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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느 10:1-28, 느헤미야 시리즈 설교(11)

by tat tvam asi 202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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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10:1-28

 

느헤미야 10장에서는 주님 앞에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단하여 서약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 백성들의 귀환공동체가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갱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총독을 중심으로 방백들과 레위사람들 그리고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언약에 참여하고 인장을 찍었습니다. 즉 서명하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기로 맹세한 것입니다. 비록 서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머지 백성들도 율법에 순종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인봉한 자(서약의 도장을 찍은 사람)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23명입니다.

 

여기서 “인봉하다" 라는 단어는 중요한 문서에 도장을 찍거나 이름을 적고 밀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내용의 언약 갱신문서에 자신의 이름이나 도장을 찍어 맹세하고 인봉 하여 보관했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언약한 사람들의 이름이 본문에 언급됩니다.

 

 10:1-8 /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바스훌, 아마랴, 말기야, 핫두스, 스바냐, 말룩, 하림, 므레못, 오바댜, 다니엘, 긴느돈, 바룩, 므술람, 아비야, 미야민, 마아시야, 빌개, 스마야이니 이는 제사장들이요

 

이처럼 에스라의 율법 낭독으로 시작된 회개와 영적 개혁의 변화는 그 선두에 앞장선 느헤미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앞장서 개혁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자신의 봉급도 포기하고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도 포기하며 선두에서 솔선수범하는 느헤미야가 있었기에 성벽재건과 영적 개혁은 이스라엘 전반에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서명한 명단 맨 앞에 총독 느헤미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다음으로 영적 개혁의 중심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9-13절은 서명한 레위인들의 명단입니다.

 

 10:9-13 / 또 레위 사람 곧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헤나닷의 자손 중 빈누이, 갓미엘과 그의 형제 스바냐, 호디야, 그리다, 블라야, 하난, 미가, 르홉, 하사뱌, 삭굴, 세레뱌, 스바냐, 호디야, 바니, 브니누요

 

그리고 14-27절은 서명한 지도자들의 이름입니다.

 

 10:14-27 / 또 백성의 우두머리들 곧 바로스, 바핫모압, 엘람, 삿두, 바니, 분니, 아스갓, 베배, 아도니야, 비그왜, 아딘, 아델, 히스기야, 앗술, 호디야, 하숨, 베새, 하립, 아나돗, 노배, 막비아스, 므술람, 헤실, 므세사벨, 사독, 얏두아, 블라댜, 하난, 아나야, 호세아, 하나냐, 핫숩, 할르헤스, 빌하, 소벡, 르훔, 하삽나, 마아세야, 아히야, 하난, 아난, 말룩, 하림, 바아나이니라

28절에 보면 봉인된 문서에 서명하지는 않았어도 그 외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성전과 관련된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과 일반 백성들까지 영적 개혁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28 /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뿐만 아니라, 무너져내린 자신들의 죄악 된 삶을 돌이키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영적 쇄신을 이루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어 있는 여러 이름은 우리에게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당시 예루살렘 땅을 밟고 살아가던 많은 사람 중 하나님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비록 그들의 존재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시 영적개혁과 회복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용기있게 일어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이 사람들 하나하나, 그 이름 하나하나를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여기 기록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 직장, 학교, 모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분연히 일어나는 주님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름을 비록 이 시대가 기억해 주지 않더라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주님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 분연히 일어선 주님의 사람들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기록해 놓으십니다. 그 이름 하나하나가 주님의 나라에 각인될 것입니다.

 

율법이 선포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여서 기도하고 회개했습니다. 느헤미야나 에스라에 의해 진행된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모여 금식하며 자복하고 더 나아가 저주로 맹세까지 하면서 결단했던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씀이 그 사람들이 심령에 박히자 찔림을 받으면서 삶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반포된 말씀이 백성들의 마음을 강하게 붙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씀을 붙든 것 같지만 실은 말씀이 그 사람들을 붙들었던 것이지요. 이방인들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면서 까지 율법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것을 보면 익히 알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빚진 자들을 모두 탕감하겠다는 사실은 포로 생활을 한 유대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명예를 얻은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런 것들이 성공의 기준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것들은 영원한 것들이 아니고 극히 유한한 것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물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고, 높은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에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백억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회장이나 총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노벨상을 타는 명예를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 없이 이루어졌다면 한낱 물거품에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신앙은 관계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내밀은 손을 우리가 잡고 함께 가는 삶이지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그분의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구원해 주신 그 분이 먼저 베풀어준 은총에 반응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실은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굳은 결단을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말씀이 그들의 심령을 잡아 하나님께 나아가기로 맹세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관계가 약해서일 것입니다 즉, 자신이 주님을 붙들어서입니다. 의지도 약하고, 감정에 좌우되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 주님을 붙든다고 붙들어서 입니다. 그것보다는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위대한 순교자들은 그런 강한 붙틀림이 있었겠지요. 주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돈독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생명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강하게 붙들리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도 주님을 붙들어야 하지만 주님의 강한 손이 우리를 붙들게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손은 약해서 그분의 손을 놓을 수 있지만, 그분의 손은 강해서 한번 붙들면 결코 놓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강한 손을 의지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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