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시는 하나님
슥 1:18 - 2:13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으나 외적으로는 사마리아인의 방해와 내부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의 벽 앞에 절망해 버리자 성전건축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학개,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셔서 잠든 그들의 신앙을 일깨울 수 있도록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둘째 환상은 첫째 환상을 보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슥 1:18-20 /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네 개의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를 보여주었습니다. 네 뿔은 유다를 괴롭힌 민족들이고 네 장인은 그들을 심판할 또 다른 나라들 즉,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는 일에서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재확인하신 것입니다.
슥 1:21 / 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세번 째로 보여주신 환상은 측량줄을 잡은 사람의 환상입니다.
슥 2:1-2 /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고 말할 때에
측량을 하는 목적은 건물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천사가 예루살렘의 터를 측량하려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회복을 명하셨고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이 어떤 사람들의 비전이나 민족주의적인 열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다시 성전건축의 열망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측량하려던 천사를 향해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 성읍에 관한 소망의 이야기를 전하여 줍니다.
슥 2:3-5 /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고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다른 천사가 이야기하길, 회복될 예루살렘의 성은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에 사람과 가축이 심히 많으므로 울타리로는 모든 사람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부흥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환상과도 같이 역사적으로도 스룹바벨에 의한 1차 귀환에 이어 뒤를 이어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의 2차, 느헤미야의 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져 힘이 점점 더하여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처음은 미약하지만, 훗날을 창대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시작될 때 다수보다는 소수로 시작되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함입니다.
그런데 ‘성곽 없는 성읍’이 된다는 말은 적들의 공격에 무방비 성읍이 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루살렘에 성곽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불로 둘러 싼 성곽’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강한 성벽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도 때로는 성벽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온갖 위협에 노출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말 것은 바로 그때에 주님이 ‘불로 둘러 싼 성곽’이 되어 나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방 땅에 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과 포로 된 땅에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을 촉구합니다.
슥 2:6-9 / 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실제로 앗수르나 바벨론의 위치는 가나안땅의 동쪽에 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이 쳐들어올 때의 이동 경로가 북쪽에서부터 왔기에 북방 땅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도피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곳이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께서 강한 제국들의 포악함과 교만함을 벌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귀환을 미루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원망하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도 세상의 편안함에 취해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범하는 자는 자신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본심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공격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어쩔 수없이 심판을 행하셨지만, 그때 아버지는 마치 주님의 눈이 뽑히는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본심을 기억하는 자만이 고난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미래와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렘 29:11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리고 회복될 예루살렘과 확장되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슥 2:10-12 /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다시금 거처를 정하시고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전히 내 백성이라 불러 주십니다. 또한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라고 말씀하시며, 만민의 회복을 이루어 가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해 확장되어질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자격 없는 나를 부르시고, 백성 삼아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게 하시는 주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 주십니다.
슥 2:13 /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일어나시는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일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민족을 심판하실 하나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 처소에서 일어나셨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잠자는 것 같이 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은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방해와 공격으로 힘들어하는 자녀들에게 친히 성곽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본심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럼으로 당장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미래와 희망에 동참하는 삶임을 알려주십니다.
만약 지금 내가 일상에 지쳐 하나님과 그 나라를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면 오늘 말씀을 힘입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일어나 순종의 벽돌을 쌓아나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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