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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 갈라디아서 시리즈 설교(22)

by tat tvam asi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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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

 

어느 가정이나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모두에게 큰 근심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 성도들이 건강한 신앙인으로 잘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성장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이루어 나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저절로 영적 성장이 되는 것도 아니며, 예수 믿은 지 오래되었다고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소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사람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희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버려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5:16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 때 주님의 '음성'을 '소리'로만 생각합니다. 즉 귀로 소리를 들어야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간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론 직접 말씀을 주시기도 하지만, 꼭 기억할 것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 속에"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내 속에, 내주하시기에 내 영(靈)에 직접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사울아, 사울아!" 부르셨던 음성을 그와 함께 하였던 사람들이 듣지 못한 것은 주님이 사울의 내면에 말씀을 부어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3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여 주십니다. 즉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초청하시기 위해서요, 우리를 믿음으로 따라오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셔서 보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는 일도,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도, 내가 바라보고 행할 수 있는 영역을 뛰어 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오도록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알려 주시는 이유는, 이제는 나의 삶을 조정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라고 초청하고 싶으신 것입니다성령님이 하시지 않고는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주셨다는 것은 이제는 나의 삶을 조정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 일에 동참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32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출 32:9-10 /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에 아무에게도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출애굽의 여정 가운데 목이 곧은 백성을 그대로 심판하실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허락을 받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보이신 것은, 하나님의 일에 초청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로 우리 삶을 조정하여 거기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은 것으로 만족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길이 안 열리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길이 열려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고, 열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다. 즉 환경 하나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만, 요나는 때맞춰 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가지 않습니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의 문이 열린다고 반드시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환경을 졸 수 있어야 합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바로의 군대가 쳐들어오니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지기 시작합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였던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환경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지만 요셉은 환경에 울고 웃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통하여 환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친 환경 속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환경의 문도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환경을 다스려 나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통하여 환경을 다스려 나가는 주님의 자녀와 백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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