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의 시작
눅 17:20~21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하면, 죽어서 가는 장소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이런 오해는 천국을 문자적으로 '하늘' 곧 '공중'으로 오해하기 때문이고, '나라의 개념을 영토 혹은 장소와 같은 공간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도 이런 오해를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 눅 17:20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들은 아마 예수님을 조롱하는 뜻으로 그렇게 질문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소? 언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거요?
당신이 정말 그런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까?" 라는 비아냥 거림의 질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뭐였나요?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 눅 17:21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장소의 개념을 넘어서, 새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 문제인 것입니다.
즉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타이릅니다.
"저 지렁이는 낚시 바늘에 걸려 있는 거야. 저것을 잘못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누가 믿어?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는지 증거를 가지고 와 봐. 네가 저 지렁이를 욕심내는 거지?"
그리고는 덥석 지렁이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다로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물고기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종국이 어떻게 될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일성으로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막 1:15 /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 안에 이미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예로 들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에서 실라과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애매하게 옥에 갇혀 실컷 얻어맞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런데도 밤중에 일어나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충분히 절망하고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지금 이 시간 속에서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와 같은 여유가 있었던 것은,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의 안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안이 넘치기에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담대함과 여유가 있었기에 자기를 지키던 간수장과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합니까?
❚ 눅 17:24 /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번개같이 온다"는 말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번개의 특징은 신속하고 빠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신속하게 오실 것입니다.
2) 번개가 치면 강력한 빛으로 사방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그 빛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무관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날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았습니다. 다가올 심판에 대해 무관심한 것입니다.
노아 때는 사람들이 홍수가 난다는 이야기를 비웃었고, 롯의 사위들은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하지도 못한 때 모두에게 심판의 날이 온 것입니다.
❚ 눅 17:27-28 /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여러분!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마귀는 자꾸 미루게 만들어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든다. 마귀의 시간은 내일이고, 하나님의 시간은 오늘이다.'
바로 지금 이 시간, 바로 이곳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선택할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굽이 핍박이 가장 심할 때 태어납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시대에 태어납니다.
❚ 히 11:23 /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아이의 용모가 뛰어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버리지 않고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모세를 숨겨서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행여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마음 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니 아이가 제법 자라, 울음소리도 커져서 더 이상 아이를 감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갈대 상자를 구하여 그 안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 모세를 넣어 나일 강에 띄웠습니다.
마침 바로의 딸이 강가에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잘생긴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공주는 그가 히브리인의 아들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공주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불러 자기를 대신하여 젖을 먹이게 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안고 젖을 먹일 때, 무슨 말을 하였겠습니까?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크신 일을 하실 것을 믿었기에 두려움 없이 모세에게 믿음의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모세야, 너는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민족의 아이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 히 11:26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상 주심을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주권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으니, 작고 사소한 어떤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온 우주의 창조자시요 주재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보화와 세상이 주는 걱정에 흔들리지 말고, 이제는 영원히 가치 있는 일을 위해 하나님을 향해 온맘을 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남선교회 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는 역사가 우리의 삶에 가득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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