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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요 3:2-6, 6월 마지막 주일 설교, 한 해의 절반을 마무리하며...

by tat tvam asi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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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3:2-6

 

오늘 본문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유대사람의 지도자이자 경건한 니고데모가 영원에 대한 갈급함으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니고데모는 영생과 축복에 대하여 관심은 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 봐도 인간은 절망 가운데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존재입니다.

 

 3:2 /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마치 동문서답 같습니다.

 

 3: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의 고백과 예수님의 응답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흐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안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성적으로 추론의 결과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압니다 라고 말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볼 수 없다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아는 것을 중시했는데, 예수님은 보는 것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다와 본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감리교회의 시작은 존 웨슬리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웨슬리 목사를 알기 위하여 영국의 상황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18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겪습니다. 인구의 약 10%정도가 런던에 살았는데 대다수가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생활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술, 폭력, 매춘, 도박에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요한 웨슬레는 1703 6 28일 영국의 엡워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국교회목사였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 아네슬리 사이의 열 아홉명의 자녀 가운데, 열 다섯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웨슬레가 6살이 된 해 겨울 1709 2 9일 한 밤 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목사관에 발생하였을 때 이층 다락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화재 속에서 깨어나 조금도 당황하지 아니하고 창문 곁에 다가가 “사람 살려주세요” 라고 외쳤으며 이를 본 불을 끄던 교회 청년들이 무등을 타고 그를 구출해냈고, 웨슬리를 구해내고 곧바로 그 집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웨슬리는 구사일생으로 구원받은 자기 생명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조각”(스가랴 3:2)이라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이 왜 나를 죽음에서 구해주셨을까?” 생각하다가 1725 22세때 웨슬리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성직의 길을 걷기로 결심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서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매일의 학과 일정표를 만들고 종교적 의무를 지키며, 구제와 봉사 그리고 신앙향상을 위하여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별명이 ‘규칙장이’ (metho-dists)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735 10 18일 웨슬리는 종교적인 정열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국교회를 벗어나 미국 전도여행을 떠나기 위해 시몬주 호라는 배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 이때 웨슬리는 3가지 목표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① 조지아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식민지 개척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② 미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③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체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모주 배에는 모라비아 교도 80명의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미대륙에 도착하기까진 8주나 걸렸는데 이 항해는 웨슬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특히 선객들 중 모라비아 교도들과 교제를 통해 깊은 감동을 받는데, 항해 도중 여러 차례의 풍랑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웨슬리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인들은 전혀 두려움이 없이 태연했어요. 폭풍이 지난후 웨슬리는 한 모라비아교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폭풍이 두렵지 않습니까?

그러자 모라비아 교인이 대답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일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여자와 아이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날 웨슬리는 그의 일기장에 [나의 일생중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다]고 기록했어요. 왜냐하면 웨슬리가 구원의 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웨슬리가 일생 처음으로 구원의 빛이 존재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웨슬리는 조지아주에 도착하고 나서 자신의 구원의 확신을 위하여 모라비아교 목사 스팽겐베르크에게 신앙상담을 받습니다.

 

스팽겐베르크 목사가 웨슬리에게 질문합니다.

‘웨슬리 선교사님, 성령께서 친히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이 물음에 웨슬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입니다.

이때 스팽겐베르크 목사는 다시 질문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웨슬리가 대답합니다. '. 그는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리고 스팽겐베르크 목사가 ‘그럼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묻자 마음에 확신이 없었던 웨슬리는 머뭇거리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믿음의 삶이 행복합니까? 지금 당신의 마음에 구원이 기쁨과 감동이 살아 있습니까? 웨슬리는 이런 질문 받은 것입니다. 이때 웨슬리는 그 마음에 섬광이 번쩍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역에 열중합니다. 그는 그곳에 주간학교를 설립한 후 아이들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웨슬리는 주일마다 분주했습니다. 오전 5시 새벽기도회를 열었고 11시 에는 성찬식과 설교를 했으며, 오후1시에는 프랑스인 예배에 참석하고, 2시에는 유년들을 모아 교리문답을 가르쳤어요.  3시에는 기도회를 인도하였으며. 6시에는 모라비안인 교회에 나갔습니다. 토요일에는 사바나시 부근에 있는 2개 마을에 들러 독일인과 프랑스인들의 기도회를 인도했으며 평일에는 스페인 출생의 유대인에게 전도할 목적으로 서반아어를 공부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이와 같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노력하였지만 성도들은 오히려 목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레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성실하게 사역을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목말라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그 지역 식민지 장관의 딸 ‘소피아 합키’ 라는 미모의 여인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정이 생겨 그 여자와 결혼을 단념했어요. 어느날 웨슬리가 성만찬식을 집례하는데, 이 신혼부부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자 웨슬리가 이 부부를 내쫓았습니다. 이에 분개한 그녀의 남편은 웨슬리를 고소하였지요. 비록 근거 없는 고소사건이었으나 웨슬리는 더 이상 조지아 선교를 할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결국 1737 12 2 더 이상 미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할 수 없어 야밤 도주 하듯이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웨슬리는 내면 깊은 곳에서 구원의 불확실성으로 고뇌하던 당시 심정을 일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미국인을 회개시키려고 거기에 갔다. 그러나 나를 회개시킬 자는 과연 누구인가? 나를 이 불신앙의 죄악된 마음에서 건질 자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교인이다. 위험이 없을 때는 설교도 잘 하고 믿음도 좋다. 그러나 죽음이 무서운 입을 벌리고 엄습해 올 때면, 나는 불안과 공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죽는 것도 내게 유익함이 된다’는 담대한 고백을 감히 할 수가 없다.... 그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북미 선교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통해 웨슬리는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려는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합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본국으로 돌아온 후 구원의 확신을 얻고자 모라비아교단의 신도들과 신앙교제를 했습니다. 그들 중 페터 볼러 와의 대화는 웨슬리의 신앙에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웨슬리는 자신이 중생의 기쁨을 체험하지 못했음을 깨닫고페터 불러에게 "내가 전도를 중지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라고 묻자, 페터 볼러는 "그런 말씀하지 마시오선생은 믿음을 얻을 때까지 그리고 믿음을 얻은 후에는 그 믿은 믿음을 전하시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웨슬리는 볼러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이튿날 아침 옥스포드 감옥에 있는 한 사형수에게 믿음으로 구원 얻는 도리를 전도했다.

다음 주일 웨슬리는 퀘이커교 예배에 참석했다. 그날 일을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폭스(퀘이커교 창설자)회에 참석하였는데 내 마음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이 흘러 그동안 해왔던 기도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로운 기도를 했다." 그동안 영국 교회는 의식과 기도문에 따라서만 기도하였는데, 그는 자유기도를 통해 더 은혜로움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1738 5 24일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서 웨슬리는 그 유명한 ‘올더스게이트 회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날의 뜨거운 체험을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계속 마음이 슬프고 무거웠다. 5 24, 수요일,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신도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 45분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웨슬리는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세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열심히 선포하였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내게 성령의 충만함이 있는가? 내가 과연 구원을 받았는가?” 마음에 확신이 없다보니 구원의 불확실성 때문에 긴 세월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크고 작은 행위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흠없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발버둥칠수록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 없는 자신을 보며 절망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참된 구원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내가 느낄 때 온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 중생의 경험은 웨슬리의 성격과 전도방법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때부터 엄격한 의식주의자였던 요한 웨슬리는 복음주의의 구원과 생명을 전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웨슬리가 중생한지 18일 후 옥스포드대학 앞뜰에서 '너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날 이후 그가 형식적인 신앙에서 마음의 신앙으로, 습관이 되어버린 신앙생활에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웨슬리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다와 본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만, 삶이 변화되지 않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온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3:4 /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거듭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상식적으로 다 늙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뜻하시는 것은 육적인 거듭남이 아니라 영적인 거듭남입니다.

 

 3:5-6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제가 질문을 드려볼까요? 웨슬리가 올더스게이트 회심에 이르게 된 것은 그의 합리적  판단의 결과입니까,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뒤에 임한 것입니까?

유대사람의 지도자이고 공의회 회원이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이 행하시는 것을 보고 이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임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즉 아는 것은 나의 판단과 생각이 주된 활동 영역이라면, 보는 것은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은 영의 능력이 활동하는 영역입니다. 이제는 영의 눈으로 능력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3-5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신령한 복덩이로 창조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친구삼기 위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게 창조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예수님 만큼 존귀한 자로 창조하셨구나

영의 능력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기 시작할 때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2:23 /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하나님이 약속하셨지만, 때로는 그 약속이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약속도 굳게 믿고 따라 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결국 누가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우리가 주님의 친구가 되면 결국 예수님의 모든 능력과 권세가 결국은 친구가 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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