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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유혹에서 승리하라, 호 4:12-19, 호세아 시리즈 설교(8)

by tat tvam asi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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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서 승리하라

 

 4:12-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분별력이 흐려졌습니다.

 

 4:12 /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여기서 막대기란 아세라신, 즉 우상을 말합니다. 이들이 포도 농사를 잘 짓고 번성하고 축복 받기 위해서 아세라신에게 가서 빌고 아세라신이 그들에게 대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분별력이 흐려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다보니 분별력이 흐려졌습니다.  

 

여기서의 마음은 'spirit'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음란한 영(靈)에 미혹되어 영적 분별력이 흐려지고 만 것입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의 영적인 혼란함은 결국 사단의 영이 사회를 휘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호세아 선지자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어느 때보다 더욱 깨어 근신할 때'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고 미혹의 영에 빠져들다 보니,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에는 눈치를 보다가 이제는 죄에 대해 무뎌지고 만 것입니다.

 

 4:13-14 /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죄는 전염성이 있어 처음 시작이 힘들지 죄에 대하여 무뎌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죄를 짓 습니다. 이처럼 죄가 처음 우리에게 들어올 때는 눈치를 보다가 이제는 “나만 그런가 뭐! 모든 사람이 다 그런데...” 하면서 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다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는 우리가 진짜 멸망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단의 미혹에서 벗어나 주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4:15 /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이 구절은 네 개의 금지 명령을 포함합니다.

 

1) 유다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라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의 남유다는 분열왕국시대로 서로 견제와 갈등이 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서로 밀접한 정치-종교적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민족, 같은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 당하지만, 아직 남유다라는 왕국이 있었기에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길갈로 가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기념비로 세우고 이곳을 길갈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길갈 즉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거룩한 할례를 행한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엘리야가 당신의 후계자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던 선지학교가 있던 곳이 길갈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말씀을 가르치던 길갈, 하나님의 거룩한 종을 세웠던 길갈이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

 

또한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벧아웬의 원래 이름은 벧엘입니다. 그런데 이름에 아윈이라는 단어가 붙어 벧아웬이 되었습니다. 아윈은 고통, 슬픔 혹은 우상숭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변하여 우상숭배의 집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변질된 것입니다. 음식이나 물건은 변질 되면 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이 변질되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벧엘)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우상의 집(벧아웬)이라는 것이다.

 

4)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

 

죄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얼마나 흔들어 버립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호세아는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는 겁니다.  

 

변질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완강한 암소' 처럼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상태가 고집불통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전에는 말씀 앞에 눈물을 흘리고, 그 전에는 찬송 가운데 눈물이 있고, 그 전에는 기도 속에 눈물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4:16-17 /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완강하다는 말은이스라엘은 고집이 세어서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하나님에 대하여 반항적으로 달려든다는 뜻입니다. '암소'로 비유한 것은 성경을 읽는 독자에게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입니다주인이 줄을 당겨도 움직이지 않는 그런 소들을 가끔 보게 되지요여기의 '완강한 암소'는 '저항'을 나타내는 것입니다하나님에게 반역하며 반항하며 저항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어린 양'은 '암소'와 비교될 때 작으면서도 순종하는 동물입니다. 부드럽고 귀엽고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이스라엘을 양처럼 돌보십니다. 제사장들은 벧엘이나 길갈 성소를 하나님이 먹이시는 '넓은 들'이라고 믿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양이 아니라 반역하는 암소이니 어찌 하나님이 그들을 어린 양처럼 먹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본문은 '하나님이 성소에서 우리를 양처럼 먹이신다'는 제사장들의 설교에 대해 '너희들은 내가 먹이는 양이 아니라 반역자'에 불과하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대신 사용하는 말인데, 결국 이스라엘의 운명은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연합을 끊고 우상과 동맹을 맺으면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4:18 /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술과 음행 그리고 부끄러운 행위가 이스라엘이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이런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런 행위에 대해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예언자의 경고를 내리고 계십니다. 이것을 무시하며 계속하여 타락된 삶을 사랑하며 살아간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지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살펴야 한다는 말입니다.

 

 4:19 /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바람'은 영을 뜻하는데, 여기서 그 음행의 영이 백성들에 함께함으로 그들이 예배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지만 이것은 거짓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날개'는 이동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된 예배는 날개로 그들을 둘러싸 어디론가로 데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갈 곳은 포로가 되어 끌려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경고를 고집스럽게 거부하여 마침내 포로가 되어 버릴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주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힘입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말이 있다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말하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유혹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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