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앞에 선 여호수아
슥 3:1-10
스가랴 3장은 네 번째 환상에 대하여 기록합니다. 이전 3가지의 환상은 예루살렘으로의 회복에 그 초점이 있다면, 본문에서 제시된 네 번째 환상은 새로운 시대에 다가올 영적, 정치적인 지도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정복을 이끌었던 여호수아가 아니라,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호사닥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스라야였는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당시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출생해서 포로 귀환시대에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슥 3:1 /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오늘 본문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 오른편에서 사탄이 그를 정죄하며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이러한 이스라엘을 참소하는 자로 사탄은 그의 오른편에 서 있습니다. 이는 마치 법정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이 여호수아를 대적했다는 것은 '고소했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의 주 무기는 고소입니다. 사탄은 근거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고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근거 있는 것을 가지고 고소합니다. 사탄이 내세우는 근거는 바로 사람들의 죄와 허물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은 사탄의 고소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슥 3:2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그런데 여느 법정의 모습과는 달리, 판사는 도리어 고소자 사탄을 책망하고 있으며, 이를 넘어 판사는 변호사의 역할까지 함께 담당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가리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불에 있던 기간을 가리켜 바벨론의 포로의 시기라 말합니다. 따라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바벨론 포로기를 마친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은 이스라엘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거룩하신 하나님과 부정한 이스라엘의 관계이지만, 하나님의 택하심과 꺼내심을 통해 이스라엘이 비로소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탄이 여호수아를 고소한 이유는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슥 3:3 /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기서 '더럽다'는 것은 단순히 먼지가 묻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물을 뒤집어 쓴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인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사탄의 고소가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했지만 제사장들마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백성들은 사탄의 고소에 대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슥 3:4 /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더러운 옷을 벗기라는 명령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제거하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대제사장으로서 구원 사역을 직접 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함 받은 것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그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고 마쳤기 때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스가랴는 이러한 환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개입하여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슥 3:5 /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힐 뿐 아니라, 정결한 관을 씌워달라는 요청입니다. 스가랴는 여호와의 환상 가운데 끼어들어, 여호수아에게 대제사장의 관까지 씌워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를 통해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지위가 대제사장으로서 확실하게 회복되었음을 확증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전달합니다.
슥 3:6-7 /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①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②내 뜰을 지킬 것이며 ③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즉 여호와의 도를 행하고 여호와의 규례를 지킨다는 조건이 성립되면,
첫째,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것’이고,
둘째, ‘하나님의 뜰을 지킬 것’이고,
셋째, ‘하나님과 자유롭게 왕래하게 된다’는 결과를 일러줍니다.
① ‘하나님의 집을 다스린다’는 것은 영적인 권위를 갖고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요,
② ‘하나님의 뜰을 지킨다’는 것은 성전이 죄악으로 더럽혀질 것을 미리 막는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요,
③ ‘하나님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것은 제사장의 특권, 즉 1년에 한번 지성소를 들어갈 수 있었던 대제사장의 특권과 성소를 왕래했던 제사장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슥 3:8-9 /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예언을 통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진정한 구원자인 메시아를 예표하는 것이었고, 본문에는 그 진정한 구원자를 ‘싹’과 ‘돌’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설명을 합니다. ‘싹’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렘 23:5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23장 5절에서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며 그는 정의로 다스리며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가지’와 ‘싹’, 히브리어 ‘체마흐’로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싹이 그러한 인물이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메시야를 예표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돌’은 또 다른 메시야의 상징이었습니다. 메시야는 그를 대적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치는 돌이었고, 버림받은 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피난처가 되셨고, 교회의 모퉁이돌이 되셨으며, 기초석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돌에는 ‘일곱 눈’이 있었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의미하고, 결국 이 돌은 무한하고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야의 사역으로 인해 평화와 번영을 누려지게 될 것임을 또한 약속합니다.
슥 3:10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에서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그 날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구약에 약속된 복음입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일어나게 될 구원의 역사, 복음의 역사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우리는 든든한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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