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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웨슬리 설교 6 '믿음으로 얻는 의‘(The Righteousness of Faith)를 고찰한, 그 특별한 시간 (Ⅵ)

by tat tvam asi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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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에 의하면 율법과 믿음 둘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를 얻는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인간은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없게 되어, 율법의 의는 인간이 도달하기에 불가능한 먼 것이 되었고, 믿음의 의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값없이 인간에 게 주어진 가까운 것이 되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은 분명 인간이 의롭게 되는 길이었다. 즉 율법을 제대로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으로,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행위계약이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이 같은 모세의 율법을 행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참 뜻을 알지 못했다. 이 율법을 진실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갖추었던 최초의 인간만이 모세가 전한 성취할 수 있을 뿐이다. 진리에 무지했던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새로운 의의 길을 예비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새로운 계약은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계약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으심으로 이루어진 은총 의 계약이다. 즉 희생 제물로 자신을 내어놓으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가 믿음으로죄책과 죄의 세력과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유대인들처럼 진리에 어둡다. 심지어 교회 안의 사람들도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믿음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러한 발걸음이 외형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비칠 수는 있으나, 이는 참된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율법의 의는 율법을 완전하게 행하고 율법의 모든 의를 충족시킬 때 주어지는 의이다. 부연하자면 율법의 의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악한 행위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전적으로 이룰 때 성취할 수 있는 의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율법의 조항들을 최고의 수준으로 지켜야 함은 물론이고 모든 일에 하나님 보시기에 한 점의 흠결 없이 영원토록 지속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땅에 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름들 중에서 이런 의를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성취할 수 없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율법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의를 획득할 수 없다.

 

율법의 의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들여다본다면 이 세상은 절망 그 자체이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런 절망에 처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길을 예비하셨다. 바로 믿음의 의이다. 믿음으로 얻는 의는 율법으로 얻는 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준비된 의로써,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얻게 되는 믿음의 의. 놀랍게도 이 의는 이미’ ‘항상인간에게 계시되어 왔다. 이 믿음의 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의의 길이다. , 누구든지 주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음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기 위해 다시 사셨다(4:23-25)는 사실을 실제로 확신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이 의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 까이에 있다. 우리의 입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이 의가 주어진다(10:9).

 

모든 인간이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인간 스스로는 단 하나도 선한 생각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죄에 물 든 인간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율법의 의를 성취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인간 본성이 부패했음을 잘 아는 인간이 스스로를 잘 아는 지혜로운 자이다. 인간은 항상 악을 지향하며 그 마음에는 교만, 정욕, 욕망, 애정 등이 왜곡된 형태로 뿌리 박혀 있다.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 이것을 알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믿음의 의로 나아가서, 믿음이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화해의 방식임을 알고 감사함으로 받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복된 소식임을 알 뿐 아니라 이것이 믿음으로 주어짐을 알고 믿음으로 나아간다.

 

율법의 의가 아닌 믿음의 의의 길로 나아가자! 악한 행위를 그치고 모든 선을 행하자! 우리는 죄에 물들어 있어서 실상은 율법의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참된 구원의 길은 하나이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이다(16:31). 이 길은 쉽고 가깝다. 구원의 말씀이 우 리 가까이 있다. 바로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 죄인으로서의 모습 그대로 복음을 믿을 때 복음 안에 하나님의 약속된 의가 부어질 것이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하신 새로운 계약의 축복(8:12)이 즉시 임할 것이다.

 

로마서를 읽다가 의에 대한 말씀과 다음과 같이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10:6-7을 읽어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의가 멀지 않고 가까이 있다라는 사실을 논증하기 위해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모세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했던 말을 상기(想起)해야 했지 않을까? 모세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얻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30:12-14) 바울은 모세가 말한 것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입술로 그분을 주라 고백하는 아주 가까운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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