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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한 문장, 요 20:18, 내가 주를 보았다,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설교

by tat tvam asi 2024.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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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20:18 /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할렐루야! 7월이 되면서 함께 찾아온 손님들이 있죠? 더위, 장마, 습기, 이 반갑지 않은 손님들로 인해 우리 성도님들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길 기도합니다. 덥고 습하지만 그래도 7월은 여전히 신나고 설레는 달입니다. 방학, 피서, 휴가의 계절이고요, 무엇보다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는 달이거든요.

 

이번 유초등부 성경학교 주제는 가디언즈! 하나님 나라를 지켜라입니다. 이렇게 손으로 G를 만들어볼까요? 가디언즈의 앞글자 G입니다. 오른손은 펴고 왼손은 숫자 칠을 만들어서 옆에 붙이면 완성이 되요. 잘하셨어요. 가디언즈는 ‘수호자, 후견인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수호하는 사람들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여름성경학교의 주제에요.

 

다음 주부터 시작될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분주하게 준비 중에 있는데, 아무래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부서가 유치부와 아동부를 합친 유초등부이기 때문에 6세 어린이부터 초등학교 6학년 학생까지 같이 말씀을 듣고 활동을 진행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그 중간지점을 찾아 성경 이야기를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게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 중에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면 참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솔직한지 알 수 있어요. 어른들은 아무리 앞에 선 사람이 지루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최대한 경청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이들은 다릅니다. 재미가 없으면 시선을 돌리고 다른 흥미로운 것을 탐색합니다. 단번에 집중도를 파악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물론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아주 냉철한 비평가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어른 설교와 어린이 설교를 준비할 때, 중점으로 두는 부분이 다릅니다. 설교자마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어른 설교는 성경말씀과 더불어 그에 관한 비유나 간증 등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추가합니다. 마치 조각보를 잇는 것처럼 그동안 느꼈던 혹은 들었던 이야기들을 잘 간직하였다가 말씀과 어울리는 이야기 조각들을 꺼내서 이어붙이고 한편의 설교를 만들어냅니다. 말씀을 통해 최대한 다채로운 관점과 감정을 경험하시길 바라며 설교를 작성하는데, 이 방법의 장점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중구난방이 될 수 있다는 점이겠죠. 그럼에도 이렇게 한땀한땀 서로 다른 조각들을 이을 수 있는 것은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님들이 기꺼이 저와 함께 기꺼이 그 과정을 함께 해주신다는 점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렇다면 어린이 설교 때는 제가 무엇을 중점에 둘까요? 무조건 재미,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것에 먼저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이번 성경학교 주제를 처음 받고 좀 난감했어요. 너희가 하나님 나라의 수호자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단순히 성경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깨닫게 하고 체험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구요.  3번에 걸친 여름성경학교는 7 16일에 시작해서 23, 30일 삼 주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 첫 포문을 여는 말씀이 바로 오늘 읽은 마리아와 여인들의 이야기에요. 감사하게도 성경학교를 위해 설교를 준비하며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다가 제가 더 큰 감동을 얻게 되었고, 여기에서 아이들에게 다가갈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오늘 한 문장이라는 설교 제목에 맞게 딱 한 구절만 가져왔어요요한복음 20장 18절 다시 한 번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20:18 /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 말씀의 전후 사정이 어떠한지는 이미 너무도 잘 아실 것 같지만 그래도 간략히 설명드리자면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난 뒤 그 시신이 향품과 세마포로 싸여서 무덤에 안치된 이후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같이 동거동락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허망하게 떠나보내고 난 뒤 낙심과 자괴감, 두려움, 당황스러움으로 말미암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난 예수님이 죽으셨거든요. 제자들이 평생을 바칠 각오로 따르던 위대한 스승이자 마침내 이스라엘의 영광을 가져올 영웅 예수님을 떠나보낸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밖에서는 예수와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반역자로 여겨 처단하려고 하니 그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이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어놓을 때,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그 손과 발이 되었던 막달라 마리아 밎 그와 함께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가르침으로 자신을 옭아매던 문제들로부터 해방된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곳에 함께 있었고, 또 예수님이 메시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함께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죄 없이 군인들에게 잡혀 취조 받으실 때도, 심지어는 십자가 죽음을 목도하면서까지 그들은 함께 있었습니다. 항상 곁에 계실 줄 알았던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도 여인들은 무덤을 찾았습니다. 아마 그녀들은 그 시신에 향유를 바르며 예수님과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신을 안치한 굴을 찾아갔을 때 너무도 끔찍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마저 사라진 것입니다. 요한복음 20 1절로 2절의 말씀입니다.

 

 20:1-2/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생각해보세요. 이미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는데, 시신마저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니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인들은 큰 충격과 괴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향해 빨리 달려 그 안을 샅샅이 살펴 보았지만 결국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빈손으로 털래털래 집을 향해 돌아가는 제자들 뒤에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여전히 무덤가에 서서 통곡하며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곧 극적으로 상황이 반전됩니다.

 

 20:15-17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맞은 줄 알고 슬퍼하며 그 육체의 행방을 찾던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더한 것으로 나타나셨습니다살아있는 채로 말입니다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이 된 마리아와 여인들의 마음은 벅차올랐고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리기 위해 단숨에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죽은 사람 그것도 십자가라는 끔찍한 형벌로 인해 처형당한 사람이 살았다는 믿기지 않은 소식 앞에서 제자들은 주저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몇 차례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이를 비유인 줄로만 알던 제자들은 여전히 슬픔을 벗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 속에서 여인들이 누린 기쁨과 용기를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그들의 확증이 얼마나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병이나 상처, 죽음에 지금보다 무지하던 이때에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을 때 아무도 부활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당연히 누군가 시신을 옮겼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에서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는 것은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칙은 보편적ㆍ필연적인 불변의 것입니다. 절대 깨뜨릴 수 없는 것만이 법칙으로 인정받습니다. 그 외에 것들은 이론에 해당되지요.

 

쉽게 예를 들어볼까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신 경험은 모두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중 병세가 더 깊은 환자분들은 정밀 검사를 받고 의사와 면담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를 만나고 난 후 더 낙담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합니다. 의사가 전하는 안 좋은 사례들 또는 병에 대한 불확실한 대답을 듣고 자꾸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게 되어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하시기도 하죠. 처음에는 왜 의사들은 환자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병에는 100%가 없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근거를 통해 환자를 진단해야 하는데 법칙이 없으니 어떤 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혹은 근거가 없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떠한 사실이나 상황에 대해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남들에게 확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도 잘 알지 못할 뿐더라 그에 대한 결과를 자신이 책임져야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그 말을 들은 마리아에게는 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잘 알지 못할 수 록, 불확실할수록 말은 길어지고, 자꾸 부연 설명이 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이제 예수님이 다시 사심을 잘 알기에, 그분의 부활이 확실하기에 오직 한 문장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주를 보았고,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입니다.

 

한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 성경을 읽기 전 이미 일상 속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웃긴 이야기니 편하게 들어주세요. 예전에 남성 시장 안에 진짜 맛있는 만두집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있었던 곳이거든요. 아마 왕만두 5개에 오 천원 정도 하였던 것 같은데 그게 1인분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앞을 지나는데, 겨울에 만두집 앞을 지나가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눈에 계속 아른거리는 거 아시죠? 그래서 주머니를 뒤졌는데,  3천원 밖에 없는 거에요. 제가 원래 가게나 음식점에서 다른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날따라 만두가 너무 먹고 싶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장님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일인분이 만두 5개고 오천원이자나요. 그런데 제가 지금 삼천원 밖에 없어서 그런데 그 만두 하나당 천원이라고 치고 만두 2개를 빼고 3개만 구매할 수 있을까요?

 

막 장문으로 횡설수설 이야기하니까 사장님께서 딱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천원어치 줘요?" "네..."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이때 일이 생각이 납니다제가 가게에서 이렇게 요구해도 되나 하는 의문과 사장님이 혹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오히려 말을 전달함에 있어 혼란을 준 것입니다.

 

한 문장. 이 한 문장은 여러분이 얼마나 무언가를 정확하게 이해하였는지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꾸짖으신 이유는 그들이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기도의 모습만 따라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 사랑은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일관성 있게 우리를 향해 계십니다. 예수님을 다시 본 마리아는 부활하사 아버지 하나님께로 승천하시는 생명의 예수님을 통해 그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의 마음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제자들에게 달려가 복음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면 이를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여길 터인데 하나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미 그 마음은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한 문장의 기쁘고 좋은 소식으로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에이 설마하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즐거워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혹시 몰라?하는 설렘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한 문장을 주시는 분입니다. 낙담된 우리의 마음을 한 문장만으로 끌어올리시는 분입니다. 그 한 문장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수호자가 되어 용감하게 남들에게도 한 문장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한복음 4 13절로 14절의 말씀입니다.

 

 4:1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다섯 남편을 두었던 그녀의 삶은 고달팠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끊은 채 아무도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 뜨거운 한 낮에 그녀는 우물가로 향하였습니다. 이 당시 우물가는 예전 우리네 어머니들이 개울가에서 빨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던 것처럼 아낙네들의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는 가장 큰 네트워크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사람을 피해 혼자 있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 속에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아신 예수님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필요를 아셨고,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한 문장으로 그녀의 마음을 채워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이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요한복음 4 28절로 30절의 말씀입니다.

 

 4:28-30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성경을 통해 예배와 기도를 통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모임 속에서 매일매일 예수님이 내게 주신 한 문장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힘들고 낙심한 이들에게 그 사람을 위한 필요한 한 문장 전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그분으로 말미암은 기쁨과 확신의 고백으로 자신의 삶과 교회와 세상을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수호자되시길 기도합니다.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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