적이고 보편적입니다. 무한하고 우주적인 사랑이 어떻게 자신을 억누르시겠습니까? 그것은 중력의 법칙과도 같습니다! 물체를 떨어뜨리면, 중력의 법칙은 어떤 물체이든 그 가치에 상관없이 작용합니다. 중력의 법칙은 물체의 가치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중력의 법칙은 모든 것에 다 작용합니다. 하나님의 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력의 법칙이 천원짜리 지폐이든 오만원짜리 지폐이든 차별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은총은 성자이든 죄인이든 분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칙을 깨뜨리면 거기에는 반드시 부조화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은총을 거두어들여서도 아니고, 죄인을 벌하셔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깨뜨림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은총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사 1:18 / 너희의 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오늘 밤 나와 함께 천국으로 데려가리라"  예수께서는 죄를 범한 강도에게 결코 기나긴 벌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막달라 마리아의 죄는 그녀가 참회하자마자 용서되었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그 어느 누구도 죄 때문에 속박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라, 더 나쁜 일이 너에게 닥치지 않도록,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라"

 

혹시 더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둔 결과입니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자신을 정죄한다면, 어떤 것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아서 벌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고 용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기억력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작용합니다. 우리 과거의 잘못을 우리 의식에 가져오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제를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 속에 어제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어제는 경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합니다.

 

영(靈)은 우리의 호흡보다 가깝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것"을 속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고, 우리의 지성이고, 우리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에서 바르게 서 계십니다. 우리가 영적인 법칙을 깨뜨리는 순간, 우리는 "그것"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긋나 있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입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고 그러므로, '내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존재로부터, 우리 자신의 호흡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또한 우리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거나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며, 우리를 결코 떠나거나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손' 안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말씀 안에서 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창문 가리개로 가려놓고 태양빛을 찾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저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손과 발보다 더 가까이, 호흡보다 가까운 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아버지는 나의 한가운데에 계십니다. 
내가 구하고 찾는 어딘가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언제? 여기에, 내가 그분을 알아차리고 있는 때에.
왜냐하면 그분은 어디에나 계시므로, 언제나 여기에 계십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여기에 계십니다!
그 누가 그 무엇이 나를 힘들고 어렵게 하든,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어떤 존재, 어떤 일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이 나와 함께하므로, 내 앞에서 나아가야 할 굽은 길을 곧게 펴 주시므로,
하나님은 내 뒤에도 남아계셔서, 그 길을 지나는 모든 이들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을 나의 앞뒤좌우 사방팔방을 걷고 계십니다. 

 

 

빈 들에서 기적을 낳은 요소들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에게 한 아이가 찾아와 자신 도시락을 내놓습니다.

 

6:8-9 /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오늘 본문은 이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통하여 난감한 상황을 극복하고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기까지는 중요한 2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빈 들 기적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리고 그것을 바친 어린 소년의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 보리떡이 무엇입니까? 거친 보리 싸라기 등을 반죽하여 밥 위에 얹어 찐 떡입니다. 여기서 보리떡은 마치 옛날 우리의 개떡과 같아서 가난한 집 아이들의 간식과 주식입니다.

 

물고기라고 번역된 "옵사리온"도 마찬가지입니다.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다가 큰 고기가 잡히면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오지만 작은 고기는 다시 물 속에 넣어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작은 고기는 다시 물 속에 넣어 살려줍니다. 그런데 가져오기는 너무 작고 그렇다고 다시 물 속에 넣을 필요는 없는 어중간한 크기의 고기가 있습니다. 낚시꾼들은 이런 고기를 바닥에 던져둡니다. 그러면 고아나 과부 -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들을 바닷가에 나가 주워다가 소금에 절여 자기들의 양식으로 삼았는데 이처럼 소금에 절인 작은 물고기가 옵사리온입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개떡 다섯 개와 절인 물고기 두 마리가 바쳐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한끼 도시락 식사입니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는 음식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 6:10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주님은 언제나 기적의 씨앗을 요구하십니다. 빈 들 기적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린 소년이 예수님께 드린 이 보리떡과 물고기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헌신이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언제나 기적은 믿음이라고 하는 그릇 위에 담겨지는 것입니다.

 

먼저 기적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급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질 때, 우리는 공급자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이 공급의 원천이자 실천자이자 법칙임을 깨닫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충분하게 채워주시는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자리, 우리의 돈, 우리의 돈 많은 친척, 호의, 혹은 정부에 기대지 말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는 일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바위를 치면 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있는 돌 위에서 빵이 익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도 있고, 까마귀들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고, 과부가 자신의 것을 덜어서 나누어주는 고마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풍요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쉬는 인간'에게 기대지 않고 하나님이 원천이심을 때닫는 한, 모두가 각가 풍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저와 여러분이 받는 모든 것의 유일한 공급원임을 굳게 믿는다면, 저와 여러분이 필요로 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공급이 언제나 어김없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거나 빼앗아갈 수도 있다는 우리의 믿음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고객들이 좋은 마음을 품어주는 것에 비즈니스가 달려 있다고 믿는 세일즈맨은, 실패의 조건을 안성맞춤으로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을 모든 비즈니스의 실천가로서 이해하게 되면, 김 양이든 박 군이든 누구에게나 물건을 사야 한다는 강요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고객들에게 기대할 때보다 매주 수십 수백 배로 많은 판매고를 올리게 될 것입니다. 고객들을 정해 놓고 그들에게 기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파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근원으로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어요"라구요. 그렇다면 얼마나 자주, 얼마나 계속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이따금씩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의식에 속속들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의 원천이라는 깨달음이 속속들이 스며들어서, 거기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동화되어야 합니다. 그때 흐름이 생겨나서, 끊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유일한 힘, 유일한 원천, 유일한 법으로 알아차리고 인정하십시오. 이러한 알아차림은 유전의 법칙, 음식에 대한 법칙들을 즉각 무효화시키기 시작합니다. 모든 물질적인 법칙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유일한 오직 하나의 법으로서 받아들이는 정도에 비례하여, 물질세계의 법들은 무효화됩니다. 경제의 법칙, 정치의 법칙, 물리의 법칙, 법에 관한 법칙들이 저와 여러분의 주의를 끌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나는 오직 하나의 법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이 법 이외에는 다른 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적인 법 이외에는 다른 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는, 몸이 필요로 하는 것들의 결핍이나 불어남을 나타내는 환경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바탕이자 본질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과잉공급이나 부족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성한 바탕이자 본질로 알아차림으로써, 저와 여러분은 곧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온전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죄, 질병, 죽음, 결핍, 한계 같은 외부의 양상들에 끊임없이 노출된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실수의 그림들'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그림들은 우리의 영적인 의식이 발전하여 펼쳐짐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것'을 조화의 원천으로서 바라보게 됨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실' 자체가 부조화스러운 양상들을 제거해 주도록 스스로 허용해야 합니다.  

 

둘째, 빈 들 기적은 감사로 이루어진 기적이었습니다.

 

 6:11 /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지금 당장 수천 만 원이 필요한데 단돈 만원을 손에 들고 감사하라고 한다면 여러분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예수님은 단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 마음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베풀어주실 축복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믿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보리떡 5개이나, 하나님이 공급자이시요 모든 것의 실천자이심을 확신하셨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실 줄 알고 온전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 빈 들에서 일어난 기적

 

 6:12-13 /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성도 여러분!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기적의 능력이 있습니다. 결핍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구걸하던 삶에서 벗어나, 충만한 창조주 의식으로 살아가십시오!

 

'보이지 않는 전원'에 코드를 꽂기만 하십시오!

 

영원한 채워짐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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