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물을 주신 ♧◇집사님과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즐겨 나누고 있다.
이 선물을 받고 감사 메시지를 드리다가, 의식(consciousness)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나는 몇 달 전에 읽었던 네빌 고다드의 책에서 보았던 내용을 말씀드렸다.
☞ 우리가, '의식이 단 하나의 유일한 실체라는 것'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그 모습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마음 외부에 있는 원인들이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을 버리게 된다.
'삶에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대답'을 우리의 의식 상태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자아관념이 달라지면 우리의 세상도 모두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자아관념이 무엇이든 우리의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그 관념과 같아진다.
우리 의식의 변화를 통해 즉 자신에 대한 관념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서 더 웅장한 것들을 건설할 수 있다. 그것은 더 높은 관념들을 외부 세상에 구현하는 것이다.
외부에 구현시킨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관념들의 결과물들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의식은 단 하나뿐인 유일한 실체이며 삶의 현상들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원인 재료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의식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의식을 통하지 않고서 인간에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으로 시선을 돌려야만 한다. 의식만이 삶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더 높거나 낮은 형태의 혹은 변형물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식이 유일한 실체라면 그것은 분명 유일한 재료이기도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황들, 조건들, 심지어 물질적 대상들로 보이는 것들 모두는, 실제로 우리 의식의 산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외부 자연이 우리 마음 바깥에 있는 어떤 독립된 사물이나 복합물이라는 생각은 버려야만 한다. 우리와 우리의 환경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우리와 우리의 세상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삶의 현상들의 원인을 알고 이를 통해 가장 바라는 꿈들을 진정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면, 사물들의 외적 모습을 버리고 내적 중심인 우리의 의식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명백한 모순, 반복, 그리고 대립되는 현상 속에서도 단 한 가지 원리만 작동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만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호간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원인재료인 의식은 동일하지만 각자의 배열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동의하는 이미지로만 배열된다.
부자와 가난한 자 거지와 도둑은 다른 마음들이 아니다. 같은 마음이지만 그 배열이 다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자력(磁力)을 지닌 쇠조각과 자력이 없는 쇳조각은 재료가 다르지 않다. 단지 그 분자들의 배열이 다를 뿐이다. 특정한 궤도를 도는 하나의 전자가 자력의 단위를 구성하고 있다.
쇠조각이나 어떤 다른 물체가 자력을 갖지 않을 때에도 전자들이 회전을 멈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자력이 소멸된 것이 아니다. 단지 전자들의 배열이 달라져서 외부에 나타나거나 감지할 만한 자력을 만들어내지 못할 뿐이다. 전자들이 무작위로 배열되어 온갖 방향으로 뒤섞일 때, 그 쇳덩이는 자력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전자들이 순서대로 정렬되어서 다수의 전자들이 한쪽 방향으로 향하게 되면 그 물질은 자석이 된다. 자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드러나는 것이다.
건강, 부, 아름다움, 그리고 천재성은 창조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의 배열 상태, 즉 우리의 자아관념에 의해서 외부로 구현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아관념이란 우리가 사실이라 받아들이고 동의한 모든 것들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동의했는지는 삶에 대한 우리의 반응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우리의 반응들은 우리가 마음속에서 거주하는 곳을 드러내 준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속에서 거주하는 곳은 우리가 외부의 가시적 세계에서 어떻게 살게 될지를 결정한다. 일상생활에서 이것의 중요성을 기억하고 적용해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을 이루고 있는 속성은 의식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물들의 궁극적 재료는 의식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 상태 외에 다른 원인들이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하고 있는 가장 큰 망상이다.
한 사람이 겪게 되는 것들 모두는, 즉 그 사람이 행하는 것들 모두와 그 사람에게서 비롯되어 일어나는 일들 모두는, 그의 의식상태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의식은 그가 생각하고 바라고 사랑하는 모든 것 믿고 동의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외부 세상을 바꾸기 전에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대기 상층부의 기온이 변해야 그 결과로 비가 내린다. 마찬가지로 의식의 상태가 변해야 그 결과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롬 12: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은,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생각들의 전반적 토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관념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먼저 새로운 관념을 갖지 않으면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변화되고자 하는 강렬하고 뜨거운 열망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첫 단계는, 그런 열망과 소망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달라지기를 원해야 하고 의도해야 한다.
그 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의 꿈을 현재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소원이 성취된 느낌을 가짐으로써 그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되고자 갈망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가 되기 원하는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서, 우리가 이미 그 사람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를 끝까지 고집해서 이것이 우리의 지배적인 느낌이 된다면, 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은 항상 구현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우리가 그것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 높은 상태를 나타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야만 한다.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롭고 더 위대한 가치를 세상에 나타나게 할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이상을 태어나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정신적인 앎과 영적인 앎이 별개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외부에서 그것을 보고 다른 것과 비교 분석하고 정의함으로써 그것을 안다 고 말한다. 이것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반면에 우리는 그것과 하나가 되는 방법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것으로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알고자 한다면, 그것 자체가 되어야만 하며 그것에 대해 그저 말하거나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새롭고 더 큰 가치를 지닌 자아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내가 이미 원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전제해야만 하며 이렇게 새롭게 사실로 받아들인 믿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아직 원하는 것이 우리 삶의 현실 속에서 구현되지 못했을지라도 원하는 존재가 이미 되었다는 전제를 완전하게 지켜감으로써, 이러한 새로운 의식의 상태가 외부에 구현될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이 완전함이며 온전함이다. 완전함과 온전함이란 자아를 넘어선 이상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으로, 이것이 의식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에서는 이렇게 자신을 넘어선 이상에 자신의 자아를 복종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새롭고 더 위대한 자아관념이 외부 세상에 구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진실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식의 상태가 필요하다 는 말은 그 의식의 상태가 없다면 결과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더 위대한 삶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자아관념을 가질 수 있기에, 외부자연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상상력이며 상상력은 우리의 세상을 창조하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도구이자 수단이며, 우리는 상상력이란 것을 통해, 질병과 가난이라는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상상력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구원의 힘이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지금 갖고 있는 현재의 자아관념에 그대로 머무를 수도 있고 반대로 상상력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즉 우리가 이미 원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상상으로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있다. 이것을 사용할지 안 할지는 오직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진정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은 외부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자아관념 즉 우리가 갖고 있는 전제들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은, 비록 그것이 지금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고집하면 사실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으며, 우리가 이미 그 이상적 모습이 되었다고 상상해야만 비로소 현실에 나타난다.
근본적인 심리적 변화 즉 소원이 성취된 느낌을 갖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단언하는 것, 이런 태도가 우리의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는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만일 그렇게 단언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목표는 실현될 수 없다.
모든 변화는 상상에 기초하며 우리가 자신을 특정한 변화된 상태에 완전히 내려놓아 순응시킬 때 이런 상상 속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내맡기듯, 우리는 우리의 이상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이상에 완전히 내맡기는 것만이 그 이상과 하나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 현실과 같은 감각적 생생함을 가질 때까지 우리는 소원이 성취된 느낌을 가져야 한다.
소망하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고 상상해야 하고 소원이 성취된 그 느낌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까지 그 느낌을 계속 지녀야 한다. 그러면 그 느낌은 그것과 모순되는 생각들을 의식 밖으로 몰아낼 것이다.
소원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전제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으면서도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전제의 법칙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며 살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 역시도 무의식적으로는 전제의 법칙에 의거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법칙을 받아들이고 의식적으로 소원이 이미 성취되었다고 전제하며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의 삶은 흥미진진하게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더 높은 수준의 존재로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더 높은 자아관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현재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재 모습 그대로 남게 된다.
소원이 성취된 느낌을 충실히 체계적으로 키워나간다면 우리의 소원은 성취를 약속 받게 된다.
소원이 성취된 느낌을 가지면 미래의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삶이라는 연극은 마음에 관한 드라마이며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들이 그 드라마 안에서 모든 환경과 상황과 사건들로 나타난다.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기에, 우리는 우리가 전제한 것들의 노예가 되거나 아니면 주인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상상조차 못했던 자유와 행복을 맛볼 열쇠를 갖게 된다.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상상력을 통제함으로써,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전제들을 결정할 수 있다.
원하는 상태나 되고 싶은 사람의 이미지를 마음으로 그려보라.
이제 이미 그 사람이 되었다는 그 느낌에 주의를 집중시키라.
먼저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 영상을 시각화하라. 그 후에 마치 그것이 우리 주변 세상에 형성된 것처럼 그 상태에 있다고 느끼라.
우리의 상상력은 단지 마음속의 이미지에 불과했던 것을 확고한 현실처럼 바꿔준다.
위대한 비밀은 통제된 상상력과 실현시키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확고하고 반복된 주의 집중에 있다.
마음 세상 안에서 이상을 창조하고 우리가 이미 그 이상이라고 받아들임으로써 그 이상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신을 그 이미지로 변형시키는 일을 한다.
이상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으로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상을 생각하면 모든 상태는 단순한 가능성으로 존재하게 되지만 이상에서 생각할 때는 강렬한 현실이 됩니다.
고대 스승들은 이러한 것을 하느님의 뜻의 복종함 혹은 주 안에서의 안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 안에서의 안식이 잘 이뤄졌는지에 대한 증거는 안식에 머물렀던 사람들 모두가 소망이 이루어진 것으로부터 생각하면서 그 안식의 이미지대로 바뀌게 되었는지 여부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킨 바로 그 존재가 된다.
그렇게 복종된 의지란, 우리 자신에 대한 관념이고 우리가 동의하고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들 전부이다.
소원이 성취된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계속 머물면 그 상태의 결과물을 얻게 되는 반면, 소원이 성취된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결과물을 얻지 못할 것이다.
상상력이 구원의 기능을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를 얻은 것이다.
우리 인생의 매순간은 우리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확고부동한 상상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것은 모든 창조의 시작이자 끝이다. 가장 중요한 비법은 상상력을 통제하고 주의력을 잘 유지해서 소원이 성취된 느낌에 의식에 초점을 반복적이고 확고하게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속시킴으로써 소원이 이루어진 느낌이 마음을 가득 채워 다른 생각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집중하는 것이다.
요 8:32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란 현실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을 상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상상 속 경험을 꾸준히 유지하면 우리의 소망은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통제되지 않은 상상력과 성취된 느낌에 대한 집중력의 결여이다. 상상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원이 성취된 느낌에 꾸준히 집중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기도나 경건한 행위를 해도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낳을 수 없다.
원하는 어떤 이미지도 마음대로 떠올릴 수 있고 상상 속의 형상들을 외부의 사물들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식 속에 함께 거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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