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맞아 마음이 많이 분주하시지요? 자녀손들, 시댁, 친정,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함께 먹는 것인데, 그 음식들을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실 거예요. 몸이 피곤할 터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준비하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두 달 전쯤 되었나요... 제 설교를 유튜브 영상으로 보시던 분이 질문을 해오셨어요. “목사님, 진동수를 높이라고 하셨는데, 진동수라 뭐예요?”
진동이란, 쉽게 말해, '물체 따위가 떨리거나 흔들리면서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물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합하지요. 빛이나 공기, 바다 심지어 지구도 항상 진동하고 있습니다. 진동이 있기 때문에 색깔을 볼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물체가 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항상 진동하고 있기에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이 지구 전체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공간을 통해 전기장과 자기장이 진동하며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진동하며 전해지는 에너지를 전자기력, 전자기에너지라고 하지요.
에너지란 활동하는 데 필요한 힘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전등을 켜고 TV를 켜서 시청하고, 가스를 켜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일에서 시작하여 직장에 가는 일,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 집안일을 하는 것 모두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에도 에너지가 있어요. 생리적 에너지와 자유에너지가 있습니다. 생리적 에너지는 우리가 먹은 음식물을 소화시켜서 얻습니다.
또한 자유에너지는 인체를 통해 흐르는 우주의 에너지, 우주의 생명력입니다. 우리 안에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우주의 생명력, 우주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뇌에도 에너지가 흐르고 있지요? 우리의 뇌에 흐르는 파동을 뇌파라고 하는데, 분주하게 일할 때의 뇌파가 다르고, 두려움이니 분노, 놀람 등으로 마음이 흥분할 때의 뇌파가 다르고 기도할 때나 예술적 작업을 할 때의 뇌파가 다르고 깊은 잠을 잘 때 뇌파가 다릅니다.
우주의 에너지는 공간 속에 무한히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 에너지의 아주아주 작은 일부밖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여러분과 저의 사방을 전자기 에너지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부르는 것도 전자기파 중에서 인간의 눈으로 감지 가능한 가시광선(可視光線, visible ray) 영역의 전자기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핸드폰 등은 전파를 사용하여 신호를 전하구요. X-ray, 감마선은 의료용으로 많이 사용되지요. 적외선 자외선 등 온 세상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요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귀에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또 다른 에너지, 진동들이 있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우주 만물을 연결하고 있는 에너지장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진동수에 따라 진동하고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면서 우주의 진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시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비어 있지 않고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우리가 발산하는 것과 똑같은 진동수의 것들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이 에너지장은 우리의 믿음을 비추는 거울이자 이어주는 다리이며 담아내는 그릇 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느끼는 감정들로 이 에너지장과 소통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장 상사에게 정말로 화가 났다고 해볼게요. 기분이 언짢겠죠? 기분이 나쁜 채로 퇴근하는 길에 마켓에 들러 물건을 고릅니다. 계속 기분 나쁜 진동을 내보내면서 어떤 직원 앞에서 계산을 하려고 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직원의 퉁명스런 말에 화가 납니다. 다른 때는 별로 개의치 않는데 오늘은 많이 거슬립니다.
집에 오면서 그 마켓 직원을 두고 곱씹습니다. 16초 이상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기분 나쁜 생각이 또 다른 언짢은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그 생각에 따라 감정이 확 올라오고 그 감정에 따라 진동이 시작되는 겁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16초보다 훨씬 오랫동안 아까 그 마켓 직원을 생각하면서 가족에게 흉을 보고, 다음 날 출근해서도 절친에게 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어떤 일이 생길까요? 계속해서 자신이 집중하여 내보낸 에너지가 커져서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됩니다.
다음 날 저녁, 오기로 그 상점과 경쟁하는 다른 가게로 갑니다. 쇼핑을 마치고 계산대로 갔더니, 아뿔싸! 또 한 명의 냉혈 직원이 싸늘하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피하기를 원했던 것에 계속 곱씹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기분 나쁜 감정이 생기고,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친절한 대우를 마켓 직원에게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원하지 않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보통 그렇게 심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그것은 삶에 필수적인 것을 경험하려는 내재적 욕구에서 시작되지요.
반면에 보편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은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대부분 오랫동안 계속된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야기됩니다.
원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심각한 것이든 간단한 것이든, 지속적인 것이든 일시적인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아채고 파악하고 느끼고 또는 찾아내어 그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쁜 느낌을 좋은 느낌으로, 느낌은 바꾸는 것입니다. 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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